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강박… 힘들 땐 ‘이렇게’

기고자/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장) 2026. 2. 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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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이정표]
세균이 무서워서 손 씻기를 반복하는 등의 강박 행동은 순간의 불안은 줄이지만 점점 증상이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안을 느끼더라도 강박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움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아침에 집을 나서려는 A씨.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결국 문손잡이를 열 번도 넘게 잡아당기고 나서야 집을 나선다.

B씨는 시장에서 생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고등어, 갈치, 오징어를 만진다. 일을 마칠 때 즈음이면 손과 옷에 비린내가 배는 게 당연하다. 집에 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갑자기 생각이 스친다.

“아직도 생선 냄새가 나면 어쩌지? 나만 냄새를 못 맡을 수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나를 역겨워할지도 몰라.”

계속되는 불안감에 코에 자기 팔을 가져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한 시간도 넘게 다시 한다.

위와 같은 강박증은 드물지 않다. 인구의 2~3%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문제는 이 증상이 사람을 극도로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확인하느라 준비시간이 몇 배로 늘어나고 반복 행동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이걸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 불안에 시달린다.

학업과 직장, 대인관계에도 지장을 준다. 강박증은 본인만 괴로운 병이 아니다. 주변 사람도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한 어머니는 성인 아들의 강박증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질문에 대답해주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짜증이 나서 대답을 피했더니 아들의 불안은 더 커졌고 확인은 오히려 잦아졌다.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시간 넘게 샤워를 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욕실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강박증은 이렇게 환자와 가족 모두를 소진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강박증인 사람은 실수가 적고 세밀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꼼꼼하다. 외과의사, 회계사, 연구자, 개발자 중에는 강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박증은 왜 생길까? 생물학적으로는 세로토닌 신경전달 이상과 기저핵–전전두엽 과활성과  같은 뇌회로 이상을 들 수 있다. 심리학적 원인으로 과도한 책임감과 통제 욕구를 들 수 있다. 불확실성과 불안을 과도하게 위협으로 해석하는 인지적 편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쓸데없는 거라는 걸 잘 아는데도 안 하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강박증의 핵심은 원치 않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의식을 치르듯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주요 증상으로 씻기, 확인하기, 정렬하기, 저장하기 등이 있다. 강박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예를 들어 “내 손에 세균이 묻어서 가족을 병들게 할지도 몰라.”, “가스를 안 잠근 것 같아. 집이 폭발할지도 몰라”, “내가 이 뾰족한 걸로 갑자기 누군가를 해칠까 봐 두려워.”,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죄를 지은 것 같아”라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뇌는 즉시 이렇게 반응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해야 해!”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강박행동이다. 세균이 무서워서 손 씻기를 반복하고 가스가 새지 않을까 불안해서 밸브를 열 번도 넘게 확인한다. 누군가를 해칠까봐 주변의 칼을 다 치우고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 또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반복한다. 강박행동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불안하고 견딜 수 없어서’하게 되는 것이다. 강박증 환자들이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짓을 저지를까봐 두렵다고 호소하지만 실제로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도덕적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강박증 환자의 뇌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걸 이용해서 공포를 만드는 것뿐이다.

왜 확인하고 씻기를 반복하면 잠시 편해질까? 강박 행동을 하면 불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잠시뿐이다. 그 다음엔 뇌가 더 강한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면서 점점 증상이 심해지게 된다. 강박증의 치료를 위해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하여 강박 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이 도움 된다. 불안을 느껴도 의식하지 않고 10분이고 20분이고 참다 보면 뇌가 “강박 행동을 안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구나”를 학습하게 된다. 약물 치료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약물이 뇌의 불안 신호를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

강박증은 정신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책임감 있고 신중하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강박은 삶을 가두는 족쇄가 될 수도 있지만 치료와 훈련을 통해 조절하면 집중력과 완성도를 높이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강박증으로 고통 받지만 그 에너지를 삶과 일에 몰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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