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복수' 이야기들이 있다. 이 오랜 인류의 관심사는 고대 신화부터 21세기 OTT 드라마까지 시공간을 초월한다. 누구라도 나만의 복수물 목록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셰익스피어 <햄릿>처럼 고전부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까지, 공중파건 케이블이건 TV를 틀면 어느 채널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영되는 드라마 주제로 우리는 일상에서 복수극과 만난다.
하지만 복수의 완결성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위상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모든 걸 빼앗긴 주인공이 '복수귀'로 변해 원수들에게 차례로 공들여 보복하는 줄거리는 1844년 첫 공개부터 21세기 현재까지 무수한 대중문화 요소에서 끝없이 변주한다. 알려진 영화만 해도 두 자리 숫자 가볍게 넘길 정도다. 그래서 모두가 줄거리를 안다.
우릴 대로 우려낸 이야기임에도 생명력을 유지하며 재탄생 하는 건 그만큼 이야기가 매력 넘치고 재해석 여지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결말 다 알아도 리메이크될 때마다 호기심에 끌린다. 게다가 원작의 모국 프랑스에서 '각 잡고' 만든 대작이라면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이번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잘 만든 복수극을 선호하는 이라면 우회하기 힘든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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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
| ⓒ 찬란 |
하지만 눈요기를 만끽하고 나면, 원작의 탄탄한 설정과 고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개 청소년 시절 순화된 압축판으로 접했던 이들에겐 당시엔 포착할 수 없던 세부 내용이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의 순간으로 도래하는 셈. 근현대 프랑스 문학을 상징하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표작은 명불허전이다. 프랑스 대표 소설가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소설에 담긴 다채롭고 풍성한 배경, 캐릭터가 상징하는 당대 사회 풍경이 채워진다. 국내 출판본 중 민음사 5권 전집은 2천 쪽 분량이고, 당시 신문에 게재되던 연재소설 형식으론 18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열강의 식민지 상황이 극적 쾌감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채운다. 그냥 봐도 흥미진진한데 배경에 묻어난 복잡한 당대 현실을 파악하면 재미는 몇 곱절 증폭된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과 그의 불구대천 원수들, '당글라르', '페르낭', '빌포르'는 물론, 복수를 돕는 '아이데'와 '파리아 신부' 같은 캐릭터 모두 그저 매력적 개인을 넘어 해당 시기의 정치 사회적 상징성을 확보한 존재들이다. 그런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장대한 복수는 개인의 한풀이를 뛰어넘어 소설가가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압축된 모양새로 탈바꿈한다. 대체 어떤 함의가 담겨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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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
| ⓒ 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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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스틸 |
| ⓒ 찬란 |
주인공의 복수 대상 또한 당대 새롭게 등장한 기득권 집단을 골고루 분담해 상징한다. 본래 당테스의 동료 선원이던 당글라르는 해외 무역과 금융업으로 거부가 된다. 병졸에 불과했던 페르낭은 프랑스의 대외 전쟁에 종군해 공훈을 쌓아 장군과 의원에 오른다. 고위 검사인 빌포르는 왕이 아니라 사법부를 통한 법의 지배가 정착한 세상에서 국가권력 권위를 표상한다.
막강한 적들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활용한 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력이다. '백작' 작위도 돈을 들여 샀고 누구도 허물로 삼지 않는다. 즉, 권력을 가진 적대 세력에 대항하는 최고의 카드는 더 큰 부, 즉 금권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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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
| ⓒ 찬란 |
고대에는 절대적 존재, 즉 신이나 군주의 가호나 혜안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시대엔 좀 더 현실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딱 잘라 과거와 단절하고 확 새롭기만 할 순 없다. 그냥 초인적 능력치로 속 시원하게 복수를 실행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주인공의 행위 역시 복합적인 면모를 보이며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할수록 심화일로다.
우선 지옥에 추락했다가 이 악물고 돌아온 개인의 원한과 증오다. 한 인간으로서 주인공은 출세와 미래를 송두리째 잃는다. 사랑하던 연인과 결혼식장에서 생이별을 당하고, 원수의 아내가 된 꼴을 두 눈 뜨고 봐야 한다. 자식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곡기를 끊고 굶어 죽었다.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야말로 인생과 명예, 사랑 전부 빼앗긴 셈이다. 그는 자신이 상실한 것을 적들 각자에게 고스란히 갚는다. 당글라르는 굶주림과 재산 몰수를, 페르낭은 연인과 가족을, 빌포르는 명예와 체면을 잃게 하는 복수다. 오랜 응보의 감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러나 고도의 지성과 인격을 갖춘 주인공은 함무라비 시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사적 복수가 신이 정한 정의를 수행함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의 개인적 응징은 곧 사회적 정의 실현으로 연계된다. 부도덕한 투기꾼은 제 꾀에 넘어가 파산하고, 배신을 일삼던 군인은 위선이 폭로되며 가까운 이들에게 외면 당한다. 도덕과 질서의 화신 같던 법관은 지탄 받아 마땅한 가해자로 판명된다.
그들의 죄악은 유럽이 세계로 뻗어가던 시대답게 스케일도 과거랑은 비교 불가다. 국경선을 넘나드는 주식 투기, 외세가 개입한 국제 분쟁과 민족 독립 운동, 새로 접한 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폭넓게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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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
| ⓒ 찬란 |
새롭게 돌아온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원작이 구축한 장르 쾌감, 즉 초월적 존재의 현신처럼 만능인 주인공이 천벌 받아 마땅한 죄인을 처단하는 짜릿함과 호화로운 배경 가운데 후자의 매혹을 극대화한다. 누구나 시대극을 볼 때 기대하는 장엄한 시대 고증은 충분히 보장된다. 19세기 유럽 시대상과 오리엔탈리즘 재현은 충분히 눈 요기로 손색 없다.
하지만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어 보이던 전능자 주인공은 21세기에 걸맞게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실존적인 면모로 탈바꿈했다. 불굴의 의지로 지옥에서 탈출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는 원작 문구는 본 작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복수극의 오랜 숙제, 자신을 지탱해준 불길이 꺼지면 무엇이 남는가와 그런 결말로 과연 모든 게 정화되고 해소될 수 있는지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의 차원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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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테크리스토 백작> 포스터 |
| ⓒ 찬란 |
몬테크리스토 백작
The Count of Monte Cristo
2024 프랑스 액션/어드벤처/시대극
2026.02.13. 개봉 178분 12세 관람가
감독 마티유 델라포르트, 알렉상드르 드 라 파텔리에르
출연 피에르 니네이, 바스티앵 부이용, 아나이스 드무스티에,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로랑 라피트
수입/배급 찬란
공동배급 ㈜버킷스튜디오
공동제공 소지섭, 5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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