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춤에서 셔터를 눌렀다... 눈에 댈 필요 없는 카메라가 준 자유

이재필 2026. 2. 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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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盲目)의 카메라, BESSA - L과 함께한 기록

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전통시장과 주변의 일상을 기록해왔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통해 사라져 가는 풍경과 기억, 기록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기자말>

[이재필 기자]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의 오래된 카메라 이야기는 언제나 시각보다 먼저 깨어나는 감각들에서 시작된다. 발바닥에 닿는 보도블록의 냉기, 코끝을 스치는 건조한 바람, 그리고 그 속을 뚫고 나아가는 몸의 기울기. 나에게 있어 '무엇을 찍었는가'는 '어떻게 그곳에 서 있었는가'라는 질문 뒤에 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카메라는 어쩌면 그저 그 거리를 걷기 위한 그럴싸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1월4일 서울은 유난히 투명하고 날카로웠다. 그날, 나는 라이카의 묵직한 황동 바디 대신 가볍고 기이한 카메라 하나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집을 나섰다. 베사 L(Bessa L). 뷰파인더조차 없는 이 불친절한 기계와 함께 나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를 부유할 준비를 마쳤다. 이미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내 몸은 이 도시를 어떤 호흡으로 지나가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 한겨울의 거리(BESSA-L촬영) 매서운 추위에 두툼한 옷을 걸쳤지만,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붙잡을 수는 없다.
ⓒ 이재필
라이카의 그림자를 벗어나 만난 질문, 보이그랜더

라이카를 내려놓은 것은 결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는 환복(換服)의 과정이었다. 스크류 마운트(LTM) 렌즈들이 가진 특유의 클래식한 묘사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만큼은 조금 더 자유롭기를 원했다. 미놀타의 단단함이나 자이스의 정교함도 훌륭했지만, '편하게, 가볍게, 그리고 오래' 걷고 싶은 날에는 언제나 마음이 보이그랜더(Voigtländer)로 향했다.

보이그랜더는 라이카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으면서도, 결코 라이카를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독특한 위상을 가진 브랜드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실험가였다. 같은 화각 안에서도 성격이 판이한 렌즈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잊혀진 과거의 설계를 과감히 현재로 소환해냈다. 그것은 완벽을 향한 집착이라기보다, 다양성을 향한 찬가처럼 느껴졌다. 그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솔직한 대답이 바로 베사 L이었다.

보는 것을 포기하고 감각을 얻다

베사 L은 카메라가 갖춰야 할 미덕이라 여겨지는 많은 것을 생략해버린 기계다. 초점을 맞추기 위한 이중합치 상도, 구도를 확인하기 위한 내장 뷰파인더도 없다. 애초에 15mm나 25mm 같은 초광각 렌즈를 목측(공간을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찍기 위해 태어난 바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맹목(盲目)의 카메라'에 50mm 표준 렌즈를 물렸다. 남들은 무모하다고 할지 모를 조합이다. 눈에 보이는 파인더가 없으니, 오직 카메라 상단에 꽂은 외장 뷰파인더와 나의 거리 감각만을 믿어야 한다.

이 불편함은 역설적이게도 엄청난 자유를 선물한다.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초점을 맞추느라 찡그릴 필요가 없다.

렌즈의 거리계를 3미터, 5미터, 혹은 무한대에 툭 던져두고, 그저 걷다가 마주치는 순간에 셔터를 누르면 그만이다. 무엇을 보여줄지, 초점이 어디에 맞을지에 대한 판단을 기계에게 미루지 않고 온전히 나의 감각에 맡기는 행위. 그래서 베사 L은 나에게 '찍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걷는 파트너'다. 그것은 마치 눈을 감고도 서로의 위치를 아는 오래된 연인처럼, 내 손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 리움미술관(BESSA-L촬영) 이불의 전시를 품은 리움미술관, 그 안에 자리한 거대한 조형물.
ⓒ 이재필
겨울의 온도를 닮은 렌즈, Canon 50mm f/2.8

이날의 산책을 위해 선택한 눈은 Canon 50mm f/2.8 LTM이었다. 화려한 명성을 가진 렌즈도, 칼같이 예리한 해상력을 자랑하는 렌즈도 아니다. 하지만 겨울의 서울을 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었다.

현행 렌즈들이 세상을 면도날로 오려낸 듯 선명하게 분리한다면, 이 렌즈는 세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빛은 렌즈 안에서 살짝 번지며 퍼지고, 피사체는 배경 속에 녹아들 듯 묘사된다. 나는 그 '느슨함'이 좋았다. 쨍하게 얼어붙은 서울의 풍경을 너무 날카롭게 담아내면 베일 것만 같았으니까. 이 오래된 렌즈는 차가운 공기 속에 둥둥 떠다니는 입자들까지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만 같았다.

영화가 된 도시, Kodak Vision3 500T

그리고 그 렌즈 뒤에는 Kodak Vision3 500T 필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 영화 촬영용으로 만들어진 이 필름은 텅스텐 조명 아래에서 색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대낮의 자연광 아래서 찍으면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 누군가는 색 보정 필터를 끼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푸른기가 도는 톤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

1월의 중순을 넘어가는 서울, 영하의 기온, 회색빛 건물들. 500T가 만들어내는 차가우면서도 진득한 색감은 이 도시를 한 편의 누아르 영화처럼 만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디지털 센서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필름 특유의 관용도와 그레인(Grain)은 차가운 도시의 표면 위에 따뜻한 질감을 덧입혀주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눈앞의 현실은 아주 조금씩 지연되어, 필름 위에서 '시네마'가 되었다.

침묵 속에 분주한 아침의 거리

한파가 며칠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옷깃을 잔뜩 여민 사람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짧게 흩어졌다. 신호등 앞의 짧은 정적,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많은 발소리의 리듬, 두꺼운 외투끼리 스치는 소리.

나는 그 흐름 속에 섞여 걸었다. 베사 L은 묵묵했다. 뷰파인더가 없으니 카메라를 눈에 가져다 댈 필요도 없었다. 가슴 높이 쯤에서, 혹은 허리춤에서 툭, 툭. 셔터를 눌렀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할 틈도 없이 촬영은 끝났다. 그것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는 사냥꾼의 태도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뜰채로 건져 올리는 산책자의 태도였다.

초점이 맞았을까? 알 수 없다. 구도는 완벽한가? 중요하지 않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오히려 장면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확인하고 검열하는 과정이 사라진 자리에, 오직 피사체와 나 사이의 교감만이 남았다.
▲ 분주한 아침(BESSA-L촬영) 바쁜 출근길 한가운데서도,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가는 산책자
ⓒ 이재필
빛이 머무는 공간, 안과 밖의 경계

거리를 지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서울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를 맞이했다. 밖이 속도와 방향의 세계였다면, 안은 머무름과 여백의 세계였다. 창을 통과한 오후의 빛이 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있었고, 공기는 따뜻하고 정지되어 있었다.

500T 필름은 실내의 인공조명과 창밖의 자연광이 섞이는 그 미묘한 지점에서 빛을 발했다. 빛은 벽을 타고 부드럽게 번졌고, 공간의 온도는 시각적으로 변화했다. 뷰파인더 없이 바라본 그 장면들은, 프레임에 갇힌 사진이라기보다 내 망막에 맺힌 잔상(殘像)에 가까웠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고요한 빛의 입자들을 필름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 프리즘을 닮은 작품(BESSA-L촬영) 프리즘처럼 장치된 천창을 통해 무지개가 머물렀다. 마치 유토피아의 도래를 알리듯.
ⓒ 이재필
엡손 R-D1, 모든 여정의 시작점

문득 이 모든 과정의 시발점이 떠올랐다. Epson R-D1. 엡손이 세상에 내놓았던 최초의 디지털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라이카의 M 마운트를 사용하면서도 아날로그 게이지 바늘로 배터리와 남은 컷 수를 보여주던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물건.

필름 와인딩 레버를 감아야만 셔터가 눌리던 그 디지털카메라는 나에게 '불편함의 미학'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스펙이나 화소 수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 손끝에 전해지는 기계적인 리듬감. R-D1을 통해 나는 이종 교배(서로 다른 브랜드의 렌즈와 바디를 조합하는 것)의 매력에 눈을 떴고, 렌즈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의 맛을 알게 되었다. 베사 L을 들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 R-D1이 열어준 길 위에 서 있는 셈이다.
▲ BESSA-L with CANON 5cm F2.8(아이폰촬영) BESSA-L과 CANON 5cm F2.8이 마운트된 모습, 상단에는 50mm 프레임을 볼수 있는 외장 파인더
ⓒ 이재필
결과가 아닌 과정을 남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의 카메라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내 마음속에는 묵직한 무엇인가가 채워져 있었다. 오늘 찍은 36장의 사진 중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을지는 모른다. 초점이 나간 사진도 있을 것이고, 수평이 맞지 않은 사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에게 사진은 결과물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온전히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베사 L은 나에게 "잘 찍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네가 본 것을 믿으라"고 침묵으로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통해 서울을 본 것이 아니다. 서울을 온몸으로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나는 셔터를 눌러 시간을 멈춘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맡겼다.

사진은 늦게 당도하는 편지와 같다. 며칠 뒤, 현상소에서 필름을 찾아 스캔본을 확인할 때, 나는 비로소 그날의 겨울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칠고 푸르스름한 이미지 속에서, 흔들리고 흐릿한 피사체들 사이에서, 나는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묵묵히 나와 함께 걸어주었던 그날의 공기와, 나의 숨결을.

이것이 내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뷰파인더도 없는 낡은 플라스틱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이유다. 카메라는 핑계였고, 남은 것은 결국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뿐이므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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