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을 느낀 국보, 이건 그냥 검이 아니다
[전갑남 기자]
박제된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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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 전시회의 홍보물. 전시회는 3월 3일까지 예정되었다. |
| ⓒ 전갑남 |
인내로 빚어낸 영웅 : 늦깎이 무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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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장군의 영정 사진들. 장우성이 융복(군복)을 입고 한 손에 지휘봉을 표준영정을 그렸다. 이상범은 영의정으로 추증된 장군의 '성인(聖人)'에 가까운 인격적 면모를 부각하였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명한 푸른색 의복과 장군의 당당하고 용맹한 기개를 포착하여 그린 작품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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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견제 사이 : 유성룡, 선조 그리고 고독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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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과정을 기록한 국보 132호 징비록. '징비(懲毖)'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는 뜻으로, 전쟁의 원인과 전황을 냉철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한 뼈아픈 반성이 담긴 기록물이다. |
| ⓒ 전갑남 |
전시장 벽면에 배치된 당시 조정의 문서들을 보며 나는 장군이 느꼈을 심적 고통을 상상해 보았다. 적군인 왜군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조국을 위해 칼을 들어야 했던 지휘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것은 어떤 신체적 고문보다 아팠을 것이다.
승리의 전율 뒤에 숨겨진 사투 : 3대 대첩의 재발견
전시관 한 편을 가득 채운 한산도, 명량, 노량의 3대 대첩에 관한 디지털 영상과 전술 지도들은 장군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학익진이라는 창의적인 전술로 적을 포위 섬멸한 한산도 대첩의 장엄함에 이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명량대첩의 기록이었다. 칠천량의 참패 이후 조선 수군이 사실상 궤멸한 상황에서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 장군은 결연히 답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마주하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외쳤던 그 비장한 선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승리의 쾌감보다 그 승리를 위해 장군이 감내해야 했던 '준비의 과정'이었다.
거북선의 독창적인 설계, 판옥선의 구조적 이점 활용 그리고 조류 흐름을 읽기 위해 밤낮으로 지형을 살피던 장군의 치밀함이 유물 곳곳에 배어 있었다. 승리는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장군의 처절한 사투가 빚어낸 눈물겨운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백의종군과 국보가 증언하는 장군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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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정신을 상징하는 국보 156호 '이순신 장검'. 장군의 시구가 새겨있다. "삼척서천 산하동색 (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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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647호로 지정된 천자총통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강력한 화기(화포와 탄환)들이 전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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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 7책. 당시의 전황, 해전의 상세한 기록, 거북선 건조 과정뿐만 아니라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세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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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중일기 친필본의 일부,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결단이 담긴 대목이다. 명량해전 전의 다짐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와 같은 구절들이 포함되어 있다, 장군의 기개가 녹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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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아들 면(葂)을 향해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라며 절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 침묵을 뚫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적셨다. 전쟁의 성웅도 결국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후의 순간과 우리에게 되새기는 이순신의 애국충정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노량 해전의 최후였다.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그 새벽, 장군은 자욱한 포연 속에서 직접 북채를 잡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적 탄환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이 땅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던 지고지순한 배려이자 집념이었다. 북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아들에게 갑옷을 입혀 북을 치게 하고 숨을 거둔 그의 최후는 전시장의 침묵 속에 깊은 비장함으로 남아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고, 가장 찬란한 조선의 노을이 되어 바다를 물들였다.
나는 장군이 보여준 애국충정(愛國忠情)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금 새겨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추앙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군이 몸소 보여준 애국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업적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과 책임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완수해내는 '직업적 소명 의식'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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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장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되었던 '승전고(勝戰鼓)'와 관련된 유물. 진격이나 후퇴, 전열 정비 등의 신호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을 것이다. |
| ⓒ 전갑남 |
전시는 곧 끝나가지만, <우리들의 이순신>이 울린 북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시개요
- 전시명 : 우리들의 이순신
- 기간 : 2025. 11. 28.(금) ~ 2026. 3. 3.(화)
-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2
- 전시품: 『난중일기』(친필본), <이순신 장검>, 『이순신 서간첩』 등 258건 36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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