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박정민 "멜로 피한 건 아닌데, 누가 볼까 싶었죠"

장혜령 2026. 2. 11. 14: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영화 <휴민트> 박정민 배우

[장혜령 기자]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사람(Human)과 기밀, 정보(Intelligence)의 합성어다. 영화는 제목처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정보원을 둘러싼 남북 요원의 대립과 공조를 그린다. 밀도 높은 액션과 인물의 감정이 뒤섞이는 혼합 장르다. 전작 <베를린>과 세계관을 공유하며 <베를린>, <모가디슈>를 있는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이다.

극 중 헤어진 연인 채선화를 찾으러 머나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찾아든 순정남 박건을 연기한 박정민을 9일 종로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왜 내게 좋은 역할을 준 거지?' 의문이었다"
 박정민 배우
ⓒ 샘컴퍼니
- 류승완 감독과 여러 번 협업했다. 함께 하게 된 이유는?
"<밀수> 무대인사 때 감독님이 액션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다. 좋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휴민트>를 할 건데 생각이 있냐는 대화가 오고 갔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에 직진성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현해 낼지, 톤 앤 매너가 궁금했고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 류승완 감독의 연출뿐만 아니라 외유내강 제작 작품도 자주 출연했다. 부르면 달려가는 의리인 건가.
"안 한 것도 못 한 것도 있다. 비교적 마음이 열려 있는 건 사실이다. 감독님하고 합도 잘 맞아서 제작이든 연출이든 잘 나오겠다는 믿음이 있다. 제작사와 인연도 깊다. 아무것도 아닌 20대 중반에 중요한 역할을 주었고 믿어준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 <밀수>의 장도리는 증량과 곱슬머리로 외모를 최대한 망가트렸는데 <휴민트>의 박건과 상반된다.
"사실 놀랐다. '왜 내게 좋은 역할을 준 거지?' 의문이었다. 이야기의 변곡점은 박건의 감정 변화다. 선화라는 목적이 분명한 야생적인 인물, 멋진 캐릭터란 말에 체육관을 다니면서 외적인 준비를 했다. 아무튼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자아도취 되기 마련이다. 잘 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그 인물과 저를 붙여 놓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로는 갈 수 없으니 스스로를 믿게 된다."

- 이번 비주얼은 유독 남달랐다.
"박건의 외모를 완성하려 러닝을 하며 부기를 뺏다. 흔히 여백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확실히 러닝 할 때와 아닐 때 얼굴선이 달리 보이더라. 그래서 촬영 전에는 꼭 뛰었다. 박건이 멋지게 나와야만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다. (웃음) 촬영, 조명 감독님이 애써 주셨다. 자연광, 조명 각도에 따른 얼굴을 연구했다. 예쁘고 남자다운 앵글을 찾으셨고 그 덕을 봤다."

- 첫 등장부터 멋지다. 어둠 속에서 다트 던지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전날 준비해 가는 성격이 아니고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배우라 따로 준비한 건 없었다. 다트를 던지는 모양새 정도, 등장했을 때의 표정, 톤만 생각했다. 다만 박건의 첫 등장인 만큼 다들 잘 찍어야 한다는 게 느껴졌다. 촬영 환경이 매우 좁았는데, 자칫하면 다들 고생시키겠다는 부담이 컸다. 특히 브로커가 던진 병을 받아서 다시 던지는 장면은 당연히 CG로 해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던지고 받으라 해서 이게 가능한가 싶었고 무서웠다. 연습은 하지 않았지만 기적적으로 두세 번 만에 해냈다."

'선화'를 목표로 달리는 남자
 영화 <휴민트> 스틸컷
ⓒ NEW
- 고독, 하나의 목표로만 직진하는 역할인데, 레퍼런스 삼은 영화나 인물이 있나.
"참고한 영화는 많다. 감독님이 USB에 옛날 영화를 담아 주시거나 DVD를 빌려주기도 했다. 007 영화나, 프랑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버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홍콩 영화 위주로 이야기했다. <첩혈쌍웅>, <영웅본색> 등 옛날 홍콩 영화에서는 '사내'를 그런 인물로 그렸다. 대체 저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뭘 참고하라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웃음) 저는 주윤발이 아닌데 외모나 목소리로 주윤발을 연기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분위기라거나 취할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봤다."

- 말이 많지 않은 박건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고 표현하려고 했나.
"침묵이 너무 답답했다. 저는 대사에 기대는 편이라 말해야 감정이 나오는데 바라만 보는 게 어려웠다. 상대방은 오해하고 있고 진심을 알아줄지 갈등 섞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데, 대사가 없어 힘들었다. 박건은 원리원칙주의자이고 갈등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국가에 충성하는 이념적인 인간이라 선화가 떠난 거다. 그래서 모든 표현에 거칠다. 무언가를 잃은 심경의 변화, 무너져가는 신념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고 한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게 익숙하다. 그런 사람의 고독을 표현해야 했다. 오히려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떨어져서 표현해야 했다."

- 박건의 심리 변화로 전개되는 느낌도 크다. <헤어질 결심>에서 구축된 사랑의 화신 이미지가 꽃 피었다고 봐도 되나.
"배우는 내면에 없는 게 툭하고 나오지 않는다. 저를 차분히 뒤져보고 꺼내는 싸움이다. 저의 내면에서 순애보적인 모습을 찾아보려고 고민했고 그 가운데서 무엇인가 발현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휴민트>는 누군가를 구출하는 액션이라고 생각했지, 둘의 서사가 깊게 표현될지 몰랐다. 아무래도 세경씨가 합류하면서 멜로 기류가 짚어지는 느낌이었다. 액션 장르로 알았는데 어쩌면 멜로일 수 있겠다는 것을 촬영 중간에 알았다. 창가에서 선화의 노래를 듣는 장면 때문에 멜로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틋함은) 물고문 장면에서도 발현된다. 사랑하는 여자가 잘못해서 잡혀 왔는데 고문을 할 거면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 최소한 죽이지는 않겠다는 마음이다."

-옛 연인이자 단 하나의 사랑, 채선화를 연기한 신세경과 호흡은.
"신세경이란 배우에게 마법 같은 분위기가 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아도 캐릭터로서 나를 바라봐 줄 때,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다. 예전 군대 내무실에서 <하이킥>을 보는데 명확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기억나더라. 호흡을 맞출 때는 박건으로서 많이 기댔다. '내일은 신세경이 있으니까' 싶었고, 같이 촬영하지 않아도 그 장면을 기억하면 신기하게 집중되었다. 강단 있어 보이지만 지켜주고 싶은 양면적인 이미지가 함께 있는 배우였다.

선화나 박건의 행동은 우리끼리 만들어 낸 전사가 있었다. 그런 전사를 만들어 놓으면 도움이 된다. 선화와 찍었던 영상 속 말투와 지금은 다르다. 이별하면 상대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상대와 보낸 시간이 그리워진다.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화를 발견한 후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부여잡고 싶었는데 여러 선택이 꼬여가면서 벌어진다."

- 총기 액션, 육탄전, 카 체이싱 등 가장 힘들었던 액션은.
"폐쇄된 공간에서 마피아 보스랑 싸우는 장면이다. 액션이 힘들었던 건 아닌데, 환경이 열악했다. 심지어 <하얼빈>에서 우진 선배랑 술집 배경으로 촬영했던 공간이다. 그때는 방 하나를 썼다면 이번에는 전체를 빌렸다. 핸드폰도 안 터지고 여러모로 힘들었다. 한두 시간 동안 말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말을 하곤 했다. 다들 저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부끄러웠다. 회복이 잘 안돼서 애먹었는데 그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다."

-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무너졌음을 인지해 준다면 다시 일어설 계기가 된다. 그날 감독님이 평소 저답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끌어올려 주셨다. 하지만 현장은 늘 순조롭지만은 않다. 늘 저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헤쳐 나갈 때도 있고 감독님이 도와줄 때도 있다."

- 전작 <얼굴>이 저예산 영화였다. <휴민트>는 대규모 상업영화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두 작품 다 촬영할 때는 같은 마음이다. 다만 개봉 후에 <얼굴>은 부담이 없다. 잘 되면 좋지만 안 되었다고 해도 '좋은 시도였다'하면 회복이 빠르다. 반대로 큰 영화는 배우로서도 부담이 있지만 책임은 나눠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 때문에 긴장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관객이 잘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휴민트>는 액션과 멜로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액션도 감정의 표현 중 한 방법이다. 액션에 박건을 입히라면 감정을 실어 주어야만 한다. 총을 쏘면서도 누굴 바라보고 보호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했다. 특정 장르를 구분 짓기보다 박건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님도 기존 영화와는 다르게 고전적인 색깔로 첩보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저도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성을 목표로 질주하는 역할을 했다. 예전에 '멜로를 연기하는 박정민을 볼 관객의 알레르기 반응을 걱정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멜로를 기피한 건 아니었는데, 누가 궁금해할까 했던 거다. 이번에 해보니까 (제 눈에)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고 평가도 나쁘지 않아 용기를 얻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웃음)"
 박정민 배우
ⓒ 샘컴퍼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더무비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