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후 가장 위험한 결정"...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 시도
[정주진 기자]
9일(현지시간), 무슬림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른바 이슬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대한 점령과 통제를 강화하는 이스라엘 안보 내각의 결정에 대해 '불법적인 이스라엘 통치권을 부과하려는 시도'라며 비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9일 성명을 통해 이집트, 인도네시아, 요르단, 파키스탄,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등 8개국이 "가장 단호한 표현"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했다고 발표했다.
전례 없는 안보 내각 결정, 분노 촉발
이슬람 국가들이 크게 분노하며 이스라엘을 비난한 이유는 8일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전례가 없는 방식과 수준으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재산권과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조치들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일간지인 <하레츠>와 <타임스 오프 이스라엘> 등은 이스라엘의 극우 재정장관인 베잘렐 스모트리히와 국방장관인 이스라엘 카츠가 발표한 공동 성명을 인용해, 이스라엘 내각이 서안지구의 토지 등기부 공개와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서안지구 토지 구매를 가능하게 하는 조치들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는 수십 년 동안 금지됐던 이스라엘 유대인의 서안지구 토지 직접 매입과 등기부 비공개를 모두 무효화하는 조치다. 현재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등록된 회사를 통해서만 토지를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토지 소유자를 직접 접촉해 토지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 내각의 결정이 발표된 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정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 지역에서도 정착촌 확대를 합법화하고, 토지를 몰수하며 팔레스타인 재산을 파괴하려는 공개적인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국제사회 전체도 이스라엘의 조치에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표시했다. 이스라엘 내각 결정 발표 직후, 유럽연합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결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또 다른 발걸음"이라며 "유럽연합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통치를 강화하려는 이스라엘 안보 내각의 이번 결정을 비난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 또한 이스라엘의 결정을 "강하게 비난한다"며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인구적 지형을 바꾸려는 어떤 일방적인 시도도 수용될 수 없고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시민단체인 피스 나우(Peace Now)는 안보 내각의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고 이전의 합의를 취소하고 사실상 서안지구를 합병하려는 위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안지구에서 대규모 토지 약탈을 막는 장벽을 모두 깨는 것"이라며 이스라엘 정부를 비난했다.
전 지역 정착촌 확대 우려
1993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 정부가 맺은 오슬로 협정에 따라 서안지구는 A, B, C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서안지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A 구역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전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비슷한 면적의 B 구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을, 이스라엘이 안보를 담당하고 있다.
서안지구의 약 60%에 달하는 C 구역은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착촌은 C 구역에 세워져 있다. 현재 7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서안지구와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기고 합병한 동예루살렘의 불법 정착촌과 전초기지 등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조치로 서안지구 전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적인 정착지 건설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유대인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밀집한 서안지구 도심에도 세워질 수 있고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정착민들의 충돌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충돌을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빌미로 삼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이 세워지면 정착민들의 안전을 이유로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을 빼앗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곤 했다. 이번 조치로 더 많은 정착촌이 서안지구 곳곳에 세워진다면 집을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팔레스타인 토지 소유주들의 안전도 우려된다.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등기부가 공개되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소유주를 직접 찾아가 토지를 매매하도록 압박하고 심지어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 지금도 유대인 정착민들이 주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쫓고 토지를 빼앗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고 주민들을 폭행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내각의 이번 결정이 특히 우려되는 건 이스라엘이 이번 조치를 통해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서안지구를 강제로 합병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영구 불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이 조치의 목표는 "모든 이스라엘 땅에 대한 우리의 뿌리를 깊게 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구상을 매장해 버리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알자지라의 서안지구 기자인 니다 이브라힘은 이번 조치가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한 이래 가장 위험한 것으로 서안지구 합병을 밀어붙이는 가장 심각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통치하에 있었던 토지를 소유하게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법에 따라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유대인의 정착촌 건설과 이주는 불법임에도 이스라엘은 1967년 서안지구 점령 이후 꾸준히 정착촌을 건설해왔다. 이스라엘은 정착민들이 불법으로 이주해 전초기지를 건설해도 이를 눈감아주고 결국엔 허가해주는 식으로 유대인 이주를 묵인하고 암암리에 독려해왔다. 지난해 5월에는 서안지구에 22개의 대규모 정착촌 건설을 승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번 조치를 통해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국제법을 고려하던 것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트럼프–네타냐후 회담 앞둔 미묘한 시점
이스라엘 내각의 이번 결정이 11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백악관 회담 3일 전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이다. 이번 회담의 주요 현안은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과 미국의 군사 행동 가능성 여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 기회를 이용해 네타냐후 총리가 내각의 결정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내는 시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로선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작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타임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합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랍 국가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미국의 모든 지원을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작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번으로 일곱 번째 만남을 갖게 되는 두 사람의 밀착 관계가 이스라엘의 결정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묵인이나 사실상 지지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또한 네타냐후 총리처럼 국제사회의 비난과 평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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