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인더, 1년 새 주가 2배…AI 소재·패션 ‘쌍끌이’ 이어지나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AI 서버의 구동 환경을 알아야 한다. 엔비디아의 GPU 같은 AI 반도체는 24시간 내내 방대한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처리한다. 이때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은 반도체 기판의 신호 전달 속도를 떨어뜨리고 심하면 기판을 휘게 만든다. 기존에 기판 소재로 널리 쓰이던 에폭시수지는 이 극한의 환경을 견디기 어렵다. 열에 약해 녹아버리거나 신호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mPPO다. PPO(폴리페닐렌 옥사이드)는 본래 열에 강하고 전기적 성질이 우수한 플라스틱이다. 하지만 가공하기가 너무 어려워 그동안 널리 쓰이지 못했다. 코오롱인더는 이 PPO의 분자 구조를 변형해 가공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mPPO를 개발했다.
mPPO는 유전율(전기를 유도하는 성질)이 낮아 데이터 신호가 지나갈 때 저항을 최소화한다. 비유하자면 에폭시가 울퉁불퉁한 국도라면, mPPO는 매끈하게 닦인 아우토반이다. 고속으로 신호를 보내도 손실이 적고 열도 덜 난다. 이 때문에 AI 서버용 동박적층판(CCL)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재로 자리 잡았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코오롱인더의 mPPO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본다. 코오롱인더는 코오롱생명과학으로부터 관련 특허와 기술을 이전받아 원료부터 생산, 판매까지 일원화된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설비 투자비가 기존 주력인 아라미드 대비 10% 수준에 불과하고 투자 회수 기간도 1~2년으로 짧아 알짜배기 사업으로 꼽힌다. 전통 산업재 기업이 AI 밸류체인의 핵심 공급사로 편입돼 멀티플(주가수익비율)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주목할 숫자는 실질적인 이익 기여도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인식한 코오롱스포츠 차이나의 지분법 손익은 3분기 누적 기준 301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약 108억원) 대비 3배 가까이 폭증한 규모다. 지분법 이익은 자회사의 순이익 중 모회사의 지분만큼을 재무제표상 이익으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즉 중국에서 번 돈이 코오롱인더의 당기순이익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최대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그룹(Anta Group)과의 합작(JV) 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안타그룹의 막강한 유통망과 코오롱의 기술력이 결합하며 현지화에 성공했고, 이는 고스란히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코오롱스포츠는 국내에서도 공격적인 확장에 나섰다. 최근 서울 명동에 플래그십 스토어 코오롱스포츠 서울을 오픈하며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을 공식화했다.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 유입 비중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상권이다. 오픈 후 보름간 매장을 방문한 1만5000명의 소비자 중 80%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집계됐을 정도다. 코오롱스포츠는 이곳을 중국, 일본, 동남아는 물론 미주, 유럽 관광객까지 공략하는 핵심 거점으로 삼았다.
매장 구성은 파격적이다. 코오롱스포츠 서울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브랜드 철학인 자연과의 연결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너 입지의 특성을 살린 전면 파사드로 시인성을 높였고, 내부에는 생목과 금속, 콘크리트 등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소재를 조화롭게 배치해 자연과 인공의 공존을 표현했다.
상품 전략 역시 정교해졌다. 코오롱스포츠는 최근 급성장하는 트레일 러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번 시즌 처음 선보인 트레일 러닝 슈즈 TL-E는 초심자부터 50km 장거리 러너까지 커버 가능한 다목적 모델이다. 스완 폼 미드솔과 비브람 메가그립 아웃솔을 적용해 글로벌 브랜드와 견줘도 손색없는 기술력을 증명했다.
백패킹 라인인 BPL(Back Packing Light) 시리즈의 진화도 눈에 띈다. 텐트부터 식기까지 모든 장비를 짊어져야 하는 백패킹 특성에 맞춰 무게를 극한으로 줄였다. 200g대 무게를 구현한 BPL 에그라이트 다운은 퍼텍스 퀀텀 원단과 습기에 강한 알파 다운을 사용해 경량화와 기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철저한 기어(Gear)로서 접근하는 코오롱스포츠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바탕으로 코오롱FnC는 2024년 11월, 지포어 미국 본사와 중국, 일본에 대한 독점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공략에 나섰다. 전략은 원 아시아(One Asia)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럭셔리 포지셔닝이다. 일본에서는 도쿄 최대 규모의 럭셔리 쇼핑몰 긴자 식스에 정식 매장을 열었다. 중요한 것은 입점 위치다. 골프 조닝이 아닌 럭셔리 패션관에 매장을 내며 루이비통, 셀린느 등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중국 시장 공략 속도도 빠르다. 선전의 MIXC, 상하이의 랜드마크 Plaza 66, 청두 IFS, 베이징 SKP 등 중국 1선 도시의 최고급 유통 채널에 잇달아 깃발을 꽂았다. 이들 매장을 거점으로 중국 내 패션 오피니언 리더와 프리미엄 소비층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넘어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 판로를 직접 뚫었다는 점이 기업 가치 재평가로 이어지며 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
캠핑 용품의 글로벌 강자 헬리녹스 의류라인 사업 전개도 눈길을 끈다. 코오롱FnC는 헬리녹스와 손잡고 의류 라인 ‘헬리녹스 웨어’를 론칭해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알루미늄 등산 스틱으로 시작해 체어와 퍼니처로 세계를 제패한 헬리녹스의 기술적 미학을 옷으로 옮겨온 웨어러블 기어(Wearable Gear)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이다.
헬리녹스 웨어는 브랜드명인 헬리오스(태양신)와 녹스(밤의 여신)에서 유래한 듀얼리티(Duality)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특히 브랜드 정체성을 집약한 에디션 시리즈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첫 번째 에디션인 이클립스 팩 다운 재킷 등은 다운백을 과감히 제거해 무게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모듈화 패널 구조를 적용하는 등 혁신적인 설계를 선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론칭 기념 팝업스토어에는 11일간 6000여명의 방문객이 몰렸고, 에디션 1 시리즈는 론칭 한 달이 채 안 돼 완판을 기록했다. 이는 실용성과 소장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뉴 웨이브 세대를 정확히 겨냥한 결과다. 코오롱FnC가 전통적인 패션 기업의 이미지를 벗고 트렌드를 리딩하는 젊은 기업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오롱인더의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개선 흐름을 보였으나, 주가 상승폭인 100%에 육박하는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은 아니다. 주력인 산업자재 부문은 타이어코드와 아라미드의 판가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고, 화학 부문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드라마틱한 반등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시장이 열광하는 mPPO 사업은 이제 막 개화하는 단계다. 증권가가 예상하는 ‘매출 1000억원’은 2026년 이후의 미래 추정치다. 코오롱인더 전체 연매출이 4조~5조원 규모임을 고려하면 mPPO가 당장 전사 실적을 견인하기엔 비중이 아직 작다. 패션 부문 역시 글로벌 확장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집행되고 있어 영업이익률 개선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즉 현재의 주가는 당장의 실적보다는 ‘AI 소재 기업’으로의 변신과 ‘패션 글로벌화’라는 미래 기대감이 선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PBR(주가순자산비율)과 PER(주가수익비율) 밴드 상단에 도달한 만큼, 실적 확인 과정 없이 추격 매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코오롱그룹이 발표한 실적 잠정치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4조8430억원에서 4조8796억원으로 0.8% 소폭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1151억원으로 전년(1587억원)보다 27.5% 감소했다.
결국 관건은 ‘증명’이다. 급등한 주가를 정당화하려면 기대감이 실제 숫자로 찍혀야 한다. mPPO 증설 라인이 완공된 후 수율 안정화와 즉각적인 매출 발생이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 진출한 지포어가 초기 안착을 넘어 유의미한 이익을 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전망은 긍정적이나 속도 조절은 필요해 보인다. AI 서버 시장의 구조적 성장과 함께 코오롱인더가 전통 화학 기업에서 첨단 소재 기업으로 재평가받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다만 현재 주가는 미래의 호재를 상당히 빠르게 반영했다. 실적 개선 속도가 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경우 단기적인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오롱인더가 ‘기대감’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실적’이라는 알맹이로 5만원대 주가를 지켜낼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세대 실손보험 할인액, 보험사 따라 최대 5배 격차 [국회 방청석]- 매경ECONOMY
- 아빠들을 위한 다목적 전기차...슈퍼 패밀리카로 진화한 스타리아 EV [CAR톡]- 매경ECONOMY
- 트럼프 25% 관세 경고에 현대차·기아 ‘10조 리스크’- 매경ECONOMY
- 에코프로비엠 ‘숨고르기’는 끝났다- 매경ECONOMY
- 삼 형제 승계 가시화...인적분할 한화, 알고 보니 그것 때문?- 매경ECONOMY
- 클럽 멀리 보내는 느낌으로 스윙 시작 [톱골퍼 비밀노트]- 매경ECONOMY
- “네 덕분에 s급 인재가 됐다”...나만의 AI 비서 [AI 딥다이브]- 매경ECONOMY
- 재건축서도…상가가 추방당하고 있다- 매경ECONOMY
- “회식 사라지고 혼술 줄고”…주류 소비 급감에 출구 안보이는 주류업계- 매경ECONOMY
- ‘리쥬란 열풍’ 파마리서치 주가 하루 새 23% 급락, 왜?-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