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10년만의 신작 '불란서 금고'…한밤, 금고 앞에 모인 5명의 욕망

박병희 2026. 2.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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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열리면 금고가 있어요. 커다란 금고가 있고 금고 앞에 5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5명은 오늘 밤 그 금고를 털 거예요. 그 금고 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걸 가져갈 겁니다. 그 금고를 결국 여는 이야기입니다. 한밤의 소동이죠."

장진 연출은 10일 서울 대학로 놀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연극 '불란서 금고'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같이 설명했다. 은행원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슬기는 "약간 미스테리한 면이 있는 소동극"이라며 "각자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그 욕망의 끝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불란서 금고는 같은 장소에서 오는 3월7일 개막해 5월31일까지 공연한다. 금고 앞에 모인 다섯 명은 맹인, 교수, 밀수, 건달, 은행원이다. 여기에 '그리고'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장진 연출이 10일 서울 종로구 놀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불란서 금고는 장진 연출이 2015년 '꽃의 비밀' 이후 10년 만에 쓴 희곡이다. 장 연출은 오랜 시간 고민을 한 희곡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본 연극 한 편이 계기가 돼 시놉시스도 없이 쓰기 시작한 희곡이라고 강조했다. 장 연출이 지난해 국립극장에 본 연극은 현역 최고령 배우 신구 씨가 출연한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지난해 5월 국립극장에서 신구 선생님이 출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좋았다. 그러면서 내가 영화에서는 신구 선생님과 함께 했는데 왜 무대에는 모시지 못 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래서 무조건 쓰자. 되든 안 되든 선생님을 모시기로 생각하고 한 번 써보자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고 그냥 첫 대사 하나만 가지고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첫 대사를 신구 선생님이 특유의 억양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만으로 희곡을 썼다."

장진 감독은 신구 씨에게 대본을 전달하고 출연 승낙을 받게 된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지난해 9월 희곡을 탈고하고 바로 다음 날 따끈따끈한 대본을 인쇄해서 오랜만에 연락드리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냉면 집에서 뵀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초 선생님 생신 때 대학로 중국집에서 선생님을 다시 뵀는데 대본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출연 여부에 대해서는 답을 안 주셨다.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니 고량주 한 두 잔 하시더니 갑자기 '그래 그냥 하자! 해!'라고 말씀하셨다."

신구 씨는 자신에게 연극은 "밥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평생 해왔던 것이 연극이니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타계한 이순재 씨에 대해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형님이라고 불렀던 분이 돌아가셔서 이제 내가 위로 모시는 분이 안 계신 것 같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데 어쨌든 살아 있으니 숨을 쉬고 있으니 내가 평생 하던 일을 해야 한다. 몸 여러 곳에서 장애가 오고 있는데 어떻게든 극복을 해서 이 작품에 누가 안 되려고 고심하고 있다."

맹인 역에 더블캐스팅 된 배우 성지루 씨는 평소 신구 배우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며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은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성지루 씨는 맹인 역할을 위해 1990년 군 제대 이후 처음으로 삭발을 했다며 맹인 역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배우 김한결(왼쪽부터), 장현성, 장영남, 정영주, 장진 연출, 신구, 성지루, 주종혁, 최영준, 김슬기, 금새록, 안두호, 조달환이 10일 서울 종로구 놀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밀수 역을 맡은 배우 장영남은 "신구 선생님은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며 "대본도 읽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같은 역을 맡은 정영주 배우도 신구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한 장진 연출이 쓴 희곡이 주는 말맛의 매력도 출연을 결심한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장진 연출만이 갖고 있는 강력한 말의 힘이 있다. 배우들은 말맛이라고 하는데, 장진 연출의 희곡은 말의 힘을 굉장히 쉽고 깊게, 짧은 시간에 건드리는 그런 남다른 에너지가 있다. 그 말맛을 살리는게 배우 입장에서는 부담이기도 한데 그게 무척 기분좋은 스트레스다."

교수 역에는 장현성과 김한결, 건달 역에는 최영준과 주종혁, 은행원 역은 김슬기와 금새록, 그리고 역에는 조달환과 안두호가 출연한다.

주종혁과 금새록은 불란서 금고를 통해 연극 무대에 데뷔한다. 장진 연출은 "건달이 대사가 가장 많은데 주종혁이 가장 빨리 대본을 놨다"며 "리딩 첫날부터 많은 부분 대사를 외워오는 성실함을 보여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금새록이 "겁 없이 연극에 도전했다가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겁이 난다"고 털어놓자, 장 연출은 "전혀 겁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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