이민사회 사모 이중고에 울다… “응어리진 아픔 훨훨 날렸죠”

목회자의 배우자인 사모들과 크리스천 여성들이 어둠 속에서 바닥에 누웠다. 각자 역할을 감당하느라 버텨온 세월을 흘려보내듯 호흡에 집중했다.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신체심리학자 김향숙 하이패밀리 공동대표가 “상대방의 품을 예수님의 품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대화하듯 기도해 보라”고 권면했다. 곁에 있던 이들은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시드니새순장로교회(송선강 목사) 가정사역원이 지난 9~11일(현지시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롱포인트콘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러빙유’ 캠프 현장이다. 낯선 이민사회에서 오랜 시간 ‘괜찮은 척’ 마음을 눌러온 현지 한인교회 사모와 기독 여성 35명이 참석했다.
캠프는 한국의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공동대표 송길원 김향숙)가 2006년부터 이어온 사모·여성 전문 치유 프로그램인 ‘러빙유’의 호주 확장판이다. ‘여성이 여성을, 사모가 사모를 돕는다’는 정신에 따라 러빙유를 먼저 경험한 8명의 사역자가 캠프를 위해 한국에서 파송됐다.
장영희(가명·51)씨는 “사모가 된 것을 감사로 여겨 왔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교회 공동체에 부담이 될까 봐 어디에서도 솔직할 수 없었다”며 “어느새 가면을 쓰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 대표 역시 청란교회 사모다. 김 대표는 이를 ‘사모 병’이라고 불렀다. 기독 여성들에게 ‘역할 압박’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아내, 엄마, 며느리, 사모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좌절과 분노, 소외감이 쌓인다”며 “감정을 표현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통로조차 막힌 채 견디다가 탈진과 우울로 이어지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민사회의 한인교회 사모와 기독 여성들은 더 심각한 정서적 고립을 겪는다. 생계 부담, 고국 및 친족과의 분리 등은 이들의 삶을 조용히 압박해 왔다. 권순화(66)씨는 아들을 갑작스레 먼저 떠나보낸 아픔에 더해 최근 선교사인 남편마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은 손목이 잘려나가는 것 같았고, 남편의 병은 손목을 서서히 자르는 고통이었다”며 “영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어 내면이 곪아 터졌다”고 털어놨다.

캠프에서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신체심리 치료와 웃음·음악 치료, 공감·관계 훈련, 기도 등을 통해 참가자들을 회복의 길로 이끌었다. 회복은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참석자들은 희로애락이 담긴 역할극을 통해 내면의 상처와 마주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온몸을 흔들며 잠시나마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까르르” 웃었다. 고함과 함께 종이막대기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해 보기도 했다.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아픔을 속 시원히 풀어냈다. 김 대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몸이기에 몸을 잘 쓰는 것만으로도 치유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치유의 끝은 용서와 비전 찾기였다. 참석자들은 각자 마음에 둔 용서와 사랑의 대상을 떠올리며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토해내듯 기도했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김 대표는 “‘상처(Scar)의 희생양’에서 ‘상처의 승리자(Star)’로 삶의 전환점을 경험하게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사모와 여성을 살리는 것이 결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라며 “사모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회복할 때, 소위 ‘사모의 맛’을 알게 될 때, 그 회복은 가정과 교회로 흘러간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선교사 남편을 둔 이은주(가명·49)씨 역시 “이제는 남편의 사역을 기쁨으로 돕는 배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교회 내 가정들을 더 편견 없이 품고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데 헌신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 대표는 러빙유를 ‘치유운동’으로 부른다. 개인의 회복을 넘어 가정과 교회, 지역 공동체로 회복이 확산한다고 확신한다. 그는 “이미 무너진 뒤 달려가는 절벽 아래의 앰뷸런스가 아니라 절벽 위의 울타리가 되고 싶다”며 “예방적 치유가 러빙유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롱포인트(호주)=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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