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가 뉴욕에 살게 된다면'... 1순위로 꼽은 곳
지난해 12월 23일부터 딸과 15박 16일간 뉴욕 미술관을 여행했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따뜻한 온기와 소박한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제 작은 기록이 여러분의 일상에 기분 좋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기자말>
[문현호 기자]
주5일제가 우리 사회의 견고한 상식이 되면서 금요일 저녁 풍경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부서원 전체가 모여 늦게까지 잔을 기울이던 회식은 어느덧 낯선 풍경이 되었고, 다들 서둘러 각자의 주말을 찾아 흩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패밀리 레스토랑 TGI 프라이데이스(TGIF : 'Thank God It's Friday'의 약자)의 케이준 치킨 샐러드와 폭립 냄새에 설레며 데이트를 즐겼던 기억을 가진 제겐, 금요일 밤은 여전히 묘한 설렘을 안겨줍니다. 왠지 이대로 집에 가기엔 아쉽고, 북적이는 인파 속에 섞여야만 비로소 세상의 주파수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기분 좋은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낯익은 설렘을 태평양 너머 낯선 뉴욕 한복판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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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트니 미술관 로비] 매주 금요일 밤, 미술관의 문턱이 낮아지는 순간, 뉴욕의 활기찬 에너지가 전시장 안으로 넘쳐 들어옵니다. |
| ⓒ 문현호 |
마릴린 먼로의 표정에서 읽은 것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화려한 색채로 인사를 건넵니다. 워홀은 먼로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몇 주 만에, 영화 <나이아가라>의 홍보 사진을 활용해 이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추모하기보다, 대중문화가 한 인간을 어떻게 이미지로 박제하고 소비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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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6층 606 갤러리] 앤디 워홀의 '마릴린(Marilyn)'. 기계적 복제로 박제된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소비되는 대중스타의 공허한 표정을 응시합니다.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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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6층 606 갤러리] 재스퍼 존스의 '세 개의 국기(Three Flags)'. 익숙한 대상도 겹겹이 쌓인 왁스 층처럼 정성껏 들여다볼 때 비로소 새로운 무게를 얻습니다. |
| ⓒ 문현호 |
좀 더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조지 벨로스의 '뎀시와 피르포' 앞에서는 도시 삶의 원초적인 활력을 느낍니다. 1923년, 전설적인 복서 잭 뎀시가 아르헨티나의 피르포에게 카운터를 맞고 링 밖으로 튕겨 나가는 찰나를 그린 이 작품은 애쉬캔 학파 특유의 거친 리얼리즘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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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7층 704 갤러리] 조지 벨로스의 '뎀시와 피르포(Dempsey and Firpo)'. 링 밖으로 튕겨 나가는 찰나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치열한 일상을 견디는 우리에게 묘한 생동감을 전합니다. |
| ⓒ 문현호 |
벽면을 가득 채운 'VIA AIR MAIL' 문구들을 보며 캐나다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큰아이를 생각했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마음은 이 봉투들처럼 끊임없이 서로의 주파수를 찾아 날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멀리 있다는 것은 결코 잊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정성스럽게 마음을 부쳐야 할 이유가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다정한 편지처럼 일깨워주었습니다.
호퍼가 포착한 도시의 고요
미술관의 활기를 한 겹 걷어내면 드디어 휘트니의 심장, 에드워드 호퍼의 공간이 시작됩니다. '이른 일요일 아침'에서 호퍼는 뉴욕 7번가의 풍경을 그렸지만, 특정 장소의 구체성보다는 도시의 보편적인 정적을 담아냈습니다. 본래 창문에 사람의 실루엣을 그려 넣으려다 마지막에 지워버린 덕분에, 거리에는 긴 그림자와 함께 숨 막히는 고요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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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7층 701 갤러리] 에드워드 호퍼의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 소음이 사라진 도시의 아침, 긴 그림자가 드리운 거리에서 일상의 낯선 정적을 발견합니다.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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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7층 701 갤러리] 에드워드 호퍼의 '오전 7시(Seven A.M.)'. 하얀 벽과 어두운 숲의 대비를 통해 매일 아침 우리가 마주하는 이성과 본능의 경계를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
| ⓒ 문현호 |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고립되어 있지만, 이 여인은 결코 초라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부 세계의 소란과 단절된 채 자신의 고요에 온전히 몰두한 모습은, 소외가 아닌 자기만의 방에서 피어나는 단단한 평화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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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ney 7층 701 갤러리] 에드워드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 고독은 외톨이가 되는 아픔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자신만의 방에서 피어나는 정갈한 평화입니다. |
| ⓒ 문현호 |
아래로는 첼시의 붉은 벽돌집들과 하이라인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허드슨강 위로 번지는 뉴욕의 밤이 펼쳐집니다. 테라스에 서서 강물 위로 잦아드는 불빛들을 가만히 응시해 봅니다. 저 불빛 하나 하나가 호퍼의 주인공들처럼 누군가의 고독한 밤을 지키고 있겠지요. 굳이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저마다의 삶을 성실히 일궈내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그 불빛 사이 어딘가에서 함께 반짝이고 있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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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트니 미술관 야외 테라스]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계단식 테라스. 허드슨 강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활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뉴욕의 금요일 밤을 갈무리합니다.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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