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나서면 그 많던 장애인들은 돌연 사라져 버린다

유경림 2026. 2. 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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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 장애인이 안 보이는 이유... 이동권은 다른 권리 보장의 기본 전제

[유경림 기자]

▲ 삼각지역에서 대치하는 전장연과 경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2023.1.2
ⓒ 연합뉴스
특수 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수 교사로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장애인을 만난다. 유치부의 영유아부터 전공과의 성인 학생까지 만나는 장애인 연령층도 다양하다. 매일 출근해서 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장애인이 결코 적지 않음을 체감한다. 특히 점심시간에 교내 식당을 가득 채운 수십 명의 장애 학생과 밥을 먹을 때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되어 학교를 나서면 그 많던 장애인들은 돌연 사라져 버린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만 263만 명이다. 비율로 환산하면 전체 인구에서 5%가 장애인인 셈. 단순 계산만 하더라도 퇴근길에 지나치는 사람만 수백 명이니 못해도 10명은 마주쳐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명 볼까 말까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다. 장애인들은 쉽게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 시각장애인은 버스를 타려면 옆 사람에게 도착하는 버스가 몇 번인지 여러 번 물어봐야 한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계단을 마주치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예삿일이고 식당, 카페는 입구에서부터 막힌다. 결국 장애인에게 외출은 시간, 체력, 감정 소모가 동반되는 일이 돼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어김없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동권 시위의 대표 주자가 바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이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 지하철 출근 시위를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지하철 시위를 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저상버스 도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 확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넘어 입구, 개찰구, 승강장 전 구간을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장애물 없는 시설을 요구한다. 이동권이 단순히 외출의 개념을 넘어 생존권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와도 가깝다.

"움직일 수 있어야 교육받고 일할 수 있다. 장애인이 사회의 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이동권이다. -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

하지만 이동권에 대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우리도 9시에 출근해야 해요. 9시에 늦으면 경위서 작성해야 하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세요?"

사람들은 '이동권'보다는 그들의 '시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장애인이 겪는 차별은 공감하지만, 바쁜 출근 시간에 시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니까 말이다. 지각, 지하철 지연,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 등. 사람들은 사회가 장애인의 이동을 가로막는 구조보다 눈앞에 드러나는 자신들의 불편함에만 반응을 보였다.

장애인이 평생 겪어 온 차별에 비해 잠깐의 불편함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차별에 둔감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사람들의 태도를 윤리적 잣대로만 문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이동권 자체가 사람들이 쉽게 체감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비장애인의 편의를 중심으로 환경과 구조가 설계되어 왔다. 건물 출입구, 화장실, 대중교통 구조, 환승 동선까지 대부분은 비장애인의 신체 조건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자유롭게 이동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기본값'으로 자리 잡았다. 이동은 권리가 아닌 일상의 전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장애인의 신체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 이동권 부재는 사람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교육 받으려면, 일 하려면, 치료 받으려면, 이동해야 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보니 이동권이 얼마나 중요한 권리인지도 실감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동권은 다른 권리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권리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이동권)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동권은 단순히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동권은 다른 권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 전제가 된다. 어떠한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기 위해서는 일단 그 권리가 작동하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으려면 학교로 가야 한다. 일을 하려면 일터로 가야 한다.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 어떠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그 권리가 제공되는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단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전제 조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동권은 장애인에게 주어진 권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인 셈이다. 장애 관련 전문가들이 입모아 이동권이 다른 권리의 기본 전제이지 가장 근본적인 권리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주어진 다른 권리들은 사실상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인권이 실현되고 이들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으려면 일단 거리로 나와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 권리의 출발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마주하기가 어렵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도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다. 창가 밖 길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본 장애인은 지하철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남자 한 명뿐이었다.

거리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것은 꽤 익숙한 풍경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 구조에 익숙해졌다는 신호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경사로, 폭이 좁은 가게 출입문과 단차가 있는 문턱. 비장애인에게는 사소한 것이겠지만 장애인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가로막는 장벽과도 다름없다.

이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지하철 시위로 인한 불편함이 아닌,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장애인을 어떻게 밀어내고 이 사회에서 배제하는지를 말이다. 시위를 불편함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해 온 문제의 신호임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장애인권 논의는 비로소 실질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구조와 환경에 대해서 이제는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출퇴근길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는 이들의 권리가 묵인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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