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침입한 닌자, 일본 '병맛' 코미디의 한국 상륙

김성호 2026. 2. 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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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267] <언더닌자>

김성호 평론가

중이병 한창이던 어린 시절, 가까이 지내던 친구 중에 장래희망이 '닌자'라던 괴짜녀석이 하나 있었다. 닌자라니. 말 그대로 일본 중세 역사 속에 등장하는 비밀 첩보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것. 만화 <나루토>를 비롯해 닌자를 소재삼은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얻던 때라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닌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녀석이 가까이 있다는 건 여간 인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21세기에도 닌자집단이 일본에 있고, 그 문호가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다는 둥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고는 했었다. 덕분에 닌자가 받는 혹독한 수련부터 그 역사와 실제 닌자들의 역량 등에 대한 잡다한 정보가 이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건 친구녀석이 전해온 사실이 상당부분 실제 이야기였단 사실이다. 닌자들이 익혔던 비기를 전승한다 주장하는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을 후원하는 지자체 또한 존재하며, 심지어는 공식적인 학문으로 닌자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대학교와 학자까지 있는 것이다.

닌자 내세운 일본 코미디, 한국 상륙
▲ 언더닌자 스틸컷
ⓒ 메가박스
일본은 국가적, 지역적, 문화적 차원에서 닌자 문화를 진흥한다. 실재했던 것과 상상력이 빚은 것을 구분하고, 그 모두를 필요한 만큼 유용한 방식으로 보호하고 발전시킨다. 닌자도는 인내와 실용주의를 반영한 정신적 기풍으로 자리하고, 닌자의 이미지는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세련된 브랜드로 이어진다. 이가, 코카 같은 닌자 전통이 있는 지역은 그 사실을 앞세워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설과 영화 등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콘텐츠와의 결합은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닌자라는 소재가 문화로 자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선순환의 모범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2월 개봉하는 일본영화 <언더닌자>는 현대사회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닌자집단과 그를 위협하는 반 닌자조직이 있다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소위 3대 닌자집단이라 불렸던 이가, 코카, 후마 등의 옛 닌자집단이 국가 승인을 받은 NIN(닌)이란 공식조직으로 통합된 지 한참, 모든 닌자는 닌으로부터 임무를 받고 생활을 통제받는다. 닌 소속 닌자들에게 자유란 없다. 도망하면 끝없는 추적과 처단만이 존재할 뿐. 하급에서 중급, 다시 몇 없다는 상급 닌자로의 상승은 비좁은 길. 대부분은 그림자 삶 속에서 나이를 먹다 죽게 마련이다.

닌자들은 그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저마다 평범한 직업을 갖고 위장한 삶을 살아간다.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여성 닌자가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고, 또 누구는 출판사 편집자로, 그밖에도 백수며 오타쿠 같은 이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일상은 어디까지나 위장을 위한 술책일 뿐, 문자메시지로 들어오는 임무 명령엔 만사를 내던지고 달려가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현행법을 조금쯤 위배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닌자가 학교가다
▲ 언더닌자 스틸컷
ⓒ 메가박스
수백 년을 이어온 닌자들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존재가 있다. 바로 UN(언더닌자)이라 불리는 집단이다. 모종의 이유로 닌자들을 사냥하는 언더닌자들의 행보에 닌은 잔뜩 긴장한다. 언더닌자가 출몰하는 장소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닌자들을 파견해 맞서는 일이 지속된다. 요컨대 닌과 언더닌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감독 후쿠다 유이치는 한국에선 몰라도 일본에선 제법 명성을 가진 이다.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작가이자 PD로도 활약하는 다재다능한 인물로, 소위 '병맛'이라 불리는 컬트적 작품에서 특장점을 드러내는 연출자다. 드라마보다 콩트에 가깝다는 그의 이야기 방식은 <언더닌자>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통상적 영화에서 도저히 등장하지 않을 듯한 황당한 연출이 지속되며 배우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그대로 담길 정도. 소위 캠프(Camp)라 불리는 예술적 사조의 영화적 갈래로써 병맛영화가 인정받는 추세란 점을 고려하면 <언더닌자>를 영화의 캠프적 사례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언더닌자> 속 닌과 언더닌자의 대립은 한 고등학교 건물을 무대로 펼쳐진다. 닌 소속 하급닌자 쿠로(야마자키 켄토 분)에게 코단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잠입해 언더닌자의 계획을 저지하란 명령이 떨어지면서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닌자 쿠로에게 펼쳐지는 일상과 그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언더닌자의 불온함이 영화를 지탱하는 두 줄기 기둥이 된다.

학교폭력, 몽글몽글 피어나는 풋풋한 연애기류, 시험 스트레스까지. 흔히 고교생활에 있을 법한 여러 요소들이 쿠로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것. 지난 시대 한국에서도 여럿 있었던 학교잠입 코미디, 이를테면 <두사부일체>, <잠복근무> 류의 작품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런 일일 테다.

B급영화의 맛과 멋
▲ 언더닌자 스틸컷
ⓒ 메가박스
닌자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집단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작품 답게 그 소재를 낭비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닌으로부터 벗어나 은둔해 살아가는 전대의 고수 닌자가 있고, 마치 현대 첩보물과 같이 신분을 숨긴 이들끼리 벌이는 암투 또한 있는 것이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려는 주인공이 차츰 주변인과 관계를 갖고 애정을 갖게 되며 어려움이 증폭된단 건 예고된 설정에 가깝다. 마침내 두 갈래 이야기가 좁은 길목에서 만날 때, 닌과 언더닌자 사이의 암투 또한 표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병맛 B급영화의 맛과 멋이 터져 나오는 건 역시 후반부 대결을 통해서다. 혹자는 만족하고 다른 혹자는 실망할 게 분명한 두 집단의 대결은 <언더닌자>가 예비한 클라이맥스다. 대결전의 장이 코단고등학교를 무대로 펼쳐지는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던 언더닌자의 실제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통상적인 학교잠입 설정 영화들, 또 닌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 심지어 첩보물의 흔한 규격을 <언더닌자>는 황당한 방식으로 벗어난다. 거진 SF장르물에 가까이 다가서는 놀라운 전환은 후쿠다 유이치 특유의 파격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소위 후쿠다구미라 불리우는 후쿠다 유이치의 배우집단이 얼마쯤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막상 찾으려 하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면적 병맛영화의 진수를 한국 관객에게 실감케 한다.

한국적 소재의 부진을 아쉬워하며

또 한 가지, 작품을 보며 아쉬움을 갖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근 10여 년 쇠락이 선명한 한국영화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영화의 대비 가운데, 그저 영화계의 역량을 넘어선 사회적 자세를 느끼게 되는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닌자문화가 그대로 하나의 작품에 무리 없이 반영되는 모습에서 전 세계로 통하는 일본 고유의 문화적 자산을 발견한다. 이에 비견할 만한 한국만의 소재가 있는지를, 또 그러한 소재를 우리의 문화와 예술이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절로 민망해질 밖에 없다.

반면 일본에선 닌자나 음양사, 각종 공포영화의 소재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장르화, 시리즈화하는 시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상당부분은 성공의 사례를 써나간다. 그는 이와 같은 고유의 소재와 설정을 즐기는 팬들의 존재 덕분이고, 또 제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시민사회, 대중의 품격 덕분이다. 과연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너그러움이 있는가. 신토불이의 의무감 이전에, 고유의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절실한 한국의 오늘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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