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야, 이제 편히 쉬어”…유가족 눈물의 기자회견
“母 고생 덜어주려한 착한 딸”
구청장 “진심으로 애도·위로”
구의장 “유가족 아픔에 공감”
유가족협의회 “가슴 벅찰 뿐”

"지혜야, 이제 편히 쉬려무나."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로 딸을 떠나보낸 김영순(70)씨는 붉어진 눈시울로 마이크를 잡았다. 참사 후 26년 만에 중구로부터 "오랜 세월 희생자 인정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들은 그는 "고맙다는 말보다 왈칵 서러움이 먼저 터져 나왔다"고 했다.
11일 중구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씨는 "열일곱 살 꽃 같은 딸을 잃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날 구는 국민권익위원회 권고를 수용해 고 이지혜 학생이 참사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부모를 돕겠다고 어린 것이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세상은 내 딸을 피해자가 아닌 종업원이라 불렀다. 지혜는 그저 엄마 고생 덜어주려던 착한 딸이었을 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종업원' 제외 조례 개정 눈앞
인현동 화재 참사로 숨진 고 이지혜 학생이 희생자에서 배제된 사연은 20주기였던 2019년 인천일보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기나긴 소송 끝에 고향인 경남 김해로 내려간 김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제가 사준 새 옷을 입고 눈을 감은 딸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떠올렸다.<인천일보 2019년 10월28일자 3면 '인천 싫어져 떠나도 "여전히 불안하고 숨 막혀"'>
1999년 10월30일 고 이지혜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러 간다며 인현동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지하 노래방에서 일어난 불로 상가 건물이 연기에 휩싸이면서 사상자는 137명에 달했다. 참사로 숨진 57명 가운데 청소년은 56명이었고, 고 이지혜 학생도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참사 이듬해인 2000년 2월16일 중구 보상심의위원회는 "종업원 여부에 관한 법적 증빙서류 확보 후 보상금 지급 여부 결정"이라는 의견을 덧붙이며 고 이지혜 학생에 대해선 '보류'를 의결했다. '인천시 중구 인현동 화재 사고 관련 보상 조례'는 종업원을 가해자·실화자와 함께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고, 보류 상태는 26년째 지속되고 있다.

▲중구·구의회 "유가족 아픔 공감"
유가족들은 지난해 9월 "종업원을 배제한 조례는 평등권을 침해한 부당한 차별"이라며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해 말 중구의회 정례회 기간에는 조례 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도 이어졌다. 국민권익위는 이달 초 관련 조례에 대해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도 개선 의견을 표명하기로 의결했다.
특히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고 이지혜 학생에 대해 국민권익위가 "화재 사고에 책임이 없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면서 명예 회복 움직임도 급물살을 탔다. 이날 유가족들과 만난 김정헌 구청장은 "국민권익위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하겠다"며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인현동 화재 관련 조례가 개정되면 가해자 위치에 내몰렸던 고 이지혜 학생은 희생자로 공식 인정된다. 이종호 구의회 의장은 "유가족 의견에 공감한다"며 "조례 개정을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원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협의회장은 "해마다 수첩 첫 페이지에 '지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썼다. 내년부터는 그 문구를 쓰지 않아도 된다"며 "26년 기다림 끝에 가슴이 벅찰 뿐"이라고 말했다.
/이순민·전민영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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