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셋"... 올림픽 시간 만드는 '오메가 타이밍' 직접 가보니 [더 하이엔드]
" “레디, 셋(ready, set).” " 직원이 손에 쥔 전자식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인 후 총소리에 맞춰 출발선을 떠났다. 몇 초 뒤 결승선을 통과하자 전광판에 기록이 떴다. 스케이트 날과 얼음판은 모형이었고, 이동 거리는 10m 남짓에 불과했지만 출발선의 긴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실제 경기에선 소수점 이하 숫자가 선수의 인생을 바꾼다. 올림픽에선 그 숫자에 따라 국가의 자존심이 엇갈린다.

올림픽 시간을 만드는 곳
지난해 9월, 스위스 베른주 산골 도시 코르제몽(Corgémont)에 있는 오메가 타이밍(Omega Timing)을 혼자 방문했다. 올림픽 공식 타임키핑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스와치그룹 소속인 이 회사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전 대회의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와 함께 경기 기록 측정과 데이터 관리를 담당한다.

오메가 타이밍 곳곳에선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준비로 한창이었다. 대회 개막 직전에는 회사 전체가 비상 체제로 전환해 취재가 불가능하지만, 대회를 몇 개월 앞둔 터라 방문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오메가 타이밍의 최고경영자(CEO) 알랭 조브리스트(Alain Zobrist)를 만났다. 오메가에서 15년간 일한 뒤 2014년부터 이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타임키핑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올림픽은 물론 대륙 및 세계 선수권 대회 등 권위 있는 각종 대회엔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는 기자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이곳저곳을 돌며 타임키핑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초당 4만장 이미지가 만드는 스토리
스피드 스케이팅 체험 후 살펴본 모니터에는 기자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진엔 팔 이미지가 여러 개 담겼다. 몸통도 앞뒤로 두껍게 퍼져 있었다. 초당 최대 4만장의 디지털 이미지를 포착하는 ‘스캔오비전 얼티밋’ 카메라 결과물이다. 이미지가 늘어지는 건 결승선 위에 머문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얼음 위에서 움직임이 둔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겨 스케이팅 데모 공간도 흥미로웠다. 빙판 전체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선수의 궤적, 점프 높이, 공중 체류 시간, 착지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을 보여줬다. 프레임 하나하나가 데이터로 남았다. 조브리스트는 “경기 전에는 선수의 과거 성적과 점프 이력을 알려주고, 경기 중에는 촬영된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눈과 감각을 닮았다고 느꼈다.


마지막 전통 장비는 오직 ‘랩 벨’
모니터로 가득 찬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메가 타이밍의 역할은 기록 측정에 그치지 않는다. 방송 중계용 그래픽 제작도 맡고 있다. 출발 리스트, 중간 기록 등이 차례로 송출된다. 4K 해상도는 물론이고 한국어 등 전 세계 언어도 지원한다. 그래픽을 담당하는 운영자는 텔레비전 감독과 헤드셋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그래픽 인, 그래픽 아웃’ 지시에 맞춰 화면을 조작한다. 그가 누른 버튼 하나로 경기 결과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 텔레비전에 송출된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없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무실 공간을 벗어나자 대형 창고를 방불케 하는 공간에는 지난 시즌을 마친 육상 기록 장비가 늘어서 있었다. 재정비를 마치면 다시 포장해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한쪽에는 매 올림픽 대회마다 사용된 ‘랩 벨’이 전시돼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처럼 빙판 위에서 랩을 돌 때 사용하는 종소리 장치다. 조브리스트는 “우리가 타임키핑 중 쓰는 마지막 전통 장비다. 나머지는 전부 최첨단 장비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종소리와 디지털 카메라가 공존하는 풍경이 흥미로웠다.

완벽해야만 한다
조브리스트에게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로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개막식부터 폐막식이 끝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해야 한다”며 “실수가 절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고 했다.
오메가 타이밍은 스위스 본사와 독일 라이프치히에 각각 200여 명, 체코 북부에 소규모 팀을 운영한다. 대회가 시작되면 장비 개발자가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시스템과 정보는 이중, 삼중으로 백업한다. “우리는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본다. 그 과정이 순간에 불과하지만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한 시간 남짓한 취재로 오메가가 일궈낸 한 세기 타임키핑 역사를 모두 돌아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의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수없는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시스템이 있다는 걸 새긴 순간이었다.
코르제몽=이현상 기자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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