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ESS 반갑지만 결국 배터리가 가야할 길은

[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최근 부각된 에너지저장장치(ESS), 로봇발 시장 관심에도 배터리 업계의 한숨은 늘고 있다. 현장을 돌다 보면 "올해도 어렵다"는 곡소리가 나오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줄어든 배터리 셀 제조사의 설비투자로 장비 업계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일부 ESS 전환투자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마저도 장비 구매가 아닌 개조·변경 건이 대부분이다. 배터리 셀 제조사 입장에서도 현재 공장 가동률 맞추기가 어려워 추가 투자가 어려워졌다.
최근 떠오른 북미 ESS 시장을 바라보는 주요 셀 업체의 심경도 복잡하다. ESS는 확실히 전기차 시장 내 주도권 이탈로 갑갑해진 공급 판로를 트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전력망 ESS 수요가 높아지고 탈중국을 요하는 투자세액공제(ITC) 요건 덕에 국내 배터리 업체를 찾는 발걸음이 늘어난 덕이다.
문제는 생산능력이다.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거점 생산능력이 막대한 탓에 현재 ESS만으로는 이에 대한 가동률을 충족하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는 올해만 SK온 조지아 공장, 삼성SDI 스텔란티스 합작법인, LG에너지솔루션 스텔란티스, 혼다 합작 및 미시간주 랜싱 독자 공장의 라인 전환이 이뤄진다. 향후 3~5년에 걸쳐 나올 ESS 배터리 수요가 이들의 막대한 생산능력을 모두 채워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새로 떠오른 휴머노이드 등 로봇 시장도 마찬가지다. 응용처를 확대한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지만 로봇 한 대 당 탑재될 배터리 용량 자체가 적어 주요 시장이 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재 기준 로봇 한 대당 배터리 용량은 1.3~15kWh로 저가 보급형 전기차 한 대 용량(50kWh)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배터리 생태계의 핵심은 전기차(EV)로 귀결된다. 순수전기차(BEV)가 됐든,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됐든 관련 프로젝트를 확보해야만 가동률 유지가 가능하다. ESS라는 또 다른 축이 생긴 만큼 전기차 물량이 뒷받침해줘야 안정적인 성장동력을 갖출 수 있다.
업계가 자동차의 전면 자율주행화가 다가오길 바라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율주행 차량이 다수 고성능 센서와 반도체를 구동해 전력 소모가 요구돼 이에 걸맞은 배터리가 필요해진다.
하물며 하루종일 운행하는 로보택시와 같은 무인서비스는 더욱 그렇다. 정책적·환경적 이점이 강했던 전기차와 달리 실제 생활이 바뀌는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배터리 수요를 기대케 하는 요소다.
배터리 산업은 지금 숨 고르기 구간에 서 있다.
ESS가 당장의 가동률을 지탱하고 배터리 업계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배터리 매출 성장을 이끄는 것은 전기차와 같은 고용량·대량 응용처인 만큼 자율주행과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ESS로 되찾아 온 긍정적인 흐름이 자율주행으로 확대되며 배터리 생태계 전반에 높은 활력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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