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잡는 ‘車사고 8주룰’ 도입 속도…의료계 ‘치료권 침해’ 반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경상 환자의 장기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는 이른바 ‘8주 룰’ 도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업계는 제도의 순기능을 기대하는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치료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해 온 경상 환자 치료 데이터 통계 분석 연구용역을 최근 마무리했다. 보험개발원은 이를 토대로 환자의 조건별 통상 입·통원 일수와 적정 최대 치료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이르면 다음 달 완료될 전망이다. 성별·연령별·상해 급수별로 입·통원 일수 등을 분석해 총진료량 등 객관적인 적정 치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해당 데이터는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이른바 8주 룰 운영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8주 룰은 교통사고 경상 환자가 8주를 넘겨 치료할 경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기관의 심의를 거쳐 장기 치료 필요성이 인정돼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해 12~14급에는 타박상, 염좌, 찰과상 등 비교적 경미한 부상이 포함된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자동차보험에 8주 룰을 적용하는 내용의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8주라는 기준은 경상 환자의 90% 이상이 8주 이내 치료를 마친다는 통계를 근거로 설정됐다. 금융당국은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3월 1일부터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경상 환자가 사고 이후 4주까지는 별다른 제한 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4주가 지난 뒤에도 의료기관의 치료 필요 진단서만 제출하면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경미한 접촉 사고에도 수개월간 치료가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보험업계는 8주 룰 도입을 통해 이러한 관행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제도 개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자동차보험 누수의 원인으로 지목된 경상 환자 과잉 진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3년 1월 자동차보험 약관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라 경상 환자는 4주 진단 이후 추가 치료가 필요할 경우 2주 단위로 진단서를 새로 발급받도록 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에도 일부 환자는 반복적으로 진단서를 발급받아 사실상 장기 치료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서를 18회까지 발급한 사례는 약관 개정 첫해인 2023년 140건에서 이듬해 1660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이 같은 상황 속에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형 손해보험사 4사(삼성·DB·현대·KB)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6.1%로 최근 6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상 손해율이 80%를 넘으면 손실 구간으로 평가된다. 업계는 최근 4년간 이어진 자동차보험료 인하에 더해 경상 환자 과잉 진료에 따른 보험금 누수가 손해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8주 룰은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8주 룰’ 놓고 업계 “순기능 기대”…의료계·시민단체 “치료권 침해”
다만 업계 내부에서도 경상 환자의 치료 기간이 오히려 ‘8주’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의료기관이 제도를 악용해 8주까지 치료를 권장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보험업계는 8주 룰의 순기능이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8주를 초과할 경우 추가 서류를 요구하는 구조인 만큼 치료의 적정성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정 치료 기간 관리를 통한 순기능이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환자의 치료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하위 규범부터 손질해 제도를 사실상 확정하려 했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8주 치료 제한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본권 침해 우려를 인정하며 ‘원점 재검토’를 약속한 사안”이라며 “금융감독원이 이를 무시하고 시행세칙 개정을 강행한 것은 부처 간 정책 조율을 무력화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도 지난 22일 논평을 내며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하위 세칙에 먼저 반영해 제도를 기정사실화하려 한 시도는 부적절하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당국은 시행 시점은 상위 법령 개정 일정과 연동될 예정이며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자동차보험 재정 안정과 경상 환자의 치료권 보호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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