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무늬만 자본’…SK 등 수십조 ‘비용청구서’ 날아든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6. 2.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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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이 홈플러스가 발행한 1조원 규모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분식회계로 판단한 것과 맞물려 시장과 재계에서는 ‘부채성 자본’ 입지가 갈수록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시선이 팽배하다. 상환전환우선주(RCPS)·전환우선주(CPS)·주가수익스와프(PRS) 등은 부채와 자본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숨은 부채’라고도 불린다. 이는 회계상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분류돼 부채비율 악화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수년간 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자본으로 분류될 뿐 잠재적 상환 부담과 일정 수준 부채 성격이 내재돼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혼란이 가중되면서 부채성 자본을 적극 활용해온 기업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도 고개를 든다. 전문가들은 부채성 자본의 정보 공시 투명성을 높여 회계 분류와 경제적 실질 간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홈플러스 RCPS 논란

PRS 둘러싼 혼선도 가중

금융투자 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RCPS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검찰과 금융 당국은 홈플러스 RCPS 상환 조건 변경을 두고 상반된 해석을 내놔 논란을 빚었다. 검찰은 이를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임원들이 재무위기를 은폐하기 위한 1조원대 분식회계로 봤다. 홈플러스 RCPS 상환 재량권을 홈플러스에 이전하는 내용의 변경 합의서를 작성했지만, 그럼에도 홈플러스는 한국리테일투자에 대한 상환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즉, 홈플러스에 RCPS 상환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회계상 부채로 인식해야 하지만, MBK가 자의적으로 자본으로 분류했기에 사실상 분식회계라는 게 검찰 논리다.

이런 검찰 판단은 금융당국 시각과는 배치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MBK에 대한 중징계 사전통보 과정에서 RCPS 상환 조건 변경으로 홈플러스의 상환 의무가 사실상 소멸됐으며, 그 결과 국민연금 손실 위험이 확대되는 등 불건전 영업행위가 빚어졌다고 봤다. 똑같은 RCPS를 두고 한쪽(검찰)은 ‘상환 의무가 남아 있다’고 보고, 다른 한쪽(금융당국)은 ‘상환 의무가 사라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 사정 기관 시각이 엇갈리면서 시장과 재계에서는 부채성 자본에 대한 혼선이 빚어진다. RCPS뿐아니라 CPS,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주가수익스와프(PRS) 등은 자본(주식)과 부채(채권) 성격을 모두 가졌다는 점에서 ‘무늬만 자본’ ‘숨은 부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들 모두 경제적 실질과 회계분류 간 간극 탓에 ‘진짜 자본’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잇따른다.

부채성 자본이 자꾸만 입길에 오르는 것엔 이유가 있다.

RCPS는 채권처럼 만기 때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동시에 갖는 종류주식(보통주와 다른 주식)이다. RCPS를 자본으로 인식하는 근거는 전환권이다. 부채 고유의 속성은 만기와 상환 의무다. 만기가 존재하고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이를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게 회계 대원칙이다. RCPS 전환권은 이런 속성을 교묘하게 비껴간다. RCPS 투자자가 기업에 빌려준 돈을 상환받지 않고 주식(보통주)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전환권)를 택할 수 있다면, 이 기업은 상환 의무가 없으므로 RCPS를 자본으로 볼 수 있단 논리다.

K-IFRS 아래 RCPS가 자본으로 인정받으려면 크게 ▲상환권 행사 주체 ▲리픽싱(Refixing·전환가액 조정) 조항 여부 ▲만기 영구성 등 요건을 따진다. 쉽게 말해, 상환권이 RCPS 투자자가 아니라 발행사(기업)에 있으면서 투자금이 발행사에 오랜 기간 묶여 있을수록 자본으로 인정받기 쉽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이런 요건을 충족해 자본으로 분류됐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부채에 가까운 성격이 내재된 경우가 태반이다. 통상 RCPS 발행 땐 상장 요건 이행 등 투자자 요구 사항을 충족 못할 경우, 이자율을 대폭 상승시키는 스텝업(Step-up) 조항을 첨부한다. 그렇지 않아도 배당률이 높은데 스텝업이 붙어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 금융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자본 요건 충족’이라는 포장지로 그럴듯하게 감싸더라도 결국 상환 과정에서 부채로 돌변할 수 있는 리스크가 내재돼 있다.

CPS도 자본과 부채, 양면성을 모두 갖고 있다. 상환권이 있는 RCPS와 달리, CPS는 상환 의무가 없는 우선주에 가깝다. 원리금 상환 의무가 없으며 만기가 길다. 만기 도래 땐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영구채와 비슷하다. 다만, CPS 역시 부채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팽배하다. CPS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배당을 약속한 것 자체가 채무 의무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PRS도 비슷한 경우다. PRS는 ‘주식을 실제로 사지 않고도 주가가 오르고 내린 만큼 수익이나 손실을 현금으로 교환하는 계약’이다. 가령, 자회사 주식 100만주(시가 1000억원)를 담보로 증권사와 PRS 계약을 맺고 현금 1000억원을 조달한 경우, 형식적으로는 주식을 넘기며 의결권과 배당권도 이전돼 자본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계약 기간 중 주가가 하락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산 가치가 800억원으로 떨어지면 기업은 차액 200억원을 증권사에 정산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는다. 재매입 의무나 손실 보전 약정까지 포함돼 있다면, 경제적 실질은 주식을 담보로 한 차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PRS로 유입된 자금을 자본이 아닌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논란이 잇따르자 한국회계기준원이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IFRIC)에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올 상반기 중 IFRS 해석위원회 판단을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위원회가 PRS를 자본이 아닌 부채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면 국내 기업이 PRS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매우 까다로울 전망이다.

부채성 자본 경계령 확산

SK이노베이션 12조원 끌어 써

사정이 이렇자 부채성 자본을 적극 활용해온 기업을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고개를 든다. 대표적인 곳이 SK그룹이다.

한국신용평가는 SK그룹 주요 계열사 부채성 자본조달 규모를 약 18조원으로 추산했다. 핵심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의 부채성 자본 조달 규모만 12조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 부채성 자본은 ▲PRS 3조8000억원 ▲상환전환우선주 3조1000억원 ▲전환우선주 3조원 ▲신종자본증권 1조9000억원 등이다.

지난해 7월 SK이노베이션 2조원 유상증자와 SKIET 3000억원 유상증자에는 주가 변동에 따라 수익을 정산하는 PRS 조건이 붙어 증자임에도 신주 인수자에게 사실상 ‘프리미엄(수수료)’이 지급되는 구조다. SK온 2조원 규모 유상증자 역시 PRS 계약이 병행됐다. 2028년 7월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거나 기업가치가 하락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이 SK온 지분을 다시 되사야 하는 정산 의무를 떠안았다.

시장에서는 이마트 계열사 SSG닷컴도 실질적으로는 부채성 자본 부담을 여전히 안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SSG닷컴은 재무적투자자(FI) 교체로 약 1조1500억원 규모 자본을 유치했다. 하지만, 일정 기간 후 수익을 정산하거나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 탓에 ‘경제적 실질은 3년 만기 금융권 대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유통 업종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에게 목표 수익률을 보장하거나 기업가치 변동에 따라 손익을 조정하는 방식은 주가 연동 정산이 이뤄지는 PRS와 유사하다”라며 “만기 시점에 현금 유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외에도 여러 기업이 PRS로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해 롯데케미칼(6500억원), 한화솔루션(5000억원), 효성화학(3965억원), 에코프로(8000억원), LG화학(2조원) 등이 줄줄이 PRS로 자금을 조달했다.

문제는 PRS 등 부채성 자본 논란에 휩싸인 기업이 속한 업종 대부분이 석유화학·유통·2차전지 등 구조조정 압력이 누적된 산업이라는 점이다.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 등이 겹쳐 본업 현금흐름이 크게 둔화된 상황에서 부채성 자본은 자칫 부메랑으로 돌변할 우려가 내포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형식보다 경제적 실질을 우선시하는 규제당국 기조 탓에 부채성 자본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포드와 합작법인 구조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로 지난해 연간 세전손실 5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부채성 자본 차환 여건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익잉여금이 잠식되면서 자기자본을 약화시키고 부채비율·차입금 의존도 지표를 동시에 악화시킨다. 이 탓에 향후 차환 과정에서 ▲정산 조건 강화 ▲프리미엄(수수료) 확대 등으로 부채성 자본에 첨부될 ‘비용청구서’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무늬만 자본’ AT1도 시험대

신종자본증권 찍어온 금융권 촉각

국내 금융권도 ‘무늬만 자본’으로 건전성을 보완해온 관행에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완자본(AT1·Additional Tier 1)의 구조적 문제를 포함해 존치 여부까지 검토하는 제도 개편 논의에 착수해서다.

AT1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젤Ⅲ 체계에서 도입됐다. 위기 시 상각되거나 주식으로 전환돼 보통주와 함께 손실을 떠안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발행사 조기상환 관행과 투자자 보호 논란, 위기 시 손실 분담 순서를 둘러싼 불확실성 확대로 자본 인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가열됐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위기 당시 AT1 채권이 주주보다 먼저 전액 상각된 사례가 이런 논란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다.

ECB는 지난 15년간 은행이 대규모로 발행해온 하이브리드 채권이 자본의 질을 왜곡할 수 있다고 보고 단계적 축소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AT1은 국내에서 ‘신종자본증권’으로 불리며 금융사 자본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해왔다. 만기 없는 채권이라는 형식과 달리, 콜옵션을 통한 사실상 중도상환 관행이 고착돼 부채성 자본이라는 눈총을 받아왔다.

유럽발 규제 변화는 국내 금융권에도 포괄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은 바젤Ⅲ 도입 이후 약 10년간 30조원을 웃도는 AT1을 발행해왔다. 향후 AT1 발행에 제동이 걸릴 경우 자본 조달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증자나 배당 축소 등으로 주주환원 정책에도 변화가 일 수 있다.

김가영 나이스신용평가 평가정책본부 평가기준실장은 “현행 공시 체계에서는 PRS 같은 부채성 자본에 대한 정보 공시가 충분하지 않아 실제 현금 유출 시기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라며 “신용 위험과 직결되는 주요 정보이므로 공시 정보 강화 및 기준 일관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6호 (2026.02.04~0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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