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 중국 여행,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것

서부원 2026. 2. 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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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에서 만난 중국] 정부 감시가 일상... 안면 인식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8일간 중국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기자말>

[서부원 기자]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기준이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소득(GNI) 등이 첫손에 꼽힌다. 통상적으론 GDP가 5천만 명 이상의 인구 규모에 3만 달러를 넘으면 선진국으로 간주한다. 참고로, 우리가 GDP 3만 달러를 넘긴 해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2014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기준 삼기도 한다. OECD 회원국을 '선진국 클럽'이라고 통칭하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가 지난 1995년 OECD 가입을 자축하며 동네방네 현수막을 내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만 해도 두 해 뒤 외환위기를 불러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부분 경제적인 지표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그러나 최근엔 공적개발원조(ODA)에 적극 참여하는지와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실천 정도 등이 강조되는 추세다. 국가의 대외적 신뢰와 국민의 '삶의 질'은 '빵'만으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의 한복판, 텐푸 광장에 우뚝 선 마오쩌둥의 동상. 이 동상 주위로 행정기관을 비롯해 박물관, 도서관, 과학관 등의 핵심 공공시설이 밀집해 있다.
ⓒ 서부원
중국의 상전벽해, 그 속에서 마주한 이질적 풍경

"지금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G2'인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나요?"

수업 중 아이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혐중 정서가 뿌리 깊은 아이들의 이 말엔 해석이 필요하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선진국으로 대접해선 안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중국이 미국과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느냐는 뉘앙스다.

"설령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훌쩍 넘기고 첨단 과학기술 수준이 미국을 능가한다고 해도, 당분간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지난 8일 동안 쓰촨성 청두에서 만난 중국의 변화상은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도심의 마천루는 서울의 그것을 능가하고, 모든 일상이 모바일화된 모습은 조만간 다가올 우리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청두 도심의 맑은 공기와 청명한 하늘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만 규정해 온 인식도 머지않아 바뀌게 될 것이다.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인재들 다수가 이공 계열을 선택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 실적을 화수분처럼 쏟아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상위권 아이들이 죄다 의·치대로 진학하는 현실과 사뭇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이제 더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말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에 이은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의 유훈으로 알려진 이 글귀는 '자신의 빛을 감추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실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략적 인내'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젠 굳이 자신의 실력을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 기초 제조업부터 첨단 AI 분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을 넘어섰다. 풍부한 자연 자원과 엄청난 국내 시장까지 뒷받침되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괄목상대의 놀라운 변화 속에서도, 중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질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이질적인' 풍경들이 많아서다. 당장 중국계 앱을 설치해야만 여행이 가능한 결제 시스템부터 낯설다. 우리의 결제 앱은 물론, '애플 페이'도 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마치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이다. 나처럼 중국사에 관심이 많거나 발에 치일 만큼 많은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싶다면, 울며 겨자 먹기일지언정 중국의 시스템을 수용하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항의 입국 심사대조차 통과하기가 어렵다.
 두장옌 유적의 이왕묘 정면 담벼락에 큼지막하게 새겨놓은 덩샤오핑의 어록. 두장옌의 대표적인 포토존이기도 하다.
ⓒ 서부원
정부에 의한 감시가 일상인데도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이방인의 눈엔 무척 낯설었다. 공항에서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채취하는 건 약과였다. 어딜 가든 주변엔 CCTV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다. 공공 기관 출입구마다 설치된 안면 인식 카메라에 놀란 건 나 뿐이었다.

여태껏 이번처럼 여권을 자주 꺼내 보였던 여행은 없었다. 공항에서 출입국 신고할 때나 사용하던 여권을 중국에선 스마트폰과 함께 항상 손에 쥐고 다녀야 했다.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을 출입할 때는 물론, 기차를 탈 때조차 매번 여권을 스캐너 위에 올려야만 했다.

실권자 어록 새긴 유적 보며 섬뜩했던 이유

가장 낯설었던 건, 역대 실권자들의 어록을 새겨놓은 기념물이 유적마다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 전 천혜 절경의 금강산에 새겨놓은 '빨간색 글귀'들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는 '경애하는'으로 시작되는 특정인을 향한 노골적인 찬양 문구는 아니더라도, 맥락은 유사했다.

어딜 가나 지도자의 친필 휘호나 사진, 어록 등이 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수만 년의 장구한 역사를 뽐내는 중국에서 마오쩌둥과 그 이후 지도자들의 기념물이 절대다수라는 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의 역사를 그 이전과 구분 지으려는 듯했다. 지금도 유적 안내판엔 중화인민공화국을 '신중국'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흔하다.

오래전 티베트에 철길이 놓이기 전 거얼무에서 소형 SUV를 빌려 타고 라싸로 가는 길에 만난 큼지막한 빗돌이 떠올랐다. 칭하이성과 티베트 자치구의 경계인 해발 5321m의 탕구라산 고갯길에서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맨 뒤의 장쩌민(江澤民)이라는 세 글자는 또렷했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형형색색의 타르초를 압도하는 당시 권력자의 육중한 기념물에 순간 긴장감이 일었다. 당시는 중국 비자만으론 티베트에 들어갈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칼바람과 고산증에 시달리던 터라 여정의 기억조차 희미한데도, 휘갈겨 쓴 그의 이름 석 자는 강렬했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청두의 두보 초당을 방문했을 때 남긴 뒷모습 사진. 워낙 유명한 사진이어서, 초당을 찾은 관광객들마다 이를 본뜬 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 서부원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가 말년에 4년 동안 머문 두보 초당을 대표하는 건, 초당(草堂)이라고 적힌 담벼락을 응시하고 선 마오쩌둥의 뒷모습이다. 워낙 유명한 사진이어서, 관광객들은 그곳에 가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고 한다. 현재는 공사 중이어서 사진만 걸어두었다.

기원전 256년, 진나라 때 건설된 두장옌 유적엔 덩샤오핑의 유물이 한가운데에 있다. 두장옌의 두 갈래 물길이 잡힐 듯 가까운 이왕묘(二王廟)의 맞은편 담벼락엔 '조복만대(造福万代)'라는 그의 친필이 큼지막하다. 선조들이 세운 두장옌 덕에 후손들이 복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현 시진핑 주석의 자취는 도심의 광장과 학교의 교문, 공공장소의 게시판 등 고개만 돌리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의 유물이 동상을 비롯한 기념물 위주라면, 5세대 지도자인 시진핑은 그의 사상과 비전을 담은 어록 중심인 데다 그 수도 확연히 많다.

심지어 공공 도서관 입구엔 그의 이름을 내건 책들이 베스트셀러인 양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다룬 내용부터 집권 후 업적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시진핑 사상'이라는 부제를 단 책도 있어 좀 섬뜩하기도 했다.
 청두 도서관 입구에 진열된 시진핑 관련 도서들. 열람실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하도록 되어 있다.
ⓒ 서부원
지금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지배가 당연시되고, 십수 년째 최강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시진핑에 대한 비판이 불허되는 사회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는 그의 '신시대 특색 사회주의'가 유일 사상으로 등극했다.

나와 같은 이방인들은 어딜 가나 보이는 역대 실권자들의 기념물에서 당장 '우상화'와 '신격화'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국민의 전폭적 신뢰 덕분인지, 아니면 냉혹한 권력에 주눅이 든 탓인지 알 길은 없다. 분명한 건, 제도든 권력이든 사상이든 한 가지만 용인 되는 사회는 위험할 뿐더러 결코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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