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이야기] '도움'이 아닌 '권리'가 흐르는 섬을 꿈꾸며

오늘 아침, 여러분의 출근길은 어떠셨나요? 현관문을 열고 나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정류장으로 향해 늘 타던 버스에 올라타 스마트폰을 보며 일터로 향하는 그 평범한 일상 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과정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 과정에서 '내 앞의 턱이 몇 센티미터인지', '내가 탈 버스에 계단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오늘 내가 가려는 목적지의 화장실 문 폭이 휠체어가 들어갈 만큼 넓은지'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부끄럽게도 저는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 입사하기 전까지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언제나 매끈한 평지였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내 의지만 있다면 닿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지금, 저는 제 삶을 공고하게 지탱해온 그 '당연함'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아주 불편하고도 낯선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누리는 이 자유는, 혹시 누군가의 배제를 당연하게 전제로 한 특권은 아니었을까?"
사실 제주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중학교 시절, 처음 제주로 이사를 왔을 때 저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묘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미움이나 거부감이라기보다, 그 친구가 마주하는 세상과 내가 걷는 세상이 어딘지 모르게 결이 다르다는 막연한 감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저 어렸고, 그 '다름'의 정체가 무엇인지 깊이 파고들기보다 그저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의 불편함은 그의 몫일 뿐, 나의 일상은 여전히 매끄러웠으니까요.
그런 저는 입사 후 제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익숙하게 보아온 제주의 풍경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주 도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제주는 항상 생겼다가 없어지는 카페와 고즈넉한 돌담길, 항상 내 옆의 있는 바다 그리고 언제나 보이는 편의점들로 가득한 시골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화한 현재 저의 눈으로 다시 본 제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낭만적이라 생각했던 돌담길은 누군가에게는 통행을 가로막는 좁은 미로였고, 카페의 입구에 놓인 고작 한 뼘 높이의 문턱은 누군가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제주는 평범한 섬이기 이전에, '문턱'과 '계단'이라는 수많은 단절이 모여 만든 거대한 장애물 집합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인권을 이야기할 때 '돕는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합니다. 저 역시 솔직히 고백하자면, 입사 지원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막연한 선의를 품고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진실은 제 생각과 전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걷다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마주치면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하시나요?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 혹은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동정의 마음이 먼저 드시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는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먼저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장애인이 이동에 제약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신체적 장애 뿐만이 아닙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저상버스가 턱없이 부족하고, 버스기사들은 이런일이 발생하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자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저이지만, 저상버스에 휠체어가 타 있는 모습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인권은 누군가의 선의나 자비에 기대어 얻어내는 일시적인 시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설계하고 보장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자 '기본값'이어야 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해야 할 진정한 소명은 '불쌍한 누군가를 돕는 활동'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 '그 누구도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불쌍해지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권리'를 사회에 요구하고 함께 외치는 일임을,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제주는 사람들이 말하기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거친 지형이라는 자연적 조건, 노후화된 시설이라는 물리적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는 남의 일'이라는 무관심이 만든 견고한 인식의 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섬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풍경의 화려함보다 그 풍경을 누리는 이들의 평등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저는 도민들께,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제주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요?"
단순히 겉모습만 보기 좋은 섬인가요, 아니면 누구나 신체적 조건에 상관없이 제약 없이 그 풍경 속을 함께 거닐 수 있는 섬인가요? 장애인이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돌아 다니고, 휠체어를 탄 채로 바다의 파도를 가장 가까운 백사장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제주. 저는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사한 지 이제 얼마 안지났지만, 아직 저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길은 오늘 누구에게나 똑같을까?"
"지금 나의 편안함이 혹시 누군가의 소외와 희생이 동반되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나의 작은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당연한 내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저는 이제 막 '당연함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조금은 불편하지만 평등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던지는 이 작은 질문들이 하나둘 모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걷는 제주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무심코 지나쳤던 아주 사소한 주변의 풍경들에 질문 하나를 던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사소한 '불편함'을 인지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인권이 시작되는 위대한 첫걸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동진/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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