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둘러싼 형제의 침묵시위, 동네를 뒤흔들다
[김상목 기자]
도시 근교의 작은 동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문도 잠그지 않고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곳이다. 남편들은 퇴근길 역전 선술집에서 함께 한잔 기울이고, 엄마들은 시장에 갈 때 필요한 물건을 부탁하거나 급한 물건을 빌리며 왕래한다.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등굣길에 무리를 지어 학교로 향한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동네다.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틈만 나면 옆집에 들러 텔레비전을 보는 게 반복되는 일상에 가장 큰 낙이다. 아직 이 작은 동네에서 텔레비전을 소유한 집은 여기가 유일하다. 비록 자그마한 흑백텔레비전이라 해도 라디오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닌, 생생한 화면으로 보는 스모 경기는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하지만 형제의 엄마는 이웃에 민폐가 될까, 공부를 게을리할까 걱정이 잔뜩이다.
이웃집에 가지 말라는 엄마 말씀에 형제는 거세게 반발한다. 텔레비전이 있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는데 왜 우리 집은 TV 사지 않냐며 적반하장 화를 낸다. 퇴근한 아빠가 꾸짖자, 말대꾸하던 형제는 텔레비전을 사주길 요구하며 그날부로 일체의 대화를 거부한다. 잠깐 저러다 말겠지 하고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의외로 형제의 태도는 강경하다. 침묵시위는 거듭 억측과 오해를 불러온다. 동네에 일파만파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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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스틸 |
| ⓒ 엣나인필름 |
그런 동네라지만, 말이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며 왜곡되거나 본질은 쏙 빠진 채 말 그대로 뜬소문으로 변하는 건 피할 도리가 없다.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이웃들은 자신이 들은 부정확한 정보에 자신의 억측과 상상력을 부풀려 전혀 다른 내용으로 수건 돌리기처럼 다음 집으로 전송한다. 정확도가 형편없다는 걸 제외하면, 소식이 전파되는 놀라운 속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모른 척 살아도 작은 동네에서 차가운 시선은 피할 길 없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겐 스트레스 가득한 피로감으로 축적된다. 선량한 주민들은 부지불식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올리고, 자신들만의 닫힌 사회를 건설한 상태다. 적응하며 섞여들지 못한다면 끝내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동네에 익숙한 이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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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스틸 |
| ⓒ 엣나인필름 |
급기야 교사가 가정방문 와서 진상을 조사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웃들은 동네 어른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며 인사도 하지 않는 형제에 당황하며 실제와 동떨어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그런 단체행동을 일삼을 리 없다고 믿기에, 저절로 의혹은 형제의 부모님 평판으로 연결된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과정은 그저 코미디로 즐기기엔 꽤나 의미싱장한 대목으로 점차 변해간다.
형제 중 형인 미노루는 이제 그만 억지를 부리라며 엄하게 꾸짖는 아빠에게 한치도 후퇴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다며 혼을 내는 아빠에게 아들은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냐고 따져 묻는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어때' 같은 형식적인 인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주장이다. 어른의 권위로 자녀 세대를 억누르기엔 이미 한참 늦었다. 자신들이 동의할 수 없다면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형제의 태도는 영화가 나온 후 몇 년도 되지 않아 일본 사회를 뒤집은 전공투 세대의 등장을 예고하듯 보인다.
한참을 지나도 아이들이 굳세게 버티자 그저 일상 근황만 주고받던 어른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상황을 살피느라 말수가 많아진다. 부모님은 형제의 속마음을 파악하려 하지만, 대화를 거부한 아이들의 심리구조는 미지의 영역과 다를 바 없다. 아빠는 텔레비전이 온 국민을 바보로 만들 거라 여기기에 역시 양보할 생각이 없었지만, 세상이 변하는 물결은 되돌리려야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어른들은 고민에 빠져 심사숙고를 거듭한다.
전후 복구가 일차적으로 완성되고, 곧이어 경제 부흥을 걷던 당대 일본 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세태 변화와 물질문명 범람은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관측된다. 중년에 구직활동하던 이웃은 당시 유행하던 외판원으로 전직한다. 그의 가방에 가득한 전자제품 카탈로그엔 세탁기와 텔레비전, 주방용품 목록이 잔뜩이다. 아직은 가볍게 '지르기'엔 부담스러운 '신상'이라도 할부 구매가 가능해진 세상이다. 이웃 간에 입소문이 금방 퍼져 선망과 질투를 낳는다. 그렇게 소비 경쟁이 촉발한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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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스틸 |
| ⓒ 엣나인필름 |
영화 내내 딱히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형제의 '반란'조차 지나고 보면 한때의 해프닝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섬세한 카메라 구도를 따라 천천히 화면 속 인물들의 대사와 일상 풍경을 응시한다면, 현대 일본인이 가장 회귀하고픈 시기인 1950년대 후반이 갖는 실체를 올곧게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예상 밖으로 심각해지는 상황에 아찔하다가도, 소시민의 애환과 누구나 경험했을 가족 내의 일상 갈등, 그리고 그런 다툼이 아무 일 없단 듯 스륵 소멸하는 흐름에 피식 웃거나 풋풋한 로맨스의 탄생을 보고 있자면, 과거 추억을 돌아보며 마냥 반가워진다.
감독이 견지하는 전통에 대한 애착과 향수도 여전하다. 하지만 썩 탐탁하진 않아도 변화의 대세는 부정할 수 없다는 체념과 양보가 깃든 <안녕하세요>는 거장의 호흡이 빚어낸 시대의 초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완성품이다.
<작품정보>
안녕하세요
お 早 よう
Good Morning
1959 일본 드라마, 코미디, 가족
2026.02.11. 개봉 94분 12세 관람가
감독 오즈 야스지로
출연 사다 케이지, 쿠가 요시코, 류 치슈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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