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현대사의 풍운아 고정훈 ①

1968년 6월 어느 날, 암울하던 시절에 임어당(林語堂)이 조선일보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생활의 발견』을 써 장안의 종잇값을 올리던 시절이었는데 서울중앙방송(HLKA)에서 그의 강연을 라디오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임어당의 연설도 감동적이었지만 통역이 더 빛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통역한 사람은 고정훈(사진)이었다. 말미에 임어당은 “Korean Youngmen, Hurry, Hurry, Hurry!”라고 외쳤고, 고정훈은 “한국의 젊은이여,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라?”고 통역하여 울림을 주었다.
고정훈(1920~1988)은 평북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어머니도 개가하자 고모의 손에 컸다. 유세하는 집안이었다. 중등학교를 마친 그는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했는데 4년을 마치고도 졸업하지 못한 것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하얼빈으로 건너가 북만(北滿)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으며, 해방 직전에는 광복군에 들어가 귀국 업무에 종사했다.

해방을 맞자 평양으로 돌아간 그는 러시아 정보기관에서 영문 번역으로 생계를 이었다. 처가가 조만식(曺晩植)의 집안이었다. 그때 그는 로마넨코 소장과 이강국(李康國)의 신임을 받았다.
잠시 북한에 머물던 고정훈은 남하했다. 38선을 넘을 때 미군 초소에 유창한 영어로 귀순을 설명하자 당장 24군단의 통역관 겸 정보분석관으로 취임하여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미군측 통역관으로 합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쪽 정보원이었던 그가 적국의 통역관으로 참석한 것을 본 소련 대표 로마넨코는 아마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7기로 졸업했다. 곧이어 송호성(宋虎聲) 국방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하다가 공산주의자였던 사령관이 월북하자 고통을 겪으며 다시 노마드의 삶으로 돌아갔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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