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지켜온 가게인데... '약국계 코스트코' 입점 앞두고 생긴 일
[백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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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월 28일 서울 금천구 창고형 약국 개점을 알리는 광고가 대형마트 외벽에 붙어 있다. |
| ⓒ 백진우 |
"약국이 이번 주까지라 없어요. 좀 남겨둘걸."
약사는 오랜 손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대답했다.
"이번 주까지만 해요? 아이고..."
안타까워하며 떠나는 손님을 뒤로한 채 약사 A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야."
약국 옆에서는 '창고형 약국' 개점 준비가 한창이었다.
창고형 약국 입점 앞두고... 같은 층에 있던 작은 약국 폐점
지난해 6월 국내 최초 '창고형 약국'을 경기도 성남에 연 메가팩토리약국이 2월 2일 서울 금천구에서 서울점 영업을 시작한다. 메가팩토리는 동네 약국보다 일부 일반의약품이 저렴해 '약국계 코스트코'라고 불렸다. 특히 이번에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도 취급할 예정이라 언론에선 동네 약국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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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월 28일 서울 금천구에 입점 예정인 창고형 약국과 같은 층에 있던 약국이 폐점을 앞두고 있다. |
| ⓒ 백진우 |
지난해 성남에 1호점이 개점했을 때는 지역 약사회가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등 반발이 있었던 터라 많은 매체는 이번 두 번째 개점에도 인근 약국의 반발을 예상했다. 그러나 서울점 주변에는 창고형 약국 개점을 알리는 광고만 있을 뿐, 이에 반발하는 현수막 등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개점 전부터 작은 약국은 밀려나는 모양새였다. 같은 층에서 도보 20초 거리에 있는 건강플러스약국은 이달 31일까지만 영업한다. 이유는 계약기간 만료다. 약사 A씨는 이 대형마트에서 2012년부터 약국을 해왔다.
건강플러스약국을 폐점한 후 A씨는 당분간 쉴 예정이다. 그는 "불만은 없다. 코로나19 때 어마어마하게 손해를 입었었고, 재작년에는 나아지나 싶었는데 지난해 대형마트 부진으로 또 적자가 났었다"면서도 재계약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A씨는 "머리에 띠라도 두르고 있을 줄 알았냐"며 집단행동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반발해도 들어올 약국이 안 들어오진 않는다"며 "(집단행동이) 되레 창고형 약국을 홍보해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메가팩토리 1호점 성남, 손님들 반응은?
실제로 국내 최초 창고형 약국인 메가팩토리 성남점이 '약국계 코스트코'를 표방하며 지난해 6월 개점했을 무렵, 약사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성남점은 여전히 정상 영업 중이다. 1월 28일 오전 10시 무렵 약 130평 규모 매장에는 25명 안팎의 손님이 장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 중년 이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일반 마트처럼 쇼핑카트가 손님을 맞이했다. '2500여가지 이상 건강 쇼핑 메가팩토리약국'이라는 문구가 전광판에서 빛났다. '1개 구매 시 1개 증정' '하루 300원대' 등이 적힌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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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창고형 약국 외관 |
| ⓒ 백진우 |
기자도 이곳에서 유명 'ㅌ' 해열진통제를 구매했다. 진열대에는 더 저렴한 타사 제품도 동일 성분이라는 안내가 있었다. 약을 들고 계산대에 가자 약사는 복용 시간과 용량 등을 안내하고 제품을 건넸다.
평일이었던 이날도 손님이 적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더 붐빈다고 한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수(남·45)씨는 성남점 영수증을 지참한 손님에게 가격을 할인해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그는 개점 초반에는 카페에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며, 지금도 주말에는 하루 약 30팀이 영수증을 들고 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창고형 약국 주변 약사들 '타격 있어'... 계속 찾는 단골도
성남점 인근에도 같은 아파트 단지 상권을 공유하는 약국 여럿이 도보 약 10분 거리에 있다. 이곳에서 동네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B씨는 "창고형 약국이 개점하고 분명 매출이 줄긴 줄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네 약국을 찾는 손님도 있었다. 이원식(남·53)씨는 이날 B씨 약국에서 약 18만 원어치의 안정제 등을 구매했다. 그는 "만약 창고형 약국에서 같은 약을 샀다면 1만 3000원 정도 돈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창고형 약국은 사람도 많고 복잡해 5년 넘게 다닌 동네 약국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어 "약사도 오랜 기간 알고 지내다 보니 상담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B씨는 "일반 의약품 복용에도 복용자의 이력과 목적 등이 고려돼야 한다"며 "(창고형 약국으로) 판매에만 급급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창고형 약국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다. 실제로 기자가 메가팩토리 성남점에서 2500원에 구매한 해열진통제를 성남점과 서울점 인근 동네 약국은 3000원에 팔았다. 이를 두고 그동안 지역 약사들이 폭리를 취하다 창고형 약국이 등장해 가격이 정상화된 거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동네 약국들은 기자에게 원가까지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약사 A씨는 주문단가가 적힌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며 해당 해열진통제의 원가가 약 2400원임을 확인해줬다.
서울점 인근 약국의 약사 C씨도 'ㅎ' 상처치료제의 매입가를 묻자 4450원임을 확인해주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이 상처치료제는 해당 약국에서 6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부가가치세를 고려하면 개당 약 1000원 수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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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성남시의 창고형 약국(중앙)과 동네 약국(좌), 서울 금천구의 동네 약국(우)에서 2026년 1월 28일 구매한 해열진통제와 영수증. 인터뷰에 참여한 약국과 무관함. |
| ⓒ 백진우 |
지역 약사들은 일제히 약을 일반 상품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약사 C씨는 "약은 남용하면 독이다"라며 "약을 공산품처럼 취급하는 게 웃긴 일이다"고 우려했다. 그는 같은 진통제도 상황에 따라 해열진통제를 써야 할 때와 소염진통제를 써야 할 때가 있다며 "약은 자기 마음대로 골라 먹는 게 아니라 잘 분별해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양질의 서비스로 단골 확보에 나서겠다는 동네 약국이 많았다. 서울점 인근 약국의 약사 D씨는 "약국은 가격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며 "(동네 약국은) 몸이 아파 약사 상담을 통해 약을 고르려는 손님이 많아 제품을 정하고 창고형 약국을 찾는 수요층과 다르다"고 했다.
또 다른 약국의 약사 E씨는 "우린 상황에 맞게 자세히 설명해 단골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창고형 약국과의 경쟁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대형 약국과의 경쟁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9월경에는 창고형 약국과 유사한 '마트형 약국'을 표방하는 곳이 D씨가 운영하는 약국 인근에 생겼다고. 그는 "단골 할머니가 마트형 약국에 갔다가 다시 우리 약국을 찾았다고 했다"며 "(마트형 약국이 생긴) 초반에는 매출이 급감했는데, 지금은 회복세다"고 밝혔다.
다만 소형 약국의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왔다. 약사 A씨는 "기성세대는 단골 약국 개념이 있을 수 있어도 젊은 층은 스스로 찾아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별다른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의약품도 전문의약품처럼 정찰제를 시행해 가격 경쟁으로 인한 서비스 품질 저하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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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창고형 약국 인근 동네 약국들. 인터뷰에 참여한 약국과 무관함. |
| ⓒ 백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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