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신구, 장진 코미디로 무대 복귀 “살아있으니 연기하는 것”

올해 90세의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 신구가 오는 3월 개막하는 장진 연출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이하 ‘불란서 금고’)로 무대에 돌아온다. ‘불란서 금고’는 장진이 연극 ‘꽃의 비밀’(2015년)과 ‘얼음’(2016년)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연극으로, 배우 신구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장진은 “지난해 5월 신구 선생님이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면서 선생님의 연기에 전율을 느꼈다. 선생님과 영화(‘거룩한 계보’ ‘박수칠 때 떠나라’)는 함께한 적 있지만, 연극을 못 한 게 아쉬웠다”면서 “‘되든 안 되든 선생님을 무대에 모실 수 있게 한번 써보자’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떤 이야기를 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구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첫 대사를 썼다”고 밝혔다.
‘불란서 금고’는 밤 12시에 모든 전기가 꺼지면 금고를 연다는 규칙 아래 각각 다른 목적과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은행 지하 밀실에 모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전설적인 금고털이 기술자 ‘맹인’ 역의 신구는 지난해 9월 장진에게서 대본을 건네받고 한 달간 고민한 뒤 출연을 승낙했다. 신구의 연기에 깊은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썼다는 장진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신구는 이날 “너무 성급하게 (출연을) 결정한 것 같다”며 좌중을 웃긴 후 “막상 연습을 해보니 극복하기 힘든 점도 있어 노욕을 부린 건 아닌가 싶다. 몸이 마음만큼 움직여주지 않는다. 대사를 외우는 일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신구는 노령으로 예전 같은 몸 상태가 아니지만, 연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맹인’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배우 성지루의 부축을 받고 무대에 오른 그는 취재진의 질문을 잘 듣지 못해 장진과 성지루를 통해 다시 전해 듣기도 했지만, 대답 자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장진은 “선생님은 자신이 무대에 오르기에 힘든 몸 상태라고 생각하셨지만, 마음을 바꾸신 후 집에서 미리 작품 준비를 하셨다. 요즘 연습실에서도 가장 열심히 하신다”면서 “‘불란서 금고’가 선생님께 살아 계시는 이유가 됐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신구는 “살아 있으니까 평생 해왔던 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연기는 밥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형님이라고 불렀던 이순재 씨가 몇 달 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위에 모실 분이 아무도 없다는 게 아쉽다. 나도 몸 여러 군데에 장애가 왔지만,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특유의 언어유희와 리듬감을 내세운 ‘장진 코미디’가 여전히 무대에서 유효한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예정이다. 장진은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의 감정과 희로애락의 기준이 바뀐다. 그래서 코미디는 그 시대를 정확히 읽어야만 한다”면서 “만약 이번 작품이 웃음을 주는 데 실패하면 내가 사람들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둔감해졌다는 뜻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코미디의 이런 점 때문에 계속 도전하게 된다”고 밝혔다. 신구에게 기대하는 코미디 연기에 대해 그는 “코미디는 정말 연기에 능숙한 사람이어야 잘한다. 신구 선생님이 가진 연기의 깊이를 이번 작품에 온전히 담는다면 좋은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3월 7일부터 5월 31일까지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무대에 오르는 ‘불란서 금고’에는 신구와 성지루를 비롯해 장현성 김한결 정영주 장영남 최영준 주종혁 김슬기 금새록 조달환 안두호가 출연한다. 이들 배우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장진 특유의 리듬과 호흡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후배 배우들은 신구와 함께하기 위해 이번 작품에 선뜻 출연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성지루는 신구를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와 같은 작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면서 “이번 작품이 아버지께 맞춰 쓰인 만큼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배우로서 부담이 크다. 하지만 나만의 것을 찾아서 보여드리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 때문에 사망? 조작된 거야”… 챗GPT의 뻔뻔한 거짓말
- [집중분석] 명문 발레학교 학생들은 로잔 콩쿠르 참가하지 않는 이유
- [단독] 김진우 집 내내 걸려 있던 ‘이우환 그림’…“김건희 전달 증명 실패”
- ‘여성수입’ 발언 진도군수, 군민에 “이 ××의 ××” 욕설
- 못 돌려받은 비트코인 130억… 대법 판례는 “처벌 불가”
- ‘탈세 의혹’ 등 배우 리스크에 신작 공개 불투명… 소속사 휘청
- 이혼상담소 찾는 90세男·88세女…이혼 고민하는 노년층
- 文 전 대통령 “우리가 부동산 정책만큼은 실패했다”
- [단독]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 ‘챗GPT’만 비밀을 알고 있었다
- 中 호텔, 카드 꽂자마자 몰카…외모평가·실시간 중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