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탄광 수습 중 대만 잠수사 사망 슬프다... 유족 지원 최우선"

김지운 2026. 2. 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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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서 기자회견...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성명 "일본 정부가 유해 수습 전면에 나서야"

[김지운 기자]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씨.
ⓒ 김지운
장생탄광(조세이 탄광) 유골발굴조사 도중 발생한 잠수사 사망 사고와 관련해 8일 오전 10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신우라회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사고로 숨진 잠수사는 대만 국적의 웨이·수씨로, 7일 오전 11시 32분 다른 잠수사 2명과 함께 장생탄광의 피아(환기구)를 통해 수중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잠수 직전인 오전 11시 42분, 갱도로 향하는 수심 약 32미터 지점에서 웨이·수씨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뒤따르던 잠수사가 발견해 즉시 구조에 나섰고, 낮 12시 10분부터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한 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오후 2시경 사망했다.

웨이·수씨는 30년이 넘는 경력에 대만에서 수중탐사전문가를 육성하고 있을 만큼의 베테랑 잠수사로, 장생탄광 유골발굴조사에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수중조사를 지휘하고 있는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키타카 씨가 초대해 자원봉사로 이번 조사 참여를 결정했다.

수중조사를 이끌던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키타나씨는 "6일 날 수중 조사 상황도 그랬지만 사전에 체크 잠수도 했고 바다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웨이·수씨의 다이빙 컴퓨터 로그를 분석한 결과 고산소 상태가 지속된 것은 사실인데, 어떤 원인으로 왜 고산소 상태가 발생하고 지속됐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라며 "현재로서는 어떤 예측이나 추측도 또 다른 논란이 생길수 있기 때문에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웨이·수씨는 베테랑 잠수사로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이번 조사에 참여했고,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잠수 조사를 했다. 이번 사고는 시민단체의 책임도 아니고, 유가족의 책임도 아니며, 한국과 일본 정부의 책임도 아니다"라며 "이를 제3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그 판단을 실행한 당사자의 존엄을 모욕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셨으면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장생탄광 수몰 사건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 대표는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이번 사고로 많은 분께 큰 폐를 끼치고, 소중한 생명이 돌아가신 것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유골 수습의 바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는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라면서 "지금은 숨진 잠수사의 유가족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7일 추모제에 참가한 한국의 시민단체인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성명을 통해 "국경을 넘어 역사 정의와 인도주의를 실천하려다 희생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이 안타까운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84년이 지나도록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일제 강점기 시기의 비극을 철저히 외면해 온 일본 정부가 만들어낸 명백한 인재(人災)다"라고 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지금 당장 장생탄광 유해 수습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더 이상 민간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말고, 일본 정부가 주도적으로 유해 발굴과 수습에 나서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자국민 보호와 역사 정의 실현을 위한 정부의 당연한 도리다"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는 사건 발생 2일 차인 지금까지 아무런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장생탄광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수몰 사고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희생된 해저 탄광으로, 희생자의 유해가 여전히 수습되지 못한 채 바다 속에 남아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외면 속에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주도로 2025년 첫 잠수 조사를 시작해 지난해 8월 처음으로 희생자의 유골을 추정되는 신체의 일부가 수습했으며 사고 전날인 2월 6일에도 추가로 유골이 수습됐다.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는 이노우에 요코 대표와 이사지 요시타카씨.
ⓒ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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