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뉴 웨이브’…‘머니 무브’ 자산 시장 ‘주인공’ 바뀐다
한국 증시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었다.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 100포인트를 기준으로 출발한 이후 46년 만에 5000선을 돌파했다. 4000에서 5000까지는 3개월도 걸리지 않을 만큼 상승 속도가 가팔랐다. ▲산업화와 제도 정비 ▲외국인 투자 개방 ▲구조조정과 고(高)ROE(자기자본이익률) 중심 투자 확산 ▲반도체·IT·BBIG 등 시대별 주도 산업 교체를 거치며 굴곡진 여정을 이어온 결과다.
이번 랠리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제도 변화와 기업 자본 구조 개선, 새로운 투자 서사가 맞물린 결과로 평가된다. 배당소득에 대한 세제 개편과 자사주 소각 확대는 기업의 현금 유보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배당 성향과 ROE를 높여 기업가치 체계 전반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반도체 ‘나 홀로 독주’에 따른 이익 쏠림 ▲개인 투자자의 낮은 체감 수익 ▲글로벌 금리 상승과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대외 지정학 불확실성 등은 향후 코스피 조정 가능성을 키울 변수로 지목된다.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 100포인트를 기준으로 출발한 이후 5000 돌파까지 46년의 시간이 걸렸다. 1989년 3월 처음 1000을 넘어선 데 이어 2007년 7월 2000에 도달하기까지 약 18년 4개월이 소요됐다. 이후 2021년 1월 3000을 기록하기까지 13년 6개월이 걸렸고, 다시 4년 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4000을 돌파했다. 4000선에서 5000선까지 상승은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향후 전망을 둘러싼 시각은 엇갈린다. 국내 증시가 여전히 글로벌 대비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반도체 중심 쏠림에 따른 과열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다. 상승세가 지속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속도 조절 필요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환율 고공행진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굴곡진 여정 딛고 상승 토대 마련
코스피가 ‘꿈의 지수’로 불렸던 ‘오천피’ 시대를 열었다. ‘꿈의 지수’가 현실이 되기까지 한국 증시는 굴곡진 여정을 거듭했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출범 당시 12개 상장사, 연간 거래대금 수억원 규모로 출발한 시장은 산업화·제도 정비·기업공개 확산을 거치며 외형을 키워왔다.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처음 공표됐다. 이 지수는 1980년 1월 4일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산출됐다.
코스피 지수 산출이 시작된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제도 정비와 시장 인프라 구축이 중심이 된 시기로 평가된다. 1986년부터는 3저 호황에 따른 수출 확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경제가 고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주식 시장은 본격적인 상승세를 탔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는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하며 장기 상승 토대를 다졌다.
이후 1992년 외국인 직접투자가 허용되면서 한국 증시는 또 한 번 전기(轉機)를 맞았다. 정부는 1992년 1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를 부분 허용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자들이 주목하지 않던 ‘저PER’ 종목을 집중 매수했다. 1992년 초 PER 2배에 불과했던 태광산업은 외국인 집중 매수로 1992년 상반기에만 168% 올랐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기업 부실과 금융 시스템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덮쳐 코스피는 급락했다. 이후 2000년 초반까지 구조조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거치며 체질 개선을 도모했단 평가다. 2000년대 초반부턴 ‘고(高)ROE’ 투자 서사가 코스피를 확 바꿔놨다. 이는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 결과로 풀이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이 부채를 줄이고 이익을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이익률 높은 기업이 주도주’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부채비율이 낮고 ROE가 높은 기업을 쓸어 담았다. 시차를 두고 코스피는 2003~2007년 사이 두 배 가까이 퀀텀점프하며 2000선을 뚫었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는 굴곡진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2000년 초에는 IT 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되며 버블이 형성됐다. 실적과 괴리된 기업가치에 대한 부담으로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피도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2002년엔 카드 사태로 가계 부채 급증과 금융 부실이 확산돼 지수는 장기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이후 2005~2007년에는 중국 고성장과 글로벌 경기 확장 속에서 조선·철강·기계 등 전통 제조업이 두각을 보이며 재차 상승세를 탔다.
코스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 빠른 정책 대응과 유동성 공급으로 다시 랠리를 이어갔다. 2010~2011년에는 자동차·화학·정유 업종 강세로 ‘차화정’ 랠리가 증시를 달궜다. 이후 저성장 국면 속 박스권을 거쳐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2020년 코로나 이후 유동성 장세 ▲2021년 ‘BBIG’(2차전지·바이오·인터넷·게임) 강세로 코스피는 사상 처음 3000선을 돌파했다.
부동산 → 증시로 머니 무브
자산 시장 구조 변화 기대
이번 랠리도 ▲제도 변화 ▲기업 자본 구조 개선 ▲새 서사 구조 형성 등 삼박자가 맞물렸단 평가다.
주목받는 제도 변화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로 대표되는 세제 개편이다. 이는 1993년 금융실명제 이후 불로소득으로 간주되던 배당소득이 자산 형성 수단으로 재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그동안 한국 가계는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적었던 부동산에 자금을 집중해왔다. 앞으론 부동산 세제 우위가 약해지고 고배당주로 자금이 상당 부분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장기적으로 한국 자산 시장 구조를 바꾸는 단초가 될 것”이라 봤다.
기업 자본 구조 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 상장사들은 산업화 시기 저금리·수출 드라이브 정책 아래 이익을 배당보다 내부에 유보해 설비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했다. 이 관성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상당 부분 유지됐다. 2000년대 이후 순이익은 늘었지만 성장 둔화로 투자 수요가 줄며 잉여현금흐름이 잔뜩 쌓였다. 그럼에도 대주주가 배당을 늘릴 유인은 제한적이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으로 이런 자본 배분 구조도 변화를 겪는다. 분리과세가 정착되면 기업의 현금 유보율은 낮아지고 배당 성향이 높아질 수 있다. 자사주 소각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주가수익비율(PER·시가총액÷순이익)을 낮추고 주가순자산비율(PBR·시가총액÷순자산)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업가치 체계 전반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반도체 ‘나 홀로 독주’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반도체 영업이익 비중이 전체의 40%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다수 기업의 이익 증가율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개인 투자자 체감 수익이 크지 않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발 대외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국채 금리 상승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등은 국내 증시에 조정의 빌미를 제공할 악재로 지목된다.
“퇴직연금 등 생산적 금융 구조 전환 박차”

A. 코스피 5000 돌파는 단순한 지수 상승이 아니다. 한국 자본 시장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분명한 신호다. 정책적으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한 강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상장 종목의 57%가 오히려 하락하며 종목 간 양극화가 심화했다. 앞으로는 지수 중심의 성과를 넘어 경제 체질 전반을 개선해 전 종목으로 성과가 확산하는 게 과제다.
Q. 3차 상법 개정안이 주식 시장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A. 자사주는 소각을 통해 주당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사주는 대주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됐다. 개정안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하고 임직원 보상이나 정관에 명시된 경영상 목적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보유를 허용한다. 이는 자사주 제도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고 자본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Q. 환율 리스크와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대비책은.
A. 최근 환율 변동성 확대는 외화 부족보다는 해외투자 확대로 인한 외환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시장 복귀 계좌에 대한 세제 지원 등 외화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차질 없이 시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연기금이 직접 외환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통화 스와프, 해외 채권 발행 등 외화 조달 경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Q. ‘코스닥 3000’ 달성을 위한 정책 방안은.
A. 코스닥은 벤처기업 육성의 핵심 플랫폼이다. 모험자본이 기술 기업에 원활히 공급돼야 한다. 코스닥 시장 구조적 문제인 ‘상장-퇴출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 코스닥 상장기업은 1820개로 코스피(841개)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한계기업 비중은 코스닥이 24%로 코스피(11%)보다 훨씬 높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퇴출 요건을 합리적으로 강화하고 퇴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Q. 지속 가능한 ‘코스피 5000 시대’ 조건은.
A. 시중 여유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첨단 기술 개발에 투자되는 생산적 금융 구조 전환이 핵심이다. 현재 퇴직연금 자산의 82.6%가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를 기금화해 민간 전문운용사가 적극적으로 자본 시장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주주환원 강화, 불공정거래 근절 등 정책이 자본 시장 신뢰를 높이고 코스피 5000 시대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시대로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조동현 기자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6호 (2026.02.04~0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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