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말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교실에 찾아온 변화

윤태정 2026. 2. 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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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서 있던 어린 피카소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햇살'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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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정 기자]

 쉬는 시간마다 교시 창가에 서서 스케치하는 어린 피카소들
ⓒ 윤태정
나는 흙 한 줌만 보여도 가슴이 뛴다. '아, 식물을 심고 싶다.' 어쩌다 딱딱한 보도블록 틈새로 뿌리내린 풀 한 포기만 봐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발목을 간지럽히던 풀밭에서 마음껏 뛰놀던 추억 때문일까.

나는 베란다의 초록 식물들과 눈을 맞추는 일로 아침을 연다. 아파트에 살지만 내 안에 꽉 들어찬 초록에 대한 갈증으로 화단을 만들었다. 작은 화단이 점차 넓어지면서 지금은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부터 키 낮은 관엽식물까지 저마다의 특색으로 이 공간에서 숨을 쉰다. 초록 식물들은 철마다 피어나는 잔잔한 꽃들과 함께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해주고 심신도 맑게 해준다. 외출하기 전이나 집에 들어와서도 내 눈길은 언제나 화단으로 곧장 달려가곤 한다.

초록에 대한 갈증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게 햇살이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그냥 두기 아까워 좁은 창틀에라도 식물을 기르고 싶었다. 집에서 가져온 화분을 창틀에 하나둘 늘어놓기 시작했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식물들은 아이들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더욱 싱그러운 생명력을 뿜어냈다. 옹기종기 모인 초록빛 화사함은 교실 분위기를 한층 더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일찍 출근해 아이들을 맞이하기 전, 교실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시켰다. 밤사이 고여있던 탁한 공기 대신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교실 안으로 들였다. 다음으로는 화초 곁으로 다가가 식물 하나하나를 살폈다. 누렇게 뜬 이파리를 떼어내고, 먼지를 닦으면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게 첫 일과였다. 분무기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물안개는 아침 햇살과 부딪히면서 무지갯빛을 만들었다. 물론 꼿꼿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지대를 세워주는 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과 마찬가지로 식물 가꾸는 일도 진심을 쏟은 만큼 자라난다고 굳게 믿었다.

해마다 식목일이 되면 '1인 1화분 가꾸기'를 준비했다. 호박씨를 심고 떡잎을 관찰하면서, 노란 꽃이 떨어져 열매가 맺히는 경이로운 순간도 다 함께 맞이했다. 넓적한 호박잎은 한여름 교실로 길게 드리운 햇살에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작은 그늘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잎사귀의 솜털을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하고, 흙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고사리손으로 살피기도 했다.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가슴에도 어느새 식물 사랑이 찰랑거렸다.

어느 날, 채윤이가 수업 종이 울렸는데 수줍은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쉬는 시간마다 창틀에 붙어 뭔가를 열심히 그리는 아이였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선물이라면서 수시로 내미는 것들이 많다. 종이접기한 것, 만화 그린 종이, '사랑해요'라고 적힌 쪽지 등 모든 게 다 선물이었다. 채윤이가 내민 것은 쉬는 시간마다 창틀에 서서 정성스럽게 그린 식물 그림이었다. 투박한 연필 선이었지만 이파리의 잎맥을 하나하나 정성껏 살려 색칠까지 한 그림이었다. 여러 차례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완성한 그림에는 만화가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의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나는 채윤이의 예쁜 마음을 아이들에게 칭찬하면서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칭찬의 보따리를 풀기 전, 잠시 멈칫했다.

과거에는 선생님 마음대로 칭찬했을 테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아이에게 마음을 먼저 물어야 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내보이는 칭찬이 때로는 아이에게 수줍음이나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동 인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이의 기분이나 선택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아이의 생각을 물어봐 주는 일은 화초에 지지대를 세워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으니까.

처음에는 '정책이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이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건 오히려 더 오래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었다. 교사가 세워준 지지대가 식물의 성장을 돕듯, 아이의 자존감도 바로 세워주어야 잘 자라는 법이다.

"채윤아, 네가 준 선물 그림을 친구들에게 소개해 줘도 될까?"

채윤이의 작은 고갯짓으로 허락을 얻고 나서 아이들 앞에 그림을 펼쳐 보였다.

그날 이후부터 교실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교실 창가가 마치 화가들의 작업 공간처럼 변하게 된 것이다. 쉬는 시간마다 창가에 모여든 아이들이 연필로 그림을 스케치했다. 아이들의 연필 끝에서 초록 잎사귀가 돋아나고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났다. 어떤 아이는 스케치한 그림 위에 초록 색으로 이파리에 생기를 돌게 했다. 아이들은 역시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개성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했다. 그 짧은 시간에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그림을 완성해가는 아이들한테 나는 '어린 피카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날 내 책상 위에는 어린 피카소들이 그려준 선물이 수북하게 올라앉았다.
 선물로 받은 어린 피카소가 창가에 서서 그린 정물화
ⓒ 윤태정
물론 교실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시끄럽게 장난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건강한 소란스러움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활기차게 행동한다는 건 어디가 아프지 않다는 증거이다. 아이들의 장난기 속에서 넘쳐 나오는 저마다 다른 에너지는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우리 모두의 바람은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꼬임이 없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가 칭찬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였다.

퇴직 후, 나는 아침마다 베란다에 있는 화단 앞으로 나간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등굣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베란다까지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교실 창가에서 화초를 손질하고 있을 시각이다. 하루 새에 누렇게 뜬 이파리를 떼어내고, 흙을 북돋워 주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화초는 물을 받아먹고 자라지만 아이들은 '칭찬'이라는 햇살을 먹고 자라지."

그 시절 교실 창가에서 초록빛 꿈을 그리던 나의 어린 피카소들. 지금은 어느 교실에서 저마다의 꽃을 피우고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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