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등장에 긴장하는 증권·자산운용업계

조슬기나 2026. 2. 1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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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대규모·장기·성과 중심' 재편 전망
"기금, 민간 전문가 중심 독립적 운용해야"
책임구조 명확화·신뢰 확보가 제도 안착 관건

계약형 중심이던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기금형' 제도가 병행 도입되면서 금융투자업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대규모·장기 자금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하며 운용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한편,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금 운용의 책임 구조와 지배구조를 명확히 하고 기업과 근로자의 부담을 고려한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회 잡아라"…운용 경쟁 본격화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이번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계기로 퇴직연금 운용 수요가 '대규모·장기·성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존 계약형 체제에서 개별 상품 중심으로 경쟁해온 운용사들은 향후 기금 단위 자산을 일임받아 운용하는 경쟁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시장 내 역할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또한 기금 수탁 법인 선정 과정에서의 입찰 경쟁과 위탁 운용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단순 상품 경쟁을 넘어 운용 역량과 트랙 레코드가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 개방형 기금, 연합형 기금 등 다양한 기금 모델이 허용될 경우 이에 맞춘 자산배분 전략과 장기 운용 역량도 요구될 수밖에 없다. 운용업계 관계자 A씨는 "단기 성과와 마케팅 중심 경쟁이 완화되고, 중장기 성과를 위한 자산배분 및 위험관리 등 중장기적 관점의 운용 경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대형 기금으로 자금이 모일 경우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사모·대체투자나 해외 자산 비중을 확대하는 등 장기 투자 전략을 구사할 여지도 커진다. 시장에서 이번 결정을 퇴직연금 운용 수요가 '대규모·장기·성과 중심'으로 재편되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연초부터 한화자산운용이 퇴직연금 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기금형 제도 도입에 대비한 선제적 움직임도 확인되는 추세다.

다만 여러 기회 요인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금 운용 주체가 누가 될지, 개별 가입자에게 어떤 여파를 줄지 등은 아직 불확실하다. 또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 B씨는 "퇴직연금이 기금화되면서 수탁법인을 설립해 기업들이 돈을 넣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기회임은 분명하나,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게 아니라 증권사가 유리한지, 운용사가 유리한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기금화에 대비한 조직·인력 확충 부담, 기금 운용사가 되지 못한 업체들의 운용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 등은 우려로 꼽혔다.

"핵심은 누가, 어떻게 "…정책 설계 방향은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가입자 선택권을 유지하면서도 개방형·연합형 등 다양한 기금형 모델을 허용해 퇴직연금 운용 구조 전환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영주 닐슨 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성균관대 SKK GSB 교수)는 "퇴직연금제도의 실질적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민간 금융회사의 참여와 가입자 선택 구조를 함께 담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제도의 성패는 향후 세부적인 정책 설계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기금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정보 제공과 의사결정 지원 체계를 통해 가입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닐슨 대표는 "선택권만 부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기금의 설계·성과·리스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사례를 언급하며 "기금형 지배구조는 단순한 고수익 추구가 아니라 위험조정수익 관점에서 운용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그간 일본 등 해외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쟁점은 운용 실패 시 책임 구조다. 책임 주체와 손실 분담이 불명확할 경우 제도 신뢰가 흔들릴 수 있고, 기금 선택 회피 또는 과거 디폴트옵션 도입 당시처럼 성과 부진에 따른 책임 회피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도입률이 낮은 상황에서 의무화·기금형 확대가 앞서갈 경우, 기업 현장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일률적 강제보다는 세제 지원과 행정 부담 완화 등 유인책을 통해 단계적으로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닐슨 대표는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는 바뀌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면서 "정확히 정의된 의사결정 프로세스, 그 프로세스를 따랐을 경우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구조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기금형 퇴직연금이 장기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운용 체계를 확립하고, 기금이 정책적 목적이나 증시 부양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남 실장은 "기금 수탁법인에 대한 감독 역량 강화와 함께 비영리 수탁법인의 경우 외부 전문가의 이사회 참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영리 수탁법인에 대해서는 기금 파산 시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또한 그는 CDC(확정기여·확정급여 혼합) 구조로 운영되는 기금에 대해서는 최소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의 참여 여부도 관심사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아직 제도적으로 안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국민연금 참여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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