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의 '인민민주주의' 발언, 색깔론의 낡은 그림자
[조명호 기자]
|
|
|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와 이언주 최고위원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회 개회식에 나란히 참석해 있다. |
| ⓒ 남소연 |
이 의원은 1인 1표제로 합당 여부를 묻는 것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숙고하지 않은 채 속도전으로 O·X만 묻는다면, 그것은 당원을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일종의 인민민주주의적 방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당내 민주주의와 절차를 강조하는 말이다. 숙의와 정보 제공을 강조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민민주주의적 방식"이라는 표현 자체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색깔론이 민주당 안에서 터져 나왔다.
'인민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품은 역사
'인민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국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정치 용어다. 겉으로는 인민이 주권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 체제였다.
선거는 있었지만 경쟁은 제한적이었고, 언론과 정치적 대안은 통제됐다. 다수결이라는 겉모습은 있었지만 실제 선택권은 없었다.
이 용어는 냉전 시기 한국에 들어오면서 학술 개념을 넘어 이념적 낙인이 됐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곧 체제 위협이었다. 사실 '인민'은 해방 직후까지도 일상적으로 쓰이던 말이었다. 하지만 분단과 냉전이 굳어지면서 북한 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고착됐다.
'동무'라는 호칭도 마찬가지다. 해방 공간에서 널리 쓰이던 이 말은 북한이 공식 용어로 사용하면서 남한에서는 '빨갱이 용어'로 낙인찍혔다. 일상 언어에서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언어가 이념의 경계선이 되면서, 단어 자체가 정치적 신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인민민주주의"라는 말은 설명의 언어가 아니다. 상대를 규정하고 낙인찍는 언어다.
당원 직접투표는 정말 '인민민주주의'인가
합당 여부를 전 당원에게 묻는 1인 1표제는 어떤가. 경쟁이 있고, 찬반 토론이 가능하고, 결과가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구조다. 역사적 의미의 인민민주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속도와 숙의 문제는 따져볼 수 있다. 정보 공개 방식도 보완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언주 의원이 지적한 "충분한 정보"와 "숙고"의 중요성은 귀 기울일 만하다. 당원주권주의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 되려면 토론 구조와 자료 공개가 더 촘촘해야 한다.
하지만 절차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직접투표를 '인민민주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건 지나치다. 그 순간 논쟁은 제도 개선 차원을 벗어나 체제적 의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합당의 전략적 타당성을 따지는 논의가 어느새 이념적 정체성을 겨루는 싸움으로 바뀐다.
색깔론은 토론을 위축시킨다
한국 정치에서 색깔론은 오래됐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종북", "좌파 독재", "인민" 등으로 규정하며 논쟁을 이념 대결로 몰아가는 방식은 여러 번 반복됐다. 특징은 명확하다. 정책과 전략 문제를 이념적 충성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러면 토론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는다.
실제로 이날 최고위원회의는 격렬했다. 이언주 의원은 합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을 '정청래·조국의 민주당'으로 바꾸려는 시도"라며 "합당 논의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 최고위원도 합당 논의 중단을 요구했고, 친청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공개적 비판을 문제 삼으며 반박했다. 정청래 대표는 회의 말미에 "당원에게 길을 묻고 당원이 가라는 곳으로 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단순한 절차적 우려가 아니다. 논쟁을 이념의 싸움으로 옮겨가는 신호다.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려는 문제 제기라면, 그 언어도 민주주의의 언어여야 한다.
절차 개선요구라면 절차 개선을 요구하라
이언주 의원의 개선 요구 자체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절차 설계의 문제로 제기해야 맞다. 특정 체제 용어를 끌어와 경고의 수사로 쓰는 순간, 논쟁은 내용에서 멀어지고 감정적 반응만 남는다.
예를 들어 "당원들에게 합당의 찬반 논거를 충분히 공개하고 토론 기간을 더 확보해야 한다"라는 구체적 제안은 설득력이 있다. "쟁점별 설명회를 열거나 찬반 의견서를 배포하자"라는 요구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민민주주의적 방식"이라는 표현은 결이 다르다. 설계를 요구하는 언어가 아니라 상대를 규정하는 언어에 가깝다.
이제는 색깔론은 역사의 유물로 보내자
합당은 정치적 선택이다.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다. 갈등 자체는 당내 민주주의의 한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논쟁이 냉전의 언어에 기대서는 안 된다. 색깔론은 상대를 설득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상대를 고정시키는 언어였다. 민주주의의 방패가 아니라 토론을 가로막는 소음이었다.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 의원의 말은 옳다. 다만 그 발전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낙인으로 단단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판단을 끝까지 토론하는 과정에서만 깊어진다.
색깔론은 이제 정치의 무대에서 휘두를 무기가 아니다. 역사의 창고에 넣어둘 유물이다. 민주주의는 이념의 그림자가 아니라 토론의 빛 속에서 자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군정의 역사적 범죄", 법정에서 드러난 '위폐사건' 조작 실체
- 14년 지켜온 가게인데... '약국계 코스트코' 입점 앞두고 생긴 일
- [영상] "어떻게 저걸?" 백로의 기막힌 얼음 낚시
- "이 햇살 너 다 가져..." 이 영화가 흥행 1위 한 진짜 이유
- 군인권센터 김형남 서울시장 출사표 "오늘밤 12시간 라이브, 시민 만나겠다"
- 이 대통령 '패가망신' 경고에 현지 언론 "캄보디아 국민 분노"... 왜?
- 서울시장 출마 전현희 "오세훈 DDP 해체하고 '서울 돔' 세울 것"
- 혁신도시 주민이 본 '공무원 통근 버스' 논란
- 30년 반복된 닮은꼴 행정구역 개편, 대전·충남은 다를까
- 고성국 징계 놓고 갈등... 극우 유튜버에 바람 잘 날 없는 국민의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