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희와 주호진이 보여준 진정한 소통의 방식

안상우 2026. 2. 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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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넷플릭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가 남긴 침묵

[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영화, 방송, 책등 작품 속 한 장면을 통해, 오늘의 사회적 장면과 감정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기자말>

[안상우 기자]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을 보면, 말은 넘쳐나는데 이해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다.

계엄을 둘러싼 재판에서는 책임의 실체보다 해명의 표현이 먼저 쌓여가고, 쿠팡 사태에서는 사건의 본질보다 사과문의 문장과 어휘가 먼저 도마에 오른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둘러싼 외교적 긴장 역시 요구의 내용보다, 전달 방식과 맥락이 갈등을 키웠다.

이때 문제는 발언의 정당성이나 책임의 경중이 아니라, 우리가 말의 내용보다 태도와 형식부터 판단하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말은 넘쳐나지만, 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끝까지 들여다보는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이러한 장면들을 연인의 관계 속으로 옮겨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과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가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로 인해 오해와 침묵을 겪다가, 말로 설명되지 않는 진심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사랑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말을 어떻게 듣고, 언제 판단하기 시작하는지를 되묻게 한다는 데 있다.

사람 수만큼의 언어, 이해되는 감정과 밀려난 감정
 넷플릭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언어가 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각자는 자기 방식의 말로 살아온 결과, 우리는 자주 서로를 오해하고, 거꾸로 듣고,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는다.

이 말은 각자가 어떤 조건과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말의 방식을 만들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공격적으로 들릴지라도 명확함을 택한 말의 방식이 있고,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침묵에 가까워진 말의 방식도 있다. 우리는 종종 같은 말을 쓰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소통의 실패를 흔히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못해서, 혹은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서 생긴 일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대개 겉으로 드러난 말의 표현 방식만을 기준으로 내려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판단에 익숙해졌을까.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리된 말만을 더 신뢰하는 데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정돈된 방식의 말은 신뢰의 근거가 되고, 망설이거나 돌아가는 방식의 말은 신뢰의 결여로 읽힌다. 말하는 방식에 먼저 기준이 세워지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표현은 곧잘 문제처럼 여겨진다.

이때 함께 따라오는 것이 감정에 대한 판단이다. 어떤 감정은 이해하기 쉽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감정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밀려난다. 이 과정에서 감정에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미 익숙한 감정만을 골라 듣는 데 점점 능숙해져 왔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시간
 넷플릭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불안할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다.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농담과 거친 말을 섞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묻는다.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라고. 그러나 정작 잘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바로 이 질문이 생략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대화가 엇갈리는 장면들을 통해, 언어가 종종 이해보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굳어지는 현실을 드러낸다.

차무희는 불안해질수록 농담과 가벼운 말로 진심을 비켜 간다. 솔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솔직해졌을 때 돌아온 반응이 늘 오해와 단절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만을 기준 삼아, 그 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을 건너뛴다. 그 순간, 대화는 멈추고 판단만 남는다.

말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소통
 넷플릭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차무희의 망상인 도라미는 주호진 앞에서 차무희가 오랫동안 지워두었던 기억들을 숨김없이 쏟아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호진의 얼굴에는 놀람과 망설임, 연민이 차례로 스친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도라미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그 품에 안긴 채 도라미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사랑해 주세요, 주호진씨.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이. 안녕."

이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는 감동적인 사랑의 순간이어서가 아니라, 말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설명을 재촉하지 않고, 이해를 확인하려고 다그치지 않는다. 말이 멈춘 뒤에도 관계를 놓지 않는다. 그 순간 차무희가 평생 숨겨왔던 감정은 비로소 '통역'되었다.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우리는 언제부터 이해를 전제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을까. 감정은 설명될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고통은 정돈된 말로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공감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이해하는 법을 배워 왔다.

오늘날 우리는 번역 기술도, 표현 수단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럼에도 오해와 갈등은 줄어들지 않는다. 문제가 언어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인의 감정 앞에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있다.

차무희의 망상인 도라미가 사라진 건, 주호진이 완벽한 말을 찾아서가 아니었다. 말 대신 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거꾸로 들리는 언어들, 오역되는 감정들, 통역이 필요한 사랑 사이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정교한 언어가 아니라 어둠과 상처를 함께 견디는 태도였는지 모른다.

말은 이미 충분히 많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통역은 더 정확한 말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미뤄둔 채 듣는 일, 그 말들 사이에 남겨진 침묵을 견디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이 멈춘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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