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던 술자리는 가라…술잔 대신 찻잔, MZ 모임 달라졌다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장보석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bs010117@naver.com) 2026. 2.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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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차(茶) 한 잔이 MZ(밀레니얼+Z세대)세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어라 마셔라’식 음주 문화가 저물고, 그 자리를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중시하는 차 문화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나누는 ‘다회(茶會)’가 있다. 최근 향긋한 차 한 잔을 매개로 한 소규모 모임이 증가하고 있으며 다구(茶具) 중고 거래 시장도 함께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나누는 ‘다회(茶會)’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성수동 ‘효 하우스’ 다회 모습. (윤관식 기자)
‘티켓팅’ 필수 다회 가보니

찻잔을 사이에 두고 대화 풍성

1월 28일 저녁, 퇴근길 인파로 붐비는 서울 성수동. 힙한 감성의 카페들이 늘어선 거리 속, ‘효 하우스’라는 차 전문 제조사의 문을 열자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바깥의 소란은 잦아들고, 찻물을 데우는 잔잔한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이곳은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다회(茶會)’가 열리는 장소다.

이날 모임의 참가자는 6명. 이들은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에 다회 신청이 뜨자마자 몇 초 만에 마감되는 ‘티(Tea)켓팅’의 승리자들이다. 참가자들은 술도, 커피도 아닌 오직 ‘차’를 매개로 낯선 이들과 마주 앉는다. 떠들썩한 말소리 대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커피머신의 기계음 대신 찻물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이날의 주인공은 청향이 깊은 우롱차였다. 뜨거운 물이 찻잎을 적시고, 은은한 향이 퍼지자 처음 만난 이들 사이의 어색함도 자연스레 풀렸다. 차를 홀짝이는 사이, 대화가 천천히 오가기 시작했다. 직장에서의 소소한 일상부터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얘기까지, 찻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따라 대화의 밀도는 점차 풍성해졌다. 술자리와는 다른 차분하고 진중한 분위기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평소에도 차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였다. 20대 참여자 김원식 씨(가명)는 “차가 우러나는 그 짧은 기다림이 감정을 다스리게 해주고, 찻잔의 온기가 긴장을 풀어준다”고 말했다.

모임을 이끄는 이는 효 하우스 운영자 신윤걸 씨다. 차 제조업을 본업으로 하는 그는 “좋은 차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간과 차를 모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신윤걸 씨는 “다회 모임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최근 인기를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며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들려줬다.

총평. 하루의 끝 분주한 일상 너머에서 마주한 다회는 예상 밖의 고요함과 사유의 깊이를 안겨줬다. 취향을 나누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 조용한 찻자리는, 흔한 술자리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MZ 차 문화’ 확산 어느 정도?

중고 거래도 ‘다도 용품’ 바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차 문화 확산은 데이터로도 뚜렷이 나타난다.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7일까지 생성된 다회 모임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173% 증가했다. 다도 모임 가입자 수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243% 급증했다. 특히 성수동과 연남동 등 MZ세대가 모이는 지역에서는 다회 공지가 뜨자마자 마감되는 ‘티켓팅’ 현상이 벌어진다는 후문이다.

차 문화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다도 관련 용품 거래 활동으로도 번지고 있다. 과거 어르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찻주전자, 찻잔, 찻잎 등 전문적인 다구 거래가 2030세대 사이에서 활발하게 이뤄진다. 1월 1일부터 27일까지 당근마켓 내 ‘다도 차판’ 검색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777% 증가했다. ‘다도 찻상’은 199%, ‘다도구’는 149% 급증했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실거래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아지며 다도 관련 용품은 중고 거래 시장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최근 차판, 찻상 등 다도 관련 중고 거래 검색량이 눈에 띄게 늘고 있고 실제 거래도 활발하다”며 “차를 즐기는 문화 등 젊은 세대의 취향 변화가 데이터에도 드러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흐름은 유통 업계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차 음료 판매량이 전년 대비 8% 증가했다. 특히 20대 고객의 차 음료 구매는 2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벅스의 차 음료 판매를 견인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이른바 ‘말차코어 트렌드’였다. 스타벅스가 집계한 지난해 20대 고객 인기 티 음료 상위 10개 중 3개가 말차 음료였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말차가 새로운 음료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타벅스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말차 음료를 재해석하는 한편,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논카페인 차 음료 라인업도 지속해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감성적 요소보다는 티 음료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가 뚜렷해지는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티 음료를 기획·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회는 유행 아닌 ‘정상의 회귀’

“찻잔 팔려면 감성부터 채워야”

MZ세대가 다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건강을 중시하는 MZ세대 성향과 바뀐 모임 문화가 결합한 결과로 분석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만취 회식 문화를 피하는 MZ세대에게 차는 술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 덕분에 이제 차는 수행의 도구가 아닌 모임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회 문화 열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차 문화는 본래 한국의 전통이지만, 한동안 폭음 문화와 커피 중심의 소비 패턴에 가려졌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차 문화는 본래 우리 전통의 주류였으나, 근대화 과정의 폭음 문화와 커피 쏠림 탓에 비정상적으로 축소됐던 것”이라며 “최근의 확산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회귀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에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차를 마시는 트렌드 자체는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며 “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통일된 문화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차를 즐기는 문화가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차 문화의 확산은 산업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차 시장 규모는 1조5818억원으로, 2020년의 1조973억원에서 44% 성장했다. 수요가 이미 확인된 만큼, 과제는 공급의 질이다. 전문가들은 MZ세대의 다회 트렌드가 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공간의 혁신과 세분된 마케팅 전략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통찻집은 젊은 세대가 보기엔 다소 낡고 시시해 보일 수 있어 단순한 복고가 아닌 세련된 인테리어, 품격 있는 식기 등 고급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찾아가고 싶어지는 감성적 공간을 만든다면, 차 문화는 K-컬처와 결합해 글로벌 프랜차이즈 산업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시각적 완성도와 정서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하재근 평론가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려면 SNS에 공유할 수 있는 시각적 요소와 함께, 차의 건강 효능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장보석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7호·설합본호(2026.02.11~0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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