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탕에 들어온 여성, 의자 없는 식당...여기에선 일상입니다

김용국 2026. 2.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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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의 오사카 생존기] 오사카의 '강북' 지역에서 살아가기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김용국 기자]

▲ 오사카를 가로지르는 요도강 오사카의 가운데 쪽엔 요도강이 흐르고 있다.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수많은 다리로 연결하여 남과 북을 지나다닌다. 강물은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湖)에서 시작해 교토를 흘러 오사카를 가로지르고, 오사카만에서 바다와 만난다. 묘하게도 요도강의 남쪽에 유명한 관광지와 주요 행정관청이 몰려있다.
ⓒ 김용국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오사카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째다. 처음부터 여행객이라는 인식은 없었는데, 이젠 서서히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왼쪽 차선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 놀랄 때나, 아침에 눈을 떠서 바깥과 차이 없는 방의 싸늘한 냉기를 느낄 때, 남탕에서 청소를 하는 여성 직원과 마주칠 때. 여기가 일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걸 어김없이 느낀다.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라고 느낄 때

대학에서는 연구실과 도서관 등지에서 주로 지낸다. 한국과 일본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조만간 일본어 발표 수업도 예정되어 있어서 이것도 준비해야 한다. 담당교수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런 부담 갖지 말라"고 하지만, 일본인들 앞에서 일본어로 하는 발표에 부담이 없을 리 없다. 그래도 기꺼이 즐기는 수밖에.

'주민'으로서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내고 마트와 상점에서 장을 본다. 이젠 어디서 무엇을 싸게 팔고 언제 할인을 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교통카드를 수시로 충전하고, 마트에서 사용할 회원카드에 돈을 채워놓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일본은 아직 신용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아서 현금을 자주 사용한다. 1주일만 지나면 1엔부터 500엔짜리까지 6가지 동전이 수북이 쌓인다. 동전은 편의점에서 공과금 납부할 때 한꺼번에 사용한다.

점심때는 가성비 좋은 맛집 앞에서 줄을 서기도 한다. 일본은 예약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만 점심은 예약 없이 먹는 일도 잦다. 맛집이나 가성비 좋은 식당은 점심 예약을 아예 안 받는 곳도 있어서 대기가 흔한 풍경이다.

아침이나 점심은 세트 메뉴로 해결
▲ 튀김정식 세트 일본인 지인의 소개로 가게 된 유명 덴뿌라 식당의 튀김정식. 가격은 900엔이다. 예약을 받지 않고 선착순 입장이라 대기는 기본이다.
ⓒ 김용국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끼니 해결이 큰 고민거리였다. 여기 오니 별걱정이 없다. 커피집은 모닝세트를, 식당은 점심세트를 대부분 운영한다. 모닝세트는 커피 등 차를 포함해서 5백~8백 엔 정도다. 커피에 야채 샐러드, 토스트, 요구르트, 계란 등을 함께 먹으면 한 끼 해결이 된다. 점심은 대부분의 식당이 1천 엔 안팎의 가격에 런치 세트를 제공한다. 이른바 '오마카세'나 코스 요리가 아닌 이상 2천 엔을 넘는 곳은 거의 없다. 평상시 단품으로 팔던 메뉴 몇 가지를 모아서 내놓기도 한다. 그날의 추천 메뉴를 먹는 것도 가성비가 높다. 세트 메뉴 운영시간을 잘 봐두면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다.
▲ 모닝세트 교토의 한 커피점에서 주문한 모닝세트. 오전에 20명 한정 판매에, 커피를 제외한 메뉴를 300엔 가량 에 제공한다.
ⓒ 김용국
대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구내식당 밥도 자주 먹는다. 밥, 국, 야채, 생선, 반찬 등 메뉴 중에서 원하는 것만 골라 따로 계산하는 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특이한 건 '혼밥'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선지 식당에는 1인석이 많다.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고 아예 서서 먹는 자리도 있었다. 저렇게 먹어서 소화가 될까 싶은데,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가 편한 걸까.
밥도 술도 서서 먹는 문화
▲ 전철역 담과 맞붙은 선술집 한큐선 이시바시한다이마에 전철역 담과 맞붙은 선술집. 가게 내부는 서서 마시는 공간이 전부다.
ⓒ 김용국
그러고 보니 일본에는 서서 먹거나 마시는 곳이 적지 않다. 길거리의 우동집을 들어갔더니 싼 가격(400엔 메뉴부터 시작)에 파는 대신, 좌석이 아예 없었다. 반찬도 없이 그냥 서서 후루룩 먹고 나가는 곳이었다. 손님 입장에선 싼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주인은 회전율이 높아서 박리다매를 노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곳곳에 있다.

며칠 전엔 호기심에 선술집(일본어로 타치노미라고 한다)에 들어갔다. 담벼락 좁은 골목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정말로 모두 서서 마시고 있었다. 의자가 아예 없었다. 일본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의자가 없으면 서서 마시는 곳"이라고 했다. 내 옆에 서 있던 남성은 안주도 없이 연신 술만 주문해서 마셨다.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유니폼을 입은 주인은 손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혼자 음식을 요리하느라 바쁘다.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도록 재떨이가 탁자에 놓인 모습을 보니 마치 80~90년대로 돌아간 모습이다. 우리도 예전엔 그랬지.

오사카가 관광지라는 인식은 사라져간다. 내가 사는 곳이 관광지가 아니라서 더 그런 듯하다. 아주 가끔 약속이 있어서 시내 번화가를 나갈 때면 '여기가 그 유명한 곳이구나' 하고 감탄을 한다. 마치 수도권 변두리 주민이 서울 시내 구경을 간 듯한 기분이랄까.

오사카, 인구만 870만... 규모는 부산의 2.5배
▲ 오사카 선술집 풍경 오사카 주소역 인근의 선술집 풍경. 모든 손님들이 서서 술을 마시는 곳으로, 싼 가격에 가볍게 한 잔 하려는 손님들로 항상 만석이다.
ⓒ 김용국
흔히 오사카라고 하면 오사카부(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 특별시·광역시·도 등 광역자치단체가 있듯, 일본에는 47개의 도도부현(도쿄도, 홋카이도, 오사카부, 교토부와 43개의 현)이 있다.

그중 오사카부에는 중심 도시인 오사카시를 비롯하여 30개 넘는 시가 있다. 인구는 오사카시 280만 명을 비롯해, 총 877만 명(2026년 1월 통계 기준)이나 된다. 오사카를 일본 제2도시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제2도시 부산(인구 약 324만 명)과는 규모 면에서는 차이가 작지 않다. 인구도, 면적도 오사카가 2.5배 이상이다.

오사카의 가운데 쪽엔 요도강이 흐르고 있다.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수많은 다리로 연결하여 남과 북을 지나다닌다. 강물은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湖)에서 시작해 교토를 흘러 오사카를 가로지르고, 오사카만에서 바다와 만난다. 묘하게도 요도강의 남쪽에 유명한 관광지와 주요 행정관청이 몰려있다.

오사카 여행을 가게 되면 으레 방문하는 곳들은 십중팔구 남쪽에 있다. 예를 들어 오사카성, 도톤보리, 우메다, 스카이빌딩, 난바, 덴노지, 하루카스 300, 츠텐카구 등은 전부 남쪽에 있다. 북쪽은? 컵라면 박물관, 엑스포 기념공원 정도가 알려진 관광지 아닐까 싶다. 북쪽은 교토에 가기 위해 거쳐가는 지역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마치 한국 서울의 강남과 강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오사카에 그런 구분은 전혀 없는 듯하다. 다만, 남쪽이 오사카 중심부고 번화가라는 인식 정도일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북쪽이다. 당연히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더욱 좋다. 사람 북적이는 곳을 싫어하고 모두들 가는 관광지에서 줄 서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들 가는 곳에서 모두 같은 표정으로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다.

오사카 여행지는 대부분 요도강 남쪽에
▲ 사츠키야마 전망대 오사카 북부 이케다시의 사츠키야마의 전망대. 이케다시는 라멘박물관으로도 인기가 높다.
ⓒ 김용국
숙소에서 불과 20~30분 거리지만, 내가 강을 건너가는 일은 흔치 않다. 특별히 볼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동네 반경 10km 이내 지역에서 생활한다. 내가 속해 있는 오사카대학은 묘하게도 3개의 소도시가 맞붙어있다. 북쪽으로는 미노오시, 서쪽으로는 이케다시, 남쪽으로는 토요나카시. 모두 조용하고 경치 좋고 깨끗한 동네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동네 곳곳을 둘러보거나 산에 오르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이곳엔 폭포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성터도 있지만 대부분 입장료가 없다. 시내에서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보다 경관이 뛰어난 곳도 있다. 관광지가 아니라서 사람이 붐비지도 않는다. 일본을 다녀보니 입장료 금액과 만족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시장 논리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금액을 책정한 것은 아닐지.

특히 오사카나 교토의 경우는 무료 개방된 곳 중에도 훌륭한 곳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오사카의 오사카역 바람의 전망대, 미노오 폭포나 사츠키야마 전망대, 교토의 교엔(일부 시설 무료 예약 필수),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치쿠린)과 그 뒤쪽 전망대, 후시미이나리신사는 추천할 만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가는 곳만 몇 군데 찍다가 돌아가는 게 여행이 돼버린 시대다. 오사카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시간과 정보의 한계로 불가피한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인지 여행객이 아닌 주민으로 살아보니 오사카를 찬찬히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로 많이 돌아다녔더니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관공서,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어느 슈퍼가 싼지, 어느 가게가 몇 시에 할인을 많이 하는지 따위도 알아가고 있다.

오사카 '여행'이 아닌 '일상'이 주는 즐거움
▲ 도요나카시청 근처 이발소 도요나카시청 근처 이발소. 커트 가격이 1000엔이다. 일본 물가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 김용국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사소하리만치 소소한 일상을 담고, 감성을 자극하는 화면 구성에, 기복이 적고 느린 스토리 전개가 주를 이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좋은 예이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우연히 봤는데 의외로 빠져들었다. 자급자족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빠른 전개와 강렬한 메시지 전달에 익숙한 이들은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잔잔하다'고 느꼈다. 일본에 살면서 문득 드는 생각.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 역시 잔잔한 일상을 원했던 건 아닐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빨라야 하고, 뛰어나야 하고, 유능해야 살아남는 여느 직장인처럼, 상처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왔다. 마음 한 편에선 쉼표를 찍고 싶다고 외쳐댔지만 무시하면서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나 역시 크고 작은 '이익'을 바라면서 그래왔으니 누굴 탓 할 일도 없다.

여기 오니 마치 가상의 적이 없어진 느낌이다. 오늘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세상 무너질 것처럼 일을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예의상 술을 함께 마셔야 할 상대도 없고, 혼자서 밥을 먹는다고 면박을 주는 동료도 없다. 낮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남은 시간엔 혼자 밥 먹고 산책하고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돌아가는 삶이 내겐 어색하지만, 소중하다. 혼자라서 외롭지만 혼자라서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이다. 오사카 여행이 아닌 일상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짧은 일본 생활 동안 2차례의 짜릿한 장거리 '여행'을 경험했다. '히로시마 공짜 투어'와 '삿포로 눈폭탄 고립 여행'이 그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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