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오타쿠라면 궁금할 맛집의 비결, 40년 만에 공개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오타'란 말이 있다. '라멘 오타쿠'의 줄임말이다.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수많은 오타쿠 가운데서 '라멘'에 빠져든 오타쿠를 따로 떼어 부를 만큼 그 수가 많다. 라멘을 분류하고 완성도를 논하는 체계까지 구체화되어 있을 만큼 학술적 깊이 또한 갖췄다. 영향력 또한 상당해서 새로 생기는 라멘집이라면 라오타들에게 검증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라오타의 인정받은 라멘집은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가게는 실력 향상의 자극을 받는다. 라오타가 라멘집 수준 향상에 미치는 선순환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그 뿌리를 확실히 내린 라오타의 존재는 한국 라멘집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졌다. 현지서 맛을 배우고 돌아와 차린 실력 있는 가게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가게가 독자적으로 육수를 끓이고 면을 뽑는 등 일본 현지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맛의 품격을 자랑하는 오늘이다. 덕분일까. 일본에서도 이름난 가게며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한국을 찾아 맛을 보는 일도 이제는 드물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한국 라오타들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단 걸 아는 이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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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뽀뽀 스틸컷 |
| ⓒ 디스테이션 |
<담뽀뽀>는 당대 일본영화의 거장이라고 불린 이타미 주조의 작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의 시대가 저물고, 다시 오늘의 번영이 있기 이전, 1980년대 일본영화계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인물이다. 그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세계가 일본 대표 음식 중 하나라 할 만한 라멘과 만나 빚은 <담뽀뽀>가 40년을 건너 한국 영화계의 오늘과 관계 맺는 방식이 가히 컬트적이다.
<담뽀뽀>는 지난해 12월 개봉 이후 올해 초까지 한국서 무려 6000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 이색적 기록을 거뒀다. 이번이 첫 개봉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엔 일본과의 대중문화개방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이후에도 한동안 개봉 기회를 잡지 못하던 작품이 최근 개봉에 이른 데는 몇 가지 요소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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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뽀뽀 스틸컷 |
| ⓒ 디스테이션 |
<담뽀뽀>는 이타미 주조의 스타일이 담뿍 묻어 있는 독특한 코미디다. 트럭 운전사 고로(야마자키 츠토무 분)와 그 조수 건(야쿠쇼 코지 분)이 오가던 중 알게 된 어느 라멘집 여주인 담뽀뽀(미야모토 노부코 분)의 요청으로 이 라멘집의 맛집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다. 길 가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쯤으로 폄훼될 수 있지만, 그런 음식조차도 나름의 철학과 노력 없이는 훌륭해질 수 없다는 것. 그 자명한 진실이 이 영화 <담뽀뽀>가 의지하는 것이다.
담뽀뽀는 남편이 죽은 뒤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이다. 하나 있는 아들을 위해, 또 그 자신을 위하여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정신력이 그녀가 악착같이 라멘집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불행히도 탁월함을 갖기 위해선 의지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녀가 저보다 훨씬 나은 고로에게 머리 숙이며 스승이 되어 달라 청하는 간절함, 그와 같은 자세가 그래서 의미 있다.
고로는 그녀의 부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제 조수와 함께 틈날 때마다 가게를 찾아 온갖 수련에 나선다. 시작은 손님을 맞이하고 그 취향이며 특징을 판단하는 것부터다. 배가 많이 고픈지, 당장 신경 쓸 것은 무엇이 있는지, 음식에는 만족하는지 등등을 가게 주인은 신경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중요한 건 역시 음식 자체겠다. 육수를 내는 법, 면을 삶는 법 등등 온갖 비기를 익히기 위해 고로와 담뽀뽀 등은 함께 주변의 맛 좀 낸다는 라멘집을 탐방해 그 비결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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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뽀뽀 스틸컷 |
| ⓒ 디스테이션 |
뜬금없이 삽입되는 장면 중에선 주된 줄기보다도 관객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여럿이다. 이 영화가 라오타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되도록 한 장면도 그렇다. 노인과 그 제자가 라멘집에서 한 그릇 라멘을 맛보는 길지 않은 장면이다.
노인은 '라멘을 어떻게 먹어야 하느냐'를 묻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기 전에 먼저 바라보라"고. 국물과 면을 지긋이 바라보며 음미하는 걸 시작으로, 다음엔 차슈(라멘에 들어가는 얇게 썬 돼지고기)를 집어 국물 안에 담가야 한다고도 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 배가 부름을 기억하고, 또 작게 보이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인식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젓가락으로 면을 살짝 쓸어주는 일이다. 이는 내가 본격적으로 라멘을 맛보겠다는 인사와도 같다. 그다음, 국물을 한 모금 먼저 마셔 전체를 이해한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어딘지 신성하기까지 한 태도다. 차를 마시거나 술을 대할 때만 도(道)가 있는 게 아니다. 요리를 대할 때도 도가 있다. 라멘이라면 마땅히 그런 품격 있는 음식이다.
영화 속엔 어느 가정집의 모습 또한 등장한다. 의료진이 왕진을 온 집에 안주인이 죽어가고 있다. 의사는 급기야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온갖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을 듯한 상황 가운데 남편은 아내에게 "밥을 하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움직이지 않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밥을 하고 상을 차린 뒤 다시 눕는다. 곧장 죽음이 다가온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차린 마지막 식사'라며 "식기 전에 먹으라"고 말한다.
모두가 슬픔 가운데 식사하는 이 괴랄한 에피소드는 여성을 밥하는 기계처럼 대해온 당대 가부장제에 대한 절묘한 풍자로써, 또 놀랄 만큼 충실히 그 역할을 담당해 온 어머니들에 대한 경외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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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뽀뽀 포스터 |
| ⓒ 디스테이션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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