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장실 쓰지 마!" 요양사 일하며 들은 말

부산노동권익센터 2026. 2. 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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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동권익센터 2025년 제3회 감정·비정규직 노동자 수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이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5 제3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로, 감정·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필자의 동의 하에 일부 편집-구성했습니다. <기자말>

[부산노동권익센터]

스물 다섯 외동 아들은 아침마다 신이 났다. 웅웅거리는 소리로 좋아하는 인형 을갖다 달라고 재촉한다.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휠체어는 아까부터 주인을 기다린다고 목이 한참이나 빠졌다.

병원에서 누워만 있던 아들이 집으로 퇴원해, 아침마다 갈 곳이 생겼다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들과 같이 뇌를 다친 장애인 친구가 모인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님들이 얼마나 좋던지, 아들과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 같았다.

아들 점심 한 끼라도 영양사님이 골고루 영양을 챙겨 짜주신 식단으로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오늘은 돈가스, 오늘은 스파게티라고, 아들에게 방긋 웃으며 일러주는 어미가 더 신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부산뇌변병복지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요양보호사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들에겐 복지관은 안전했고, 또래 친구들이 많았으므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고마웠다.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 요양보호사센터에서 알려준 대상자의 집은 우리 집 근처였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내가 일하기엔 대상자의 중증 치매와 구십에 가까운 나이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작은 방에 있던, 대상자의 발달장애 아들을 보자마자, 하겠다고 단번에 근로계약을 해버렸다. 같은 처지 아픔을 갖고 있는 집이라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월급을 받으면서 적금도 붓고, 친정엄마에게 돈도 붙여주는 달이 늘었고, 계절도 변했다. 시간은 참 빨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중증치매의 후유증으로 뭔가를 도둑질해간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던 서러움을 참아가며 가사일을 하던 그날은 출근해보니 변기가 막혀 있었다. 큰일이다, 어르신 오강도 비워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자녀분들께 상황을 설명했더니 지난해 겨울부터 변기가 막힌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오래된 주공아파트 변기 관이 작다보니 종종 생기는 일인데 몇십만 원 들여 관교체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 했다. 출장비를 들여 사람을 부르고 뚫기를 반복할 때마다 어르신은 현찰 오만 원씩 기사님 손에 쥐어 보냈다. 꾸벅 고개숙여 고맙단 인사까지 하시고.

그러나 변기는 또다시 막히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르신의 불벼락이 떨어지고 말았다.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 부산노동권익센터
"이 돈 잡아 먹는 X아! 남의 집에 일 하러 와서 화장실 변기를 우째? 다신 우리 집 화장실은 쓰지 말 거라!"

작은 방에 있던 대상자의 아들이 놀라 안방으로 기어왔다. 혼비백산 한 나를 보면서 예전 요양사에게도 그랬으니 별일 아니라며 달랬다. 하지만 어르신의 혼이 멈추질 않았으니, 옆집 사람들이 나와 '대체 무슨 일이 난 거냐'고 묻는 통에 그야말로 집에 난리가 난 것이다.

온갖 욕지거리가 화살처럼 쏟아졌다. 예전에 근무하던 요양사들의 미운 짓도 다 꺼내어 퍼 부으시는 어르신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서 그런 것이니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날 한바탕 쏟아낸 어르신은 기력이 없으셨던지 한숨 주무시고 난 후 밥을 맛있게 드셨다. 내 아들도 못 먹인 보리굴비 하나를 뚝딱 잡수시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건... 이 굴비는... 요새 어르신이 통 입맛이 없고 기력이 없으셔서 내 돈 주고 시장에 가서 팔천 원이나 주고 산 거였다. 이런 날은 자주 왔다. 서럽기만 했던 날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어르신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어르신이 무섭게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걸어서 관리사무소 공용 화장실을 써야만 했다. 추운 겨울 날엔 그 길을 오가며 급한 일을 본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토요일 관리사무실 문을 열지 않는 날이면 맨발에 발만 동동 굴리다가 결국 설움이 폭발해 운 적도 많았다. 어르신 댁 이웃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 적도 있다.

이 서럽고 억울한 상황은 어르신의 치매가 심해질수록 더할 것을 알기에 그저 답답했다. 센터장님에게 상담을 해서 속상한 맘을 표시한 적도 있다. 이미 센터장님은 이 어르신에 대해 휜히 알고 계셨고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셨다.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기특하게 오래 잘 참아내며 일하고 있다고 다독이셨다. 뽀족한 방법은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렀고, 어르신이 요양병원 입원하던 시기에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모르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사용하는 신용카드 상담원이 다른 상품을 소개한다는 전화였다. 옛날 같았으면 내용도 안 듣고 통화를 끊었을 나였다. 이번에는 나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지금 있는 카드로도 충분하니 발급은 필요없다'고,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상담원은 잠시 말을 않고 의아해 했다. 마치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사람처럼.

나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거다. 전화를 끊을 때 즈음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했더니 "감사...해요" 하신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전화기 너머로 방긋 하고 웃어줬다. 우리 둘은 전화를 같이 끊었다. 누구나 언제든 상담원도 될 수가 있고, 요양보호사가 될 수 있고, 그 반대 입장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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