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사춘기, 아이에게 편지 쓸 때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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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기자]
나는 종종 '아는 게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두 명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곤 하는데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는 확실해졌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아이의 게으름과 지저분함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것은 학교에서의 생활을 짐작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딸의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으려니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방학 후 한 달,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향하며 어쩌면 한바탕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던 위기에서 나와 딸아이를 구원한 건 의외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사춘기 아이들의 속마음
23년 차 방송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나는 방학 동안 재능 기부로, 딸의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정작 나의 딸은 '엄마에게 절대 나의 글을 보여줄 수 없다'며 참여하지 않았는데 아쉬움도 잠시, 나는 열일곱 살 소년, 소녀의 글에 푹 빠지고 말았다. (관련기사 : 열일곱 살은 글쓰기를 싫어할 거라고... 누가 그래요?).
내가 진행하는 글방 프로그램에는 '데일리 미션'이라고 해서 매일 3줄 이상의 글을 쓰는 숙제가 있다. 주제는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데 예를 들면 '오감으로 글쓰기', '입장을 바꿔서 글쓰기', '오늘 내가 들은 말' 등에 대해서 쓰는 식이다.
'매일 글쓰기'라는 쉽지 않은 숙제를 아이들은 성실히, 게다가 꽤 훌륭하게 해냈다. 아이들만의 독특한 시선이 있어서 흥미로웠고, 사춘기 아이들의 하루를 엿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움도 들었는데 글의 많은 부분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 자책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이들은 결심한 대로 지키지 않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방을 치우겠다고, 공부를 하겠다고, 독서실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물론, 뜻대로 잘 해낸 날도 있다. 하기 싫지만 꾹 참으면서 공부를 하고 학원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던 자신을 기특하다며 스스로 칭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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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쏭달쏭 알 수 없는 사춘기 딸의 마음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고, 가끔은 한심해 보이기도 하는 사춘기 |
| ⓒ 픽사베이 |
동시에 우리 글방 친구들의 글을 통해서 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나의 사춘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럴 법도 하다면서 나는 딸을 어른의 기준으로 보았다. 어른인 나의 눈에 딸은 종종 기특했고, 자주 한심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나 싶은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는 저리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 같아 보여도, 이 아이의 마음 속 역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자신만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음을.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같이 사춘기를 건너는 친구들이 쓴 글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이 글쓰기를 감정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쓰기는 엄연히 논리의 영역이다. 글을 쓰려면 그게 무엇이 됐든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다시 한번 헤아리게 된다. 쓰는 순간 오히려 감정은 배제되고 차분해지는 것이 글쓰기가 가진 긍정적인 효과다.
아마도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도, 부모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말로 꺼내면 감정부터 먼저 치고 올라와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상처 뿐인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생긴다. 말은 즉흥적이지만 글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우리를 조금 더 성숙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사춘기 아이와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힘들다면 글을 써보길 권한다. 내 마음을 점검하는 글을 쓰는 것도 좋고,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좋다. 단, 편지를 쓸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사랑을 빙자해서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아이를 가르치려는 말만 쭉 늘어놓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처음에는 부모의 편지에 감동 받았던 아이들마저도 나중에 편지만 보면 진저리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점만 주의한다면 글쓰기는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오작교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글쓰기를 통해 사춘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성장의 욕구가 있음을, 아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이 생을 잘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음을,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함을, 그때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지켜보는 부모가 아닌 아이들 자신임을. 나는 이제 더 이상 딸을 나의 잣대로 재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은 아이들의 글쓰기 덕분에 남은 방학도 딸과 나는 평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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