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가 정답?...시장 경쟁과 끊임없는 평가 중요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6. 2. 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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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 2‘패자부활전’ 논란

공정성 뒷말 무성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운영 방식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당초 정부는 1차 평가에서 1개팀만 떨어뜨릴 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 컨소시엄 2곳이 떨어지면서 ‘말이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1차 발표 직후 느닷없이 발표한 패자부활전도 논란이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다. 과기정통부는 탈락 팀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공모해 프로젝트에 참가할 1개팀을 더 선정한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선 네이버클라우드 등 대기업의 재도전을 위한 ‘주먹구구식 운영’이란 지적이 나왔다. 더군다나 네이버클라우드와 카카오 등은 “참가 의사가 없다”고 밝히며 흥행도 실패했다. 정부가 불필요한 논란만 자초했단 지적이다. 패자부활전에 뛰어든 건 스타트업 두 곳뿐이다. 앞서 1차 공모에서 탈락했던 모티프테크놀로지스와 트릴리온랩스는 프롬 스크래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모티프테크놀로지스는 “프롬 스크래치를 넘어 지능의 핵심인 어텐션 함수와 모델 아키텍처 자체를 새롭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트릴리온랩스 역시 “완전한 프롬 스크래치”를 강점으로 제시하며 참가 의사를 밝혔다.

다만, 패자부활전으로 새로운 기업이 선발돼도 문제다.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당초 국대 AI 프로젝트는 약 6개월마다 세 차례 평가를 진행해 1팀씩 떨어뜨리는 구조로 설계됐다. 연말 최종 2팀을 선발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으로 선발된 팀은 딱 두 차례 평가만 받게 된다. 패자부활전으로 투입된 팀이 ‘부전승’ 인센티브를 받는 기이한 구조다.

공정성 문제도 있다. 기존 팀은 1차 평가를 통과한 AI 모델을 고도화해 2차 평가를 받는다. 반면 새로 투입될 팀은 새로운 모델을 프롬 스크래치로 개발해야 한다. 이미 4개월 이상 앞서 나간 기존 팀과 격차를 후발 주자가 따라잡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자부활전”이라며 “후발 주자 입장에선 마케팅 이익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서울 코엑스에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가 열린 가운데 참관객들이 기업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매경DB)
오해와 진실 3국가 주도가 정답?

시장 경쟁과 끊임없는 평가 중요

창발성(Emergence)을 근간으로 한 AI 모델 개발을 국가 주도 프로젝트로 밀어붙이는 게 타당한지에 관한 논란도 뒤따른다. 일각에서는 더 뛰어난 모델이 선택되기보다 정책 및 제도 정당성에 부합되는 모델이 살아남는 역설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넬슨(R. Nelson)과 윈터(S. Winter)의 기술진화론적 관점에 비춰 국가대표 AI 선정 사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기술진화론에서는 기술 발전을 변이(Variation)-선택(Selection)-보존(Retention) 과정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스마트폰 초창기 애플 아이폰 이전에도 블랙베리, 노키아, 윈도 모바일폰 등 수많은 형태의 스마트폰이 존재했다. 풀 터치, 물리 키보드, 슬라이드 방식 등 어떤 UI와 사용 방식이 표준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기업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중복 투자와 비효율도 발생했다(변이). 소비자들은 터치 중심 인터페이스와 앱 생태계에 열광했고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이 빠르게 확산했다. 블랙베리의 물리 키보드 전략이나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경쟁에서 밀려났다(선택). 이후 스마트폰 산업에서는 iOS와 안드로이드가 사실상 글로벌 표준이 됐다(보존).

이 가운데 핵심적인 단계는 변이다. 변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창발적 시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AI처럼 기술 불확실성이 높고 응용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산업에서는 초기 비효율이나 실패 자체가 장기 경쟁력의 토양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 주도 방식은 소수 ‘정예팀’을 선정해 자원을 집중하는 전형적인 하향식(Top-down) 구조로 평가된다. 이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해야 할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 창발적 학습 가능성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 주도로 특정 모델을 ‘선택(Selection)’하는 의사결정이 장기적으로 국내 AI 산업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기술진화론적 관점에서 기술의 우열은 시장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한 지속적인 검증(Continuous Evaluation)으로 가려진다. 국가 주도 사업에서는 관료제 평가 시스템 아래 정책 및 제도 정당성이 선택 잣대로 작용한다.

익명을 원한 서울 소재 경영대학 A교수는 “특정 컨소시엄이 ‘국가대표’로 선정되면 기술적 한계가 드러나더라도 막대하게 투입된 예산과 정책적 명분 때문에, 이를 실패로 인정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경로를 고집하는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며 “자칫 글로벌 기술 표준과 동떨어진 우리만의 ‘갈라파고스적 모델’에 자원을 낭비해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AI 산업 경쟁을 개별 기업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국가 주도 모델을 앞세우면서도 AI 산업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다만, 중국의 경우 ‘국가 주도’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다수 간 경쟁(변이)’ 체제가 작동하므로, 한국과는 기술 진화 경로가 다르다는 평가다.

국책연구소 B박사는 “국가 주도 조기 선정 및 집중 전략은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AI 산업 생태계 개방성과 실험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시장 효율성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최적화된 모델만 살아남는 역선택이 초래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가 열린 가운데 배경훈 과기부총리,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매경DB)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5호 (2026.01.28~0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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