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는 왜 '아빠의 플레이리스트'를 꺼냈나
에픽하이 '러브 러브 러브' 숏폼 타고 열풍

2007년 발표된 그룹 에픽하이의 노래가 2026년 음원 시장을 흔들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한 마케팅 대신 샘플링과 숏폼 챌린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과거의 명곡이 현대적 감각과 결합하며 세대를 넘는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번 역주행의 출발점은 힙합 시장의 샘플링 전략이었다. 힙합 가수 식케이와 릴 모쉬핏이 에픽하이 정규 4집 수록곡 '러브 러브 러브'(Love Love Love)를 샘플링한 신곡 'Lov3'를 발표하며 Z세대 리스너의 관심을 끌었다. 도입부 가사인 "또다시 보여줘야 돼"는 1020세대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확산됐다. 신곡의 인기가 원곡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며 두 곡이 함께 상승하는 '동반 역주행'이 나타났다.
실제 성과도 뚜렷하다. 러브 러브 러브는 지난달 12일 기준 애플뮤직 오늘의 톱100 4위, 스포티파이 톱50 7위, 유튜브 뮤직 주간 차트 42위에 올랐다. 멜론 톱100에 진입했고, 인스타그램 인기 상승 오디오 10위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번 흐름은 단순한 차용에 그치지 않았다. 그루비룸 등 실력파 프로듀서들이 에픽하이의 음악을 힙합 문법으로 재해석하며 1020세대의 감각에 맞게 복원했다. 에픽하이는 지난해 12월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2025 에픽하이 콘서트'에서 두 곡의 리믹스 무대를 선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숏폼, 과거 명곡을 '신곡'으로 탈바꿈= 숏폼 플랫폼과 유튜브의 역할도 컸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에서는 아이브, 트와이스, 엔하이픈, NCT WISH, 투어스 등 4~5세대 아이돌이 챌린지에 참여하며 확산에 힘을 보탰다. 가사에 맞춰 하트 모양을 그리는 포인트 안무는 챌린지 이용자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콘텐츠 소비의 재미를 키웠다. 지오디 데니안이 팬미팅에서 이 곡을 언급한 장면도 세대 간 공감대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Z세대는 이 노래를 '옛 곡'이 아닌 '세련된 신곡'으로 받아들인다. 에픽하이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50만명을 넘어섰고, 타블로는 댓글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거리감을 좁혔다. "아빠 플레이리스트에서 찾았다"는 댓글에 "이제 너의 음악"이라고 답하는 방식은 팬덤의 자발적 확산을 이끌었다. 기획사 중심의 일방적 홍보에서 벗어나, 아티스트가 직접 소통하는 구조가 역주행의 기반이 된 셈이다.
음악적 흐름도 맞아떨어졌다. 최근 유행하는 '편하게 듣는 음악(이지 리스닝)' 기조와 원곡의 서정성이 조화를 이뤘다. 자극적인 사운드에 피로감을 느낀 청취자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클래식'을 선호하는 흐름 속에서, 화려한 기교보다 감성의 본질에 집중한 음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음악 자산, K팝 산업의 새 활로= 에픽하이의 다른 명곡들도 잇따라 재조명되고 있다. '팬(Fan)'은 크래비티와 보이넥스트도어 등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불렀고, '플라이'는 MBC '가요대제전' 무대에서 새롭게 소개됐다. 단순한 향수 소비를 넘어 현재 시장에서도 통하는 콘텐츠임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해외 시장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발매된 지 18개월 이상 지난 곡이 전체 음악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K팝 시장 역시 신곡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과거 음악 자산을 재가공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현민 대중문화평론가는 "Z세대에게 이 곡은 추억의 재소환이 아니라 처음 발견한 '빈티지 신상'"이라며 "음반 발매 연도가 더 이상 음악의 신선도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식케이의 샘플링이 세대 간 심리적 문턱을 낮췄고, 숏폼의 시각 문법과 결합해 디지털 놀이 문화의 중심으로 확장됐다"며 "과거의 지식재산권(IP)이 현대 플랫폼을 만났을 때 생명력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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