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너지 수도, 네 가지 설계도가 그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윤경 기자]
전남과 광주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라는 새 간판을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통합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고, 정부와 국회가 올 상반기 심사를 예고하면서 6·3 지방선거에서 초대 통합광역단체장을 선출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광주·전남 주민 여론은 통합 자체에 대체로 우호적이다. 1월 초 광주MBC·kbc 여론조사에서는 시·도민의 과반이 행정통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오마이뉴스> 여론조사에서는 전남 도민 10명 중 6명이 통합에 찬성했고, 통합 지위로 '특별시'를 선택한 응답은 65.5%에 달했다. 다만 "통합 내용을 잘 알수록 찬성률이 높지만 아직 모름·유보층이 많고, 속도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통합특별법안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AI·에너지·문화 중심도시'로 규정하고, 인공지능과 에너지 분야에 가장 많은 특례와 재정 지원을 배치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인공지능과 에너지를 앞세운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 글은 통합을 전제로 주요 후보와 정당이 그리는 'AI·에너지 수도'의 얼굴을 비교해 살펴본다.
특별법이 '일반법' 될 위기... 통합특별법 둘러싼 갈등
2월 7~8일 행정안전부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전남·광주에 통합특별법 검토 의견을 전달하며, 법안에 담긴 386개 조문 가운데 119개 조항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남도와 광주시에 따르면 전액 국비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국고보조율 상향, 해상풍력·재생에너지 예비지구 지정, AI·신산업 클러스터 규제 완화 등 핵심 특례가 여기에 포함됐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7일 "부처 이기주의로 통합특별법이 이름만 특별법인 일반법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고 비판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8일 "재정과 권한 이양 없는 통합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남도와 광주시 지역 국회의원들은 같은 날 간담회를 열어 공동결의문을 채택한 뒤 "재정·AI·에너지·해상풍력 관련 핵심 특례 45개는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시민사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월 말 '광주전남 행정통합 시민비상행동'은 "숙의 과정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통합 논의는 시민주권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통합특별법은 견제 장치가 부족한 채 막강한 단체장 권한을 부여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단체는 AI·에너지 특례가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지역 주민·어민·농민과의 갈등만 키울 수 있다며 독소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리하면 통합특별시는 권한과 재정, 통제와 참여를 둘러싼 거친 줄다리기의 출발선에 서 있다. 이제 이 줄다리기 위에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가 쟁점이다. 통합특별시장 후보들에게 묻는 질문은 분명하다.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이 갈등과 제약 속에서 무엇을 우선하겠다는 것인지다.
AI는 광주에, 에너지는 전남에
광주는 지난 몇 년간 AI 산업도시를 목표로 투자와 인프라를 쌓아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광주시는 2020년부터 첨단3지구에 인공지능집적단지를 조성했고, 이곳 국가AI데이터센터는 2023년 말 기준 GPU 약 2500장, 연산 능력 88.5PF(페타플롭스), 저장 용량 107PB(페타바이트)를 갖추며 다수의 연구·기업 프로젝트를 지원해 왔다. 2025년 9월 기준으로 160~300여 개 AI·연관 기업이 광주와 협약을 맺고 집적단지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프라는 예산과 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2025년 5월 보도에 따르면 정부 예산 삭감으로 광주 AI데이터센터의 GPU 가동률은 약 50%까지 떨어졌고, 일부 장비는 사실상 유휴 상태에 놓였다. 같은 해 10월, 2조5천억 원 규모 국가AI컴퓨팅센터 입지가 광주가 아닌 전남 해남 솔라시도로 결정되면서, 광주는 이미 구축한 인프라와 생태계를 바탕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에너지의 중심축은 애초부터 전남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남도 자료에 따르면 서남해 해역은 국내 최대 해상풍력 잠재 지역으로 꼽히며, 전남도는 2030년대 중반까지 약 30GW 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5년 5월에는 신안 자은도 인근 96MW 규모 '전남해상풍력 1단지'가 상업 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해상풍력 확대는 곳곳에서 갈등을 낳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고흥·신안·영광 일대에서는 어업권 침해와 생계 위협을 이유로 어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이어졌고, 해양 생태계·경관·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도 잇따랐다. 해상풍력특별법은 이해관계 충돌로 제정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잠재력은 크지만 사회적 합의와 전력 계통망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AI는 광주에, 에너지는 전남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뿌리내렸다. 통합특별시는 이 비대칭을 안고 설계해야 하는 도시다.
민주당 "권역별 몫을 나누는 균형 도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 1일 전남광주특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통합특별시를 "AI·에너지·문화 신산업 수도"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성장통합·균형통합·녹색도시·기본소득·시민주권이 그의 다섯 원칙이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내세웠다.
민형배가 그리는 도시는, 광주와 전남의 강점을 합쳐 '그린 AI 클러스터'로 만드는 그림이다. 첨단3지구 AI집적단지와 국가AI데이터센터를 도시의 두뇌, 신안·영광·해남의 해상풍력·태양광을 심장과 폐로 삼고, 전력망·데이터망으로 이 둘을 엮어 남부권 신산업 수도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구상은 통합특별법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부가 AI·에너지·재정 관련 특례 다수를 축소하려는 상황에서, 민형배의 '신산업 수도'는 중앙부처와의 추가 협상과 재설계를 필수 전제로 한다. 예산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AI 인프라 구조, 해상풍력 갈등을 조정하면서도 에너지 수도를 실현할 방법, 이 질문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답하느냐가 그의 도시 구상의 현실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민형배 의원이 통합특별시를 'AI·에너지 신산업 수도'로 밀어붙이는 중앙–산업 중심의 그림을 제시한다면, 다른 민주당 후보들은 광주·전남, 동부·서부, 시·군 간의 몫과 균형을 먼저 따지는 도시 설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 통합 논의를 주도해 온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크게 두 가지 목표를 내세운다. 첫째는 수도권과 맞설 수 있는 자치권·재정 블록을 만드는 것, 둘째는 그 안에서 어느 지역도 "손해 봤다"고 느끼지 않는 권역별·시·군별 배분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행정통합 지원 명목으로 4년간 20조 원 안팎 재정 지원, 이후 연 수조 원대 인센티브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광주·전남의 재정 현실은 여유롭지 않다. 광주는 2026년 예산에서 자체 수입 감소·의존재정 증가를 이유로 경상경비 삭감과 사업 시기 조정을 예고했고, 전남도 역시 비슷한 구조를 안고 있다. 여기에 통합비용, 광역교통망, AI·에너지 인프라, 기존 복지, 시·군 재정 보전이 동시에 얹힌다.
전남에서는 "광주를 전면에 내세운 흡수 통합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정서도 존재한다. 이럴수록 권역별 균형과 배분을 말하는 공약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전남 주민이 통합특별시를 신뢰할 수 있는지의 시험대가 된다. 결국 균형은 우선순위와 순서의 문제다. 1기 통합특별시에서 어떤 권역의 어떤 사업을 먼저 할 것인지, AI·에너지 인프라와 농어촌 생활SOC·노후 기반시설 개선 중 무엇을 앞세울 것인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후보가 진짜 균형을 말하는 후보일 것이다.
조국혁신당 "미래전환도시, 성장과 권리를 함께 바꾸자"
조국혁신당은 2월 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 및 미래전환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하며, 통합특별시를 '미래전환도시'로 규정했다. AI·반도체·재생에너지 같은 전략 산업을 키우되, 그 성과를 주거·의료·돌봄·교육·노동과 결합해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이 법안은 민주당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다. 민주당안에 담긴 일부 규제완화·기업 특혜 조항을 조정하는 대신, 비례대표 확대·중선거구제·주민참여위원회 설치 등 정치개혁 장치를 담아 통합특별시를 호남 정치와 민주주의를 새로 실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AI·에너지 수도'는 산업 브랜딩이 아니라, 권리와 안전망을 두텁게 만드는 수단이다. AI와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사회보장·노동권·정치 참여 확대의 재원으로 보고, 도시의 성패를 성장률이 아니라 권리의 두께로 재겠다는 것이다.
다만 같은 재정·시간 안에서 산업·복지·정치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려면, 어느 시기에는 산업에, 어느 시기에는 사회보장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언제, 무엇부터, 어디까지 바꾸겠다는 시간표와 우선순위가 이 모델의 설득력을 좌우한다.
기본소득당 "기본소득 수도, 바람과 데이터가 생활비가 되는 도시"
기본소득당은 통합특별시를 '기본소득 수도'로 부른다. 용혜인 의원 등은 전남 농어촌 기본소득 실험과 여러 기초자치단체의 청년·농민 수당을 예로 들며, 통합특별시 출범을 계기로 농어촌 기본소득과 출생 기본소득을 전역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해 왔다.
재원은 국비 80% 이상 지원과 통합특별시 재정, 장기적으로는 해상풍력·AI·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세수까지 염두에 둔다. 서남해 바다의 풍력과 해남·광주의 데이터센터 전기가 각 가정의 소득과 마을의 돌봄·교통복지로 되돌아오는 도시, AI·에너지 수도라는 말이 곧바로 주민의 통장과 생활조건으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그러나 해상풍력 인허가와 갈등, 계통망 문제, 통합특별법 특례 축소 논쟁을 생각하면, 단기간에 대규모 기본소득을 시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 비전은 특히 단기와 장기를 나눠 볼 필요가 있다. 통합 출범 직후 4년 동안 가능한 기본소득·복지 확대와, AI·에너지 산업이 자리 잡은 뒤 10~20년 후에야 가능한 실험을 구분해 설명하는 후보일수록, 현실 감각 있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네 장의 설계도, 광주·전남이 고를 한 장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두고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AI·에너지 수도'를 말한다. 민형배 의원은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신산업 클러스터를 축으로 한 AI·에너지 중심 도시를 그린다. 다른 민주당 후보들은 같은 통합특별시를 이야기하면서도 권역별 균형과 재정 배분 원칙이 분명한 도시를 앞세운다. 조국혁신당은 산업·복지·정치를 함께 전환하는 미래전환도시를, 기본소득당은 에너지·AI에서 나온 수익을 기본소득과 복지로 되돌리는 도시를 제안하고 있다.
'AI·에너지 도시'라는 같은 구호를 쓰지만, 실제로 제시하는 도시의 모습은 이렇게 다르다. 정부와 지자체·시민단체가 특례 축소를 두고 치열하게 맞서는 지금, 'AI·에너지 수도'라는 말이 현실에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어떤 선택과 대가를 전제로 하는지 살펴보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초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이 네 장의 도시 설계도 중 하나를 선택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광주와 전남 주민이 할 일은 단순하다. 누가 더 크게 구호를 외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땅의 현실과 갈등, 기대와 불안을 가장 구체적으로 반영해 도시를 설계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통합특별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답답한 이 대통령 "현재 입법속도론 국제사회 변화 대처 어렵다"
- "여순반란사건을 여순사건으로 바꿔주세요" 초등학생들의 호소
- 바다 위 흉물처럼...관광객마저 탄식한 동해안의 '상처'
- 50만 이상 기초단체 공천 중앙당이 결정? 장동혁 꼼수 논란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불사신
- [단독] "소녀상은 매춘부상" 시위자 책, 초중고 11곳 도서관에 비치
- 안희정 참석에 "눈물 나"...부여군수 측 "지나친 해석 없었으면" 해명
- 구윤철 "다주택 중과, 5.9 전 계약후 4∼6개월 내 잔금시 유예"
- 40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가 찾은 AI 대응법
- 내란가담 의혹에 위법임명 논란까지, 박장범 KBS 사장 '사면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