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맞설 역대급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형욱 2026. 2. 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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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몬테크리스토 백작>

[김형욱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출간된 알렉산드르 뒤마의 프랑스 대하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현대적인 '복수극'의 전형을 만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무척 재밌는 작품이기도 해 후대에 족히 수십 편에 이를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는데, 흔히 떠올리는 작품은 2002년 작 〈몬테 크리스토〉다. 상당한 수작이지만, 원작을 대폭 각색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2024년, 프랑스는 원작의 결을 충실히 살린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선보였다. 당대 최고 수준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흥행에서도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비평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특히 각본과 연기, 미장센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피에르 니네이가 연기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에게는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영화는 공개 2년여 만에 국내에 상륙했다.

대략적인 줄거리와 메시지가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 여러 차례 재탄생한 이후에도 다시금 칭송받고 관객을 불러 모으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법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프랑스가 내놓은 최고의 대작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배신으로 시작된 나락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 장면.
ⓒ 찬란
1815년, 지중해 한복판에서 선원에 불과한 에드몽 단테스는 선장 당글라르의 명령을 어기고 침몰한 배에서 여인 앙젤을 구한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고, 그 편지는 당글라르의 손에 넘어간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뒤 당글라르는 선주 모렐에게 단테스의 행동을 고발하지만, 모렐은 오히려 그를 내쫓고 단테스를 선장으로 임명한다.

단테스는 곧 집으로 돌아가 비밀 연인 메르세데스와 신분을 초월한 결혼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자 메르세데스의 사촌인 페르낭 중위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축복 속에 치러져야 할 결혼식 당일, 단테스는 느닷없이 검사 대리 제라르에게 끌려간다. 성경책에서 나폴레옹의 편지가 발견됐다는 혐의였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끝내 감옥으로 보내진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당글라르의 사주와 페르낭의 묵인, 카드루스의 가담이 있었다. 제라르가 이를 실행에 옮긴다. 사실 앙젤은 제라르의 친동생이었는데, 단테스를 구하기 위해 제라르를 협박하자 그는 동생을 납치해 사창가에 팔아버린다. 한편 단테스는 이프 요새에 갇혀 지옥 같은 나날을 견딘다.

수감 4년 후, 그는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생존자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 온갖 지식을 전수받고, 몬테크리스토 섬에 숨겨진 막대한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다시 10년이 흐른 뒤, 탈출을 앞두고 파리아는 죽고 단테스만이 요새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자신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 칭하며 치밀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당글라르, 제라르, 페르낭, 카드루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거대한 서사를 압축하는 미학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 장면.
ⓒ 찬란
2024년 작 프랑스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광대하면서도 섬세하고, 폭발적이면서도 우아하다. 얼핏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인 작품이다. 이런 상반된 요소들을 함께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재미는 배가된다.

대서사시 원작을 어떻게 압축할 것인가는 제작진에 가장 큰 난관이었을 터다. 이 영화는 과감하면서도 절제된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광활한 자연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물을 섬세하게 구축한다. 이를테면 단테스가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치욕의 시간을 견디고, 본격적으로 복수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에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을 할애한다.

사실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복수극이지만, 정서적으로 가장 깊이 몰입하게 되는 지점은 전반부다. 급격한 격변의 시간을 통과하는 단테스의 모습에서 오히려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영화 곳곳에는 복선이 깔려 있는데, '복수보다 생명', '타인을 향한 복수보다 자신을 향한 애정'이라는 메시지가 그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반부의 복수극은 폭발적이며 빠르다.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처럼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장면의 연속이라기보다는, 단테스의 행동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오랜 시간 숙고하고 연마하며 시뮬레이션해 온 복수이기에, 실행에 있어 주저함이 없다.

동시에 영화는 우아하고 고즈넉하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분위기,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19세기 프랑스의 정서, 그리고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왔음에도 삶과 인간을 대하는 데서 정점에 이른 단테스의 태도가 어우러져 연기 톤과 미장센, 분위기 전반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주지했듯 주요 배경은 19세기 초중반의 프랑스다. 나폴레옹 1세의 득세와 몰락, 왕정복고와 혁명, 독재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였다. 단테스는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이를 헤쳐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험난하고도 처절한 과정이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다.

영화는 원작을 탁월하게 다듬어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원작의 팬에게도, 원작을 전혀 모르는 관객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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