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때문에 간 만화박물관에서 나만 울고 나온 이유

유수영 2026. 2. 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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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본 1909년부터 현재까지의 만화 변천사

[유수영 기자]

1월 25일 일요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집에만 있자니 심심하다고 하는 통에 가볍게 다녀올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목적지가 정해졌다.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이다. 나 역시 평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좋아했기에 덩달아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삼산체육관역에 내리자, 박물관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곳곳에 보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 가는 길이라 혹시라도 헤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표지판을 따라가니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길목마다 한국 만화 산업의 성장과 함께해 온 만화 캐릭터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설지 않은 캐릭터들 덕분에 아이들 역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국만화박물관
ⓒ 유수영
둘리 조형물이 보이자 아이들은 동시에 손가락을 뻗었다.

"저거 알아!"

세대는 달라도 만화 캐릭터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매표소가 보였다. 부천 시민임을 인증하면 20세 이하 시민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고, 성인은 할인이 적용되어 단돈 2500원만 결제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고물가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 이 정도 비용으로 박물관 전시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갑고 고마웠다.

만화를 따라, 시간의 입구로

전시는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1층에서는 현재의 만화 산업을 다루고 있었다. 웹툰 전성시대라는 말이 실감 나듯, 익숙한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만화가들의 아이디어 스케치 노트와 스토리보드, 메모를 통해 한 편의 웹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아르몽 작가의 <정순애식당>, 영화로도 제작된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관련 전시는 유독 반가웠다.
▲ 만화가들의 펜 110여 점에 달하는 만화가들의 실제 사용 펜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 유수영
2층에 올라서자 다시 한 번 둘리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았다. 아이들을 옆에 세워 사진을 찍고 난 뒤, 본격적으로 전시를 둘러봤다. '만화의 시작'을 주제로 한국 근현대 만화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 중 한 곳에서는 역대 만화가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펜 약 110점이 전시돼 있었는데 모두 개인 소장품을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들의 도구를 가까이에서 보는 경험은 꽤나 흥미로웠다.
 신문기사 한 쪽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담당했던 만화들의 모습
ⓒ 유수영
1909년부터 시작된 전시는 일제강점기 만화의 풍자적 성격도 잘 보여줬다. 모던보이, 모던걸을 풍자한 그림들이 신문 한쪽 면을 채우고 있었고,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한국전쟁과 전후 시대상이 만화에 드러나 있었다. 만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온 매체이자 역사서였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그림이라며 유리 진열장 앞에 바짝 다가서고, 안내 문구를 소리 내 읽기도 했다.
 만화방을 재현한 부스
ⓒ 유수영
그렇게 전시를 따라 걷던 중, 한 공간에서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옛날 만화방을 재현한 부스였다. 주인아주머니 조형물과 함께 아폴로, 봉지라면 같은 간식들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내 세대보다 앞선 시절의 풍경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물건들이 섞여 있어 잠시 기억을 더듬게 됐다. 이곳에서는 특히 40대 후반에서 50대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꽤나 긴 시간동안 머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만화책을 빌려놓고 며칠씩 돌려주지 않아 연체금을 냈던 기억도 난다."
"맞아요. 만화책에 낙서가 많았고, 찢어져서 읽지 못하는 페이지도 있었죠."
"만화방에서 라면도 끓여 먹었잖아. 기억해?"
"구공탄불에 끓여 먹던 라면이었죠. 정말 맛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마흔을 훌쩍 넘긴 나 역시 만화방을 수시로 드나들던 세대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꽂힌 만화책 사이를 오가며 보고 싶은 책을 찾던 기억, 누군가 먼저 빌려 간 후 반납하지 않아 괜히 만화방 아주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90년대를 책임졌던 월간 만화잡지들
ⓒ 유수영
 아기공룡둘리를 전시하는 공간
ⓒ 유수영
세대를 아우르는 만화

전시는 196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이어졌다. 만화 '아기 공룡 둘리', '공포의 외인구단', '달려라 하니'가 전시된 공간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이유를 정확히 짚기는 어려웠지만, 코끝이 잠시 붉어지기도 했다.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댕기, 윙크 같은 월간 만화잡지, 그리고 순정만화 전성기를 이끈 작품들이 이어졌다. 천계영 작가의 작품, 얼마 전 타계한 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 앞에서는 청소년 시절의 내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때에는 만화책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소년만화에서는 학교생활과 우정을 배웠고, 순정만화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처음으로 접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복잡함도 만화를 통해 배웠다.
 만화가의 머릿속
ⓒ 유수영
3층에는 '만화가의 머릿속', '만화가의 손'을 주제로 한 대형 조형물이 있었다. 펜마우스를 붙잡고 고뇌에 빠진 만화가의 얼굴은 유난히 지쳐 보였다. 어쩐지 글을 쓰며 모니터 앞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내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자고 있는 거야?"
"글쎄? 만화를 그리다가 잠들었을까?"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꿈 속도 만화처럼 생겼을까?"

조형물 앞에서는 지나가던 가족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이의 질문과 어른의 다정스러운 응답이 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진 아이들 때문에 4층까지 다 보지는 못했지만, 출구로 향하는 길이 아쉽지만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머털도사와 손오공, 카봇 조형물들이 관람객을 배웅하고 있었다.
▲ 만화 <풀하우스> 속의 한 장면을 재현해 놓은 공간 이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포토존을 꾸려 놓았다. 풀하우스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송혜교, 정지훈 출연)
ⓒ 유수영
1909년부터 현재까지의 만화 변천사를 경험하고 나오니 만화는 단순한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캐릭터를 기억했고, 나는 펜과 오래된 기억 앞에서 자꾸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들과 함께였지만, 이 공간은 어쩌면 어른을 위한 박물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떠난 짧은 외출이었지만 그날 박물관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우리는 만화를 보고 나왔고, 각자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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