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동전·공항·전함까지… 트럼프 이름 붙이기 광적인 집착

현직 초상 안 쓰는 전통 탓 반발 거세
정책명·공원 입장권에도 ‘트럼프’
“어떻게든 붙어만 있기를 바라는 듯”
“(트럼프 대통령) 머리 스타일에서 국가 지도자다운 품격이 느껴진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미술위원회(Commission of Fine Arts)에서 한 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넣은 1달러 주화 시안을 심사한 뒤 이런 아부 섞인 평가를 했다. 미술위원회는 워싱턴DC 기념물과 건축물, 화폐 등의 디자인을 검토하는 연방 기관이다. USA투데이는 지난 7일 이 소식을 전하며 위원들이 투표를 거쳐 트럼프의 옆모습을 담은 동전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재무부는 올해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의 초상이 새겨진 1달러 동전 발행 계획을 발표했는데, 단순 기념주화가 아니라 통용 가능한 화폐로 제작을 추진 중이다. 조폐국이 공개한 동전 시안을 보면 트럼프의 얼굴과 함께 ‘자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1776~2026’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초대 조지 워싱턴 때부터 미국은 현직 대통령 초상을 화폐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 탓에 민주당 등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트럼프 주화’는 자신의 유산에 집착하는 트럼프의 욕망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다. 트럼프·케네디센터처럼 미국 전역의 랜드마크와 각종 정책에 자기 이름을 붙이려는 트럼프의 욕망이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부동산 사업가 시절부터 트럼프 타워,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트럼프 골프클럽처럼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해온 트럼프가 재집권 후 이름을 향한 집착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6일엔 트럼프가 뉴욕의 펜 스테이션과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본인 이름을 붙이자는 제안을 민주당에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두 시설 각각 뉴욕과 워싱턴DC의 관문 역할을 한다. 트럼프도 기자들을 만나 “척 슈머 상원의원이 펜 스테이션 이름을 트럼프 스테이션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며 논의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뉴욕이 지역구인 민주당 슈머 상원의원에게 해당 시설을 개명하는 데 동의해주면 뉴욕과 뉴저지 간 철도 터널 프로젝트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승인했던 160억 달러(약 23조4000억원) 규모의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현재 동결한 상태다. 하지만 슈머 의원은 “대통령은 랜드마크 명칭 변경 권한이 없다”며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트럼프의 제안에 대해 “개인적 찬사와 영광을 위한 수단”이라며 “노골적인 사익 추구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거의 따귀를 때리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케네디센터가 하루아침에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뀐 것처럼 트럼프가 자기 이름을 붙이려는 건물 명단은 끝이 없다. 덜레스 국제공항 명칭을 개명하는 법안은 친(親) 트럼프 의원들 주도 아래 이미 하원에 발의됐다. 워싱턴DC의 미국평화연구소(USIP)도 ‘도널드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 프로풋볼(NFL)팀 워싱턴 커맨더스의 새 경기장 이름에도 트럼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커맨더스는 37억 달러(약 5조4000억원)를 들여 새 홈구장을 건설 중인데 트럼프는 해당 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길 원한다. 심지어 미 하원에는 역대 대통령 4명(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새겨진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트럼프를 추가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정책에도 ‘트럼프’가 붙는다. 지난달 28일 트럼프는 신생아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 정책인 ‘트럼프 계좌(Trump accounts)’ 제도를 직접 발표했다. 재무부는 2025년부터 2028년 사이 신생아를 대상으로 1000달러를 예치하는 금융 투자 정책인 ‘트럼프 계좌’를 지난달 발표했다. 미국인들이 제약회사로부터 직접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웹사이트도 ‘트럼프Rx’라는 이름이 붙었다. 트럼프는 지난해에도 외국인이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 이민 절차를 신속하게 통과하는 ‘트럼프 골드카드’ 제도를 시작했다. 카드엔 자유의 여신상과 트럼프의 초상이 함께 그려져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해군 전함을 현대화하는 사업도 발표했는데 차세대 전함 이름도 ‘트럼프급 전함(Trump-class battleships)’으로 명명됐다.
올해 미국 국립공원 연간 입장권(패스)에도 조지 워싱턴과 트럼프의 얼굴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2004년 제정된 ‘연방 토지 레크리에이션 개선법’에 따르면 패스에는 국립공원관리청이 주최하는 사진 공모전 수상작이 실려야 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패스에는 관련 사진이 들어가 있었는데 올해 패스에는 트럼프 얼굴이 들어갔다. 한 환경단체는 트럼프 얼굴을 입장권에 넣은 것은 연방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성과가 후대에 평가받은 뒤에야 기념의 대상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반대다. CNN은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을 곳곳에 붙이려는 집착은 점점 더 절박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며 “트럼프는 아무거나,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붙여놓고 어떻게든 붙어 있기를 바라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도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임기를 마친 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기리도록 기다리는 것이 관례였다”며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에 벌어지고 있는 ‘이름 붙이기’ 열풍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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