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통녀로 몰던 은행가에 ‘분노’의 한방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2026. 2. 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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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아내 복수 위해 중앙은행 없앴다?

사랑하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욕보이는데 사나이가 잠자코 고개만 끄덕일 순 없다. 장부 기개는 아내 명예를 지켜줌으로써 올곧게 서는 것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기 여자의 과거를 트집 잡는 이들에게 총을 겨눈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총격전이 숱해 남자의 몸은 총 뚫린 자국으로 과녁 같았으나 그는 이를 훈장으로 여겼다.

마침내 최고 권력자가 됐을 때 그는 가슴 벅찼다. 더 이상 아내를 건드릴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단단한 착각이었다. 정치적 반대파들이 이리떼처럼 더욱 모질게 몰아붙였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시민들은 아내에게 침을 뱉었다.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 더러운 간통녀라는 모욕이 따랐다. 거친 돌팔매질로 마음 멍울이 점점 번지더니 이내 레이첼을 집어삼켰다. 이른 죽음이었다.

남자의 복수심은 옹골차기 그지없었다. 레이첼 명예를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정치적 반대파를 향한 대보복을 예고했다. 미국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이야기다. 잭슨 복수극은 예기치 않게 미국 경제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의 복수전으로 미국에 100년 동안 중앙은행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제사에 묻은 치정이라는 얼룩을 읽어낼 시간이다.

잭슨은 흙과 먼지 속에서 태어난 야생화였다. 그가 태어나기 3주 전 아버지가 죽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아들 셋을 키운 억척어멈 신세였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라틴어를 배울 때 잭슨은 농부의 속된 언어에 웃음 지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문을 위해 펜을 들었을 때 잭슨은 테네시 숲에서 총과 칼을 들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제 뿌리를 잊지 말라고 거푸 말했다. 잭슨은 이를 뼈에 새겨 영국을 증오했다. 가족 뿌리가 아일랜드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800년 동안 영국 지배를 받았다.

일러스트 : 강유나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조국이 자랑스러워 잭슨은 조국을 위해 일하기를 꿈꿨다. 말 안장을 만들며 저잣거리 장사치로 일하면서도 그의 포부에는 말똥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잭슨 꿈은 크고 창대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법을 공부했다. 남들은 잭슨을 허풍선이로 여겼지만 그의 꿈에 지지대를 세워주는 사람이 있었다. 레이첼이었다. 레이첼 전 남편은 술에 취해 아내를 두들겨 패기를 즐기는 인물이라 레이첼은 치를 떨며 도망쳐 나왔다. 이혼 서류에 미처 도장을 찍지 못해 법적으로 유부녀였음에도 잭슨은 개의치 않았다. 고학생 옆에서 온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레이첼은 잭슨이 평생 품고 갈 사람이었다. 결국 잭슨은 변호사가 됐고 나아가 테네시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미국 시민은 잭슨이 좋았다. 내가 의원입네 하며 젠체하는 법이 없어서였다. 농부의 농사일을 거들고 노동자들과 맥주를 한 잔 걸쳤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와 농부에게 돈놀이하는 은행가를 잭슨은 극도로 혐오했다. 가련한 처지를 이해하는 나라님이 반가워 잭슨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노동자, 장사치를 거쳐 국가 지도자급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분하고 샘나 반대파들은 끊임없이 잭슨을 공격했다. 그 타깃은 레이첼이었다. 혼인 상태에 있는 레이첼과 앤드루 잭슨이 불륜했다고 공격한 것이다. 반대파 반대가 거셀수록 결속은 끈끈해지기 마련이라 앤드루 잭슨 지지층은 더욱 질기게 결집했다. 1829년 마침내 미합중국 제7대 대통령 이름에 앤드루 잭슨이 새겨졌다. 그가 최고 자리에 오르고 두 달 뒤 레이첼은 숨을 거뒀다. 잇단 공격에 몸과 마음이 짓무른 탓이었다.

미합중국은 갈림길에 서 있었다. 중앙은행을 유지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를 두고 격론이 오가서였다. 미국이라는 공화국에서 중앙은행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중앙은행은 너무나 영국적인 제도였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모든 걸 통제한다는 건 각 주의 독립권을 보장하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너무 달랐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이유로 미국 중앙은행(미국 제1은행)을 1791년부터 20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한 이유였다. 제1은행이 사라졌지만 은행가와 자본가 권력은 재차 필요성을 역설하며 제2은행을 다시 세웠다.

제2은행 존립 기간이 다하고 연장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등장한 남자, 앤드루 잭슨이었다. 잭슨은 중앙은행을 혐오했다. 중앙은행은 영국에서 온 금융 제도(영란은행)였기 때문이다. 잭슨은 영국에 학을 떼는 남자였으므로 제2은행 존립은 위태로웠다.

반면 은행가와 그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은 국가 경제를 총괄할 은행이 필요하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럴수록 잭슨 마음은 폐지로 굳어졌다. 은행가 그룹은 잭슨과 레이첼을 공격해온 대표 반대파였기 때문이다. 아내를 죽게 만든 이들의 청원을 들어줄 만큼 잭슨은 어둑한 남자가 아니었다. 전선은 다시 형성됐다. 의회를 쥐락펴락하는 은행가 그룹과 농민·노동자 대변인 앤드루 잭슨. 은행 전쟁이었다.

의회에서 제2은행 연장안이 통과됐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상공인 표를 잃을 것이고 연장안을 받으면 농민과 노동자 표를 잃을 판이었다. 잭슨은 전장 법칙을 이해하는 남자였으므로 당황하지 않고 결연히 맞섰다. ‘은행이 나를 죽이려 하는군. 그러나 죽는 건 은행일 거야(The bank is trying to kill me, but I will kill it!).’ 앤드루 잭슨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상대가 짜놓은 상공인과 농민·노동자의 대결 구도를 잭슨은 부자와 빈자의 구도로 바꿔버렸다.

“이 법은 부자에게 더 많은 부를, 권력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줄 것입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 정부 법을 사리사욕에 맞게 왜곡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회의 미천한 구성원인 농부, 기계공, 노동자들은 혜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잭슨의 문장은 없이 사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번쩍이게 했다. 그 번쩍임으로 시민들은 잭슨에게 몰표를 던졌고 제2은행은 사라졌다. 은행전쟁 승리로 잭슨은 대통령 재선이라는 전리품을 챙겼다.

누구나 은행을 차릴 수 있는 시대는 자유보다는 무질서의 혼돈으로 가득했다. 은행가와 일수꾼은 크게 구별되지 않아 족제비 가죽을 담보 잡고 돈을 빌려주는 곳에도 떡하니 뱅크라는 간판이 붙었다. 은행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지폐를 발행했는데 미국 전역에 수천 개 지폐가 존재할 정도였다. 상인들은 거래할 때마다 위조지폐 감별 책자를 들여다봐야 했다. 지폐를 사람들이 신뢰할 리 없어 지폐는 언제나 액면가의 10~50% 깎여 거래됐다. 금융은 산업 마중물이라는 걸 잭슨은 알지 못했다. 미국 산업은 걸음이 무거웠다. 앤드루 잭슨은 죽음을 앞두고 내가 그 은행을 죽였다고 자찬했다. 미국에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이 다시 들어선 건 1913년, 제2은행이 폐지된 지 약 80년이 지나서였다.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6호 (2026.02.04~0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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