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늙은 홍콩일 뿐"… 심천에서본 대한민국의 생존법

이문석 2026. 2. 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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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부동산 공화국 서울을 넘어, 국토 곳곳에 '첨단 생산 엔진'을 달아야 한다

[이문석 기자]

▲ 심천 만상천지1 삼천 만상천지1
ⓒ 이문석
버스로 불과 한 시간 거리. 국경을 넘는 그 짧은 이동 동안 나는 마치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듯한 기묘한 현기증을 느꼈다. 지난 1월 29일~2월 1일 다녀온 홍콩과 중국 심천(Shenzhen)의 이야기다.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는 이웃이지만, 시간의 속도만큼은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여전히 눈부셨다. 빅토리아 하버를 따라 늘어선 초고층 빌딩들은 밤이 되면 거대한 빛의 벽처럼 도시를 감싼다. 오랜 세월 아시아 금융의 중심으로 군림해온 도시답게, 그 스카이라인은 여전히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거리는 정돈되어 있고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도시 전체를 감싸는 긴장감이나 미래를 향해 폭발적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는 예전만 못해 보였다. 감당할 수 없는 집값에 눌린 청년들, 금융과 서비스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 그리고 서서히 늙어가는 도시의 분위기. 안정과 성숙의 도시라는 인상은 강해졌지만, 성장의 속도는 멈춘 듯했다.

반면 국경을 넘어 심천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실험실처럼 움직이고 있고, 거리에는 젊은 인재와 창업가들이 넘쳐난다. 전기버스와 전기택시가 쉼 없이 달리고,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움직인다. 그 소음은 단순한 도시의 소리가 아니라, 성장하는 국가의 거친 숨소리처럼 느껴진다.
▲ 심천 만상천지2 심천 만상천지2
ⓒ 이문석
▲ 심천 만상천지3 심천 만상천지3
ⓒ 이문석
심천의 대표 복합상업지구인 만상천지(MixC World, 深圳万象天地)에 들어섰을 때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졌다. 초고층 오피스와 쇼핑, 카페, 레스토랑이 하나의 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공간을 채운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기술 인력과 창업가들이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회의를 하는 개발자들, 퇴근 후 모여 앉은 스타트업 종사자들, 거리 공연을 구경하는 학생들까지. 그 공간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현재형 심장'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홍콩에서 느꼈던 정적인 화려함과는 전혀 다른, 성장하는 도시 특유의 야성적인 에너지였다. 나는 이 두 도시의 극명한 대비를 보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홍콩의 현재 모습에서 대한민국 수도권의 미래가 보였고, 심천의 전략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존의 해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 '홍콩의 길'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서울로 인구와 자본이 몰리는 현상을 발전의 증거로 여겨왔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수도권 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약 50%를 넘어선 상태다. 그러나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이 정도의 집중도를 보이는 사례는 드물다.

문제는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한가에 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명대까지 떨어졌고,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 역시 홍콩과 비견될 만큼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5명 수준에 머물렀다. 청년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제조업과 기술 기업은 높은 땅값을 견디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 자리를 금융, 부동산, 서비스 산업이 채우며 도시는 점점 더 소비 중심 구조로 기울어간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생산 기반이 약해진 도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이것이 바로 홍콩이 겪고 있는 구조적 한계이며, 서울이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생산을 잃은 도시의 경고, 유럽의 교훈

이 문제는 아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의 대표 관광도시들은 이미 같은 길을 걸었다.

베네치아의 구도심 인구는 1950년 약 17만 명에서 현재는 5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도시를 지탱하던 산업과 일자리는 사라지고, 관광객을 위한 숙박업과 상업시설이 주거지를 대체했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고, 도시는 관광객만 북적이는 거대한 테마파크가 되었다.

코로나19로 관광이 멈추자 도시 경제는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자체적인 생산 기반 없이 외부 소비에만 의존하는 도시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관광은 도시의 자산이 될 수는 있지만, 도시의 미래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과거의 유산을 팔아 현재를 유지하는 도시는 결국 성장 동력을 잃는다. 유럽이 관광에 의존하다 활력을 잃었듯, 홍콩은 금융에, 서울은 부동산에 의존하며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중국의 선택: '멀티 엔진' 전략
▲ 심천도심 심천도심
ⓒ 이문석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체제가 아니라 그들의 도시 전략이다.

홍콩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중국은 홍콩에만 자원을 쏟아붓지 않았다. 대신 바로 옆 갯벌에 심천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냈다. 홍콩이 금융과 서비스의 역할을 맡았다면, 심천은 제조와 기술 혁신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국가 엔진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심천 등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여러 도시가 국가 경쟁력을 분산해 떠받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하나의 도시가 흔들려도 국가 전체는 흔들리지 않는 '멀티 엔진' 시스템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서울수도권이라는 단일 엔진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다. 이것은 효율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국가균형발전은 복지가 아니라 '보험'이다

이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것은 수도권의 세금을 지역에 나눠주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 네 가지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 전략특구를 통한 파격적인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 예산 몇 푼 쥐어주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특정 권역에 조세, 노동, 토지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고 중앙정부 직속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권역별로 차별화된 산업 심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호남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AI·에너지 클러스터로, 영남은 첨단 제조와 해양 물류 중심지로 육성해 서울과 전혀 다른 산업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 심천 스타트업 휴머노이드 PT 심천 스타트업 휴머노이드 PT ⓒ 이문석

셋째, '기업이 가면 인재가 간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심천이 성장한 이유는 정부 청사가 아니라 텐센트, BYD와 DJI 같은 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 이전 기업과 인재에게는 과감한 세제 혜택과 정주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 대학과 산업이 결합된 산학 일체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이 있는 곳에 대학과 연구소를 두고, 그 대학이 지역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캠퍼스 이전이 아니라, R&D 기능이 지역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둥지를 넘어야 할 시간
▲ 홍콩야경1 홍콩야경1
ⓒ 이문석
홍콩의 야경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그 속도는 느려지고 있었다. 반면 심천의 거리는 투박했지만 젊음으로 펄떡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을 서울로 가져오는 것을 성공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그 결과 서울은 비대해졌고, 청년들은 좁은 둥지 안에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서울의 성장은 완성이 아니라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각을 바꿔야 한다. 지역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다음 성장을 만들어낼 기회의 공간이다.

서울이 홍콩처럼 정체되지 않으려면, 국토 곳곳에 심천과 같은 첨단 생산 엔진을 달아야 한다. 그것은 서울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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