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아내 살해 누명 벗었지만"…끝내 듣지 못한 '무죄'
수사 위법성 인정…23년 만에 판결
백혈병 사망 후 무죄…뒤늦은 명예회복

"사랑하는 아내를 죽여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는 파렴치한 누명을 쓰고 19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끝내 이 무죄 판결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년간 복역했던 무기수가 사건 발생 23년 만에,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지 1년 10개월 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지원장 김성흠)는 11일 살인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숨진 고(故) 장모 씨(사망 당시 66세)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장 씨는 지난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 39분쯤 전남 진도군 의신면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 앞 교차로에서 1t 트럭을 몰다 고의로 추락 사고를 내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당시 45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장 씨가 아내 명의로 가입된 9억 3,000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주장했다. 장 씨는 줄곧 "졸음운전으로 인한 단순 사고"라고 항변했으나, 1·2심 법원과 대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2005년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그러나 23년 만에 열린 재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졸음운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장 씨가 아내를 고의로 살해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사고 당시 운전 조작에 대해 "공소사실처럼 교차로에서 운전대를 왼쪽으로 조향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도 저수지 추락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고 지점 잡초 속에 바윗돌이 있어 피고인이 이를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다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수사 절차상의 중대한 위법성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사고 직후 경찰이 영장 없이 저수지에서 차량을 인양해 압수했고, 이를 토대로 한 국과수 감정 결과 등은 위법수집 증거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당시 수사기관이 기본적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은 채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음이 법원을 통해 공식 확인된 셈이다.
검찰이 강력한 살인 동기로 내세웠던 '보험금'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법원은 장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는 사정이나 다수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내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보험 가입 경위 등에 대한 피고인의 변소가 충분히 수긍된다"고 판시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장 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아온 박준영 변호사는 법정 앞에서 회한 가득한 소감을 밝혔다. 박 변호사는 "사소한 억울함도 참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하물며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19년을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이라며 고인의 명예회복을 반겼다.
박 변호사는 "고인은 생전 접견에서 '24년을 함께 산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를 어떻게 돈 때문에 죽일 수 있겠느냐'며 억울해했다"면서 "그러면서도 졸음운전이라는 중대 과실로 아내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경찰과 검사, 엉터리 감정 결과를 내놓은 국과수, 그리고 이를 걸러내지 못한 판사들까지 모두의 잘못이 합쳐진 사건"이라며 "그런데 '모두의 잘못'이라 해서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처럼 되고 있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자칫 영구 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했으나, 현직 경찰관인 전우상 전 경감이 사건 기록을 다시 검토하며 '엉터리 수사' 의혹을 제기해 재심의 불씨를 댕겼다. 전 전 경감의 재조사 결과와 해병대 전우회원, 보험설계사 등의 용기 있는 증언이 더해져 닫혀있던 재심의 문이 열릴 수 있었다.
장 씨는 2009년부터 세 차례나 재심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당했고, 2024년 1월 대법원에서 우여곡절 끝에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장 씨는 그토록 고대하던 재심 첫 재판을 보름 앞둔 지난 4월, 급성 백혈병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그가 사망한 날은 형 집행정지일이었다.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기자 hyunk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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