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서사, 영화적 미장센, 철학적 메시지… 그게 게임”
게임에 담긴 이야기 전하는
‘GCL’ 채널 운영자 이종규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게임 기획자를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종규(36)씨. 그가 ‘겜프의 이야기’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해 자신이 플레이한 게임 속 이야기들을 정리해 올리기 시작한 건 2013년이었다. ‘디아블로’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많았지만 화면 속 캐릭터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게임 속 세계는 무슨 이유에서 멸망하는지 많은 이가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저 게임의 ‘스토리’는 무시한 채 ‘플레이’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이씨는 블로그를 통해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게임에 감춰진 세세한 구성과 캐릭터들에 담긴 사연을 한 편의 소설처럼 풀어내면서 조금씩 주목받게 됐다.
이렇듯 블로그에서 갈고 닦은 이씨의 ‘스토리텔링’ 실력은 2015년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면서 꽃을 피우게 됐다. 블로그를 운영할 때처럼 ‘겜프’라는 예명을 달고 그가 개설한 채널은 ‘Game Culture Leader’의 줄임말인 ‘GCL’. 단순히 게임을 리뷰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을 1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로 바꿔놓는 이 채널의 구독자는 5일 기준 116만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씨에게 게임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3일 경기도 시흥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내게 게임은 단순한 놀거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고, 대부분 하나의 직업을 갖고 엇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씨와 나눈 일문일답.
-GCL이라는 채널명의 뜻이 궁금한데.
“게임 문화를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다소 거창한 포부를 담아서 만든 이름이다. 나는 좋은 게임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게임을 단순한 유희 활동 정도로 여기지만 게임 속엔 엄청난 문학적 서사와 영화적인 미장센,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게임은 종합 예술이다’라고 말로만 외치는 것보다 실제로 그런 깊이 있는 게임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 부모님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게 목표다.”
-게임에 담긴 스토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뭔가.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여러 콘텐츠를 시도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했던 것이 생존 비결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다른 좋은 기회를 놓친 적도 많았지만, 오직 한 분야에 집중해 오래 활동한 덕분에 GCL이라는 채널이 어떤 채널인지 시청자들이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유명한 게임만 좇지 않은 것도 주효했다. 흔히 대세, 주류라 불리는 게임에 치우치지 않고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혹은 이름만 들어봤던 작품성이 뛰어난 게임들을 제대로 알려보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했다. 소개한 게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판매량이 오를 때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다.”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결국엔 크리에이터로 살아남았는데.
“나의 가장 큰 무기는 꾸준함이었다. 곁눈질하지 않고 내가 잘하는 것을 가장 깊게 파고들었던 게 생존 비결이었다. 게임 콘텐츠는 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직접 게임을 해보고 대본을 쓴 뒤 편집까지 해야 하기에 사람들이 쉽게 뛰어들기 힘든 분야다. 이렇듯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를 10년 넘게 파고들면서 전문성이 쌓인 것 같다. 너무 유명한 게임만 좇지 않은 것도 주효했다. ‘데드스페이스’나 ‘다크소울 시리즈’처럼 출시 당시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작품성이 뛰어난 게임들을 발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운도 좋았다. 코로나19 시기에 사람들이 외출을 못 할 때 내 채널의 긴 영상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숏폼’ 시대에 1시간 넘는 긴 영상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유튜브를 처음 시작할 때도 ‘영상 길면 안 본다’ ‘5분 내로 줄여라’ 같은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장면도 보여주고 싶고, 이 대사도 들려주고 싶은데 그걸 1분, 5분으로 축약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길더라도 재밌게’라는 전략을 택했다. 지루한 구간은 과감히 내레이션으로 요약하고, 액션이나 하이라이트 장면은 영상미를 살려 배치하고 있다. 길이가 길더라도 최대한 하이라이트만 담는다고 생각하면서 편집한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경험을 주기 위해서다.”
-영상을 편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면.
“핵심은 ‘시청각의 일치’다. 게임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내레이션만 입히는 방식은 지양한다. 내레이션 한 문장 한 문장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화면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설명이 들어가는 부분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가 딱 맞아떨어져야 몰입이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처럼 오디오만 듣는다’ ‘몇몇 장면은 스킵해달라’는 구독자 댓글을 보면 서운할 때도 있다(웃음).”
-게임은 어떻게 각색하나.
“대본을 쓸 때 가장 공을 많이 들인다. 대본 속 이야기가 파편화되면 구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 게임을 하면서 노트북에 아이디어를 계속 적어두고, 따로 자료를 정리해 개요를 짠다. 어떤 순서로 사건을 배치해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보일지 재구성하는 각색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플레이와 촬영도 오래 걸리지만, 이야기를 엮어내는 대본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영상을 올리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게임하는 장면은 3~5일이면 촬영이 끝난다. 그다음 대본 작업에 2~3일 정도 걸린다. 이후 편집 과정을 거치는데 역시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영상 한 편을 만드는 데 플레이 시간까지 합치면 80~90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번아웃’을 느낄 때는 없었나.
“번아웃은 거의 질병처럼 달고 산다.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은 못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영상을 올렸을 때 오는 성취감이 크다. 영상 하나하나가 자식 같다. ‘게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다’는 댓글을 보거나, 내가 이제까지 만들어 온 영상 리스트를 쭉 훑어볼 때 위로를 받는다. 채널 자체가 내 유산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소개하고 싶은 게임과 대중이 원하는 게임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낄 땐 없나.
“매번 고민하는 지점이다. 조회수만 생각하면 최신 인기작이나 유명 게임만 해야겠지만, 너무 그쪽으로만 가면 내 색깔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고 싶은 게임만 다루면 대중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둘의 비중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인기 게임을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이건 진짜 명작인데 사람들이 몰라주네’ 싶은 게임을 섞는다. 신기하게도 내가 정말 애정을 가지고 소개한 비주류 게임을 다룬 영상 조회수가 터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가장 뿌듯하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게임의 ‘효용’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엔 나도 ‘이 게임을 하면 뭐가 좋을까’를 따지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게임은 팍팍한 삶을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더라. 죄책감 느끼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대했으면 한다. 앞으로도 게임과 관련된 놀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계속 들려드리고 싶다.”
시흥=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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