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나 이걸 하려던 게 아닌데

2026. 2. 1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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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사진비평가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연극하던 오랜 친구는 지금
유명한 크림빵을 만든다
돌아갈 수도 없고, 후회도 없다

친구가 울었다. 재방송까지 포함하면 1000만 단위의 연인원이 보게 될 거라는 제빵 경연 방송에서였다. 그는 유명한 크림빵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로 출연했다. 힘들여 익힌 기술과 손을 데어 가며 버텨낸 시간 때문인지 친구는 심사위원과 참가자 사이에서도 나름의 인지도가 있었다. “아 거긴 유명하죠” “레전드죠” “연예인들도 많이 가고” 하는 식의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서 나의 오래된 친구는 빵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적외선 온도계로 반죽의 온도를 재고 얼음으로 발효 속도를 조절하는 그는 자못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그랬던 친구가 갑자기 학예회 무대에 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너 왜 그랬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너 별명이 ‘눈물의 크림빵’이더라. 이렇게까지 캐릭터가 확실해질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 친구는 너털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참을 낄낄거리며 놀려댄 이후에야 친구는 조금 기운을 차린 듯했다. “아 그만하라니깐!” 그래도 축 처져 있는 것보다는 화를 낼 힘이 있는 게 낫지 않은가. 나는 다음 날 팔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고 치킨을 먹으러 갔다.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스물 몇 살 때였다. 극작을 전공하던 친구는 자기가 너무 잘생겨서 자꾸 교수님이 배우를 하라고 한다며 투덜거렸고, 물론 우리는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단역으로 출연한 연극 공연을 몇 번 보러 간 적은 있다. 그중 하나는 DMZ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전체 줄거리는 이제 가뭇하지만 친구는 수십년 전에 자살한 북한군 병사 중 하나로 등장했다. 수십년 전 남쪽으로 귀순하려는 그들을 장교 한 명이 가로막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벌새처럼 날갯짓을 초당 수십 번은 해야 하는데 너희 같은 놈들이 할 수 있겠느냐고, 여기서 자살하라고 그는 냉정하게 말한다.

이 대목에서 친구(혹은 병사)는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 “수십 번이라면 하갔어!” 그는 뛰어올라 팔을 파닥거렸다. 물론 결말은 뻔했다. 바닥에 착지, 혹은 추락하며 그는 다른 병사들에게 묻는다. “내가 몇 번 날갯짓했니?” 아무도 모른다. 다만 공중에 떠 있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만 안다. 친구는 항상 무대로 되돌아가고 싶어했지만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해내야 하는 노동 앞에서 뒷걸음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가게를 열고 닫으며 열심히 일했다. 너는 몇 개의 안주를, 김밥을, 크림빵을, 구움과자를 만들었니? 아무도 모른다. 다만 친구가 원하던 만큼의 소박한 경제적 안정을 얻을 정도는 아니었다. 맹렬하게 일했고, 끝없이 기술을 익혔으나 솜씨와 사업 수완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여느 제빵사보다는 훨씬 무대에 익숙했을 나의 친구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원래 이거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더 만들고 싶었던 빵이 있고 그런 것들도 잘할 수 있는데.” 두서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예전의 북한군 병사와 겹쳐 보였다. 생각해 보면 나도 원래 편집자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다들 마찬가지 아닌가. 원래 은행원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마케터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떤 시기마다 가능했던 문을 하나씩 통과하다 보니 낯선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우연히 시작했고, 버텨냈고, 심지어 잘하게 되었지만 자리와 이름은 여전히 어색하다. 딱히 후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한때 열려 있던 수많은 가능성은 이제 선택되지 않는 과거로만 남았다.

친구는 다시 주방에서 꿋꿋하게 빵을 만든다. ‘눈물의 크림빵’으로 알려졌기 때문인지 이제는 함께 치킨을 먹을 시간도 없다. 무대는 아니더라도, 그가 만들고 싶은 다른 빵들도 함께 만들며 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로 좋겠다.

김현호
사진비평가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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