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은 왜 지혜복 교사를 지켜주지 않았나

김옥성 2026. 1. 31. 15: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법원의 전보처분 취소 판결 및 서울시교육청의 항소 포기는 환영하지만... 입 다문 교육단체들

[김옥성 기자]

 지난 2024년 6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성폭력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 무효확인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 당시 지혜복 교사 모습
ⓒ 연합뉴스
'학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뒤 해임됐던 지혜복 교사를 둘러싼 긴 싸움이 서울시교육청의 항소 포기로 마침내 마무리됐다.

지난 2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고은설)는 지 교사가 서울중부교육청을 상대로 낸 '전보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는 공익신고자에 해당된다"며 "원고에 대한 전보 처분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반하는 불이익한 처분"이라고 지 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다음날인 30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1심 법원 판결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교육감은 지 교사에게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했다. 비극의 시작은 전임 체제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스스로 풀겠다는 자세로 매듭지은 건 현 교육감의 결정이었다.

[관련기사] "지혜복 교사 전보 취소" 판결...서울교육감 "항소 않겠다" https://omn.kr/2gvsp

하지만 이번 항소 포기는 단순히 소송을 그만두는 일이 아니다. 현장의 목소리에서 멀어진 교육 행정이 어디까지 어긋났는지를 인정하겠다는, 늦었지만 중요한 신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 사건이 단순히 '전임자의 실수'로만 정리될 수 있는가. 정말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이들을 지키려 한 교사를, 국가는 지켜줬는가"

2023년, 중학교 상담부장이었던 지혜복 교사는 여학생들이 남학생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학교장에게 진상조사와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지 교사는 교육지원청과 본청에까지 문제를 알렸다.

이후 벌어진 일은 교육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2024년 3월, 교육청은 그에게 타 학교 전보를 통보했다. 그는 이것을 보복성 인사라고 판단했고, 항의의 뜻으로 출근을 거부하며 천막을 치고 거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교육청의 답은 '정당한 사유 없는 근무 거부'라는 명분 아래 내려진 해임 처분이었다.

학생을 지키려 한 교사는 하루아침에 조직을 어지럽힌 문제 교사가 되었고, 공익신고자를 지켜야 할 국가는 오히려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그를 배제했다.
▲ 지혜복선생님 서울시교육청앞 출입구에서 공익제보자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외롭게 투쟁중인 지혜복선생님
ⓒ 경향신문
"진보 교육감 체제에서,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이 사태의 핵심은 분명하다. 왜 하필 진보 교육감 체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인권과 민주주의, 학생 중심 교육을 앞세워온 진보 교육이, 정작 내부의 정의 요구에는 왜 이토록 무자비했는가.
그 이유는 불편하지만 분명하다. 진보 역시 '권력'이 되었고, 권력은 예외 없이 관료주의의 언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교육청 조직은 비대해졌고, 교육감은 현장의 목소리보다 보고서와 법률 검토서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쓴소리는 '문제 제기'가 아니라 '조직 안정을 해치는 요소'로 분류됐다.

나 역시 현장을 지켜보며 느낀 바가 있다. 교육감 주변에는 점점 직언하는 사람이 사라진다. 타당한 비판조차 "기분 나쁘다", "선을 넘었다", "월권이다"라는 말로 밀려난다. 권력은 비판을 통제하려 하고, 결국 비판을 듣지 않는 법을 배운다. 지혜복 사태는 그 구조가 낳은 참사다. 이것은 진보의 가치가 아니라, 진보의 이름을 앞세운 관료 권력의 실패다.

"입을 다문 교육단체들, 누가 견제했는가"

더 깊은 상처는 따로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교육단체들이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교육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단체들이, 어느새 그 권력의 주변부에 안착한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특히 서울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교육단체가 '협력'을 이유로 비판을 미루고 내부 문제에 눈을 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지 교사가 거리에서 홀로 외칠 때, 단체들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 침묵은 행정 폭력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운동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무거운 책임으로 남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결국, 너무 늦은 사과일지 모른다. 그저 할 말이 없고 죄송할 뿐이다.

"끝이 아니라, 성찰의 시작이어야 한다"

정근식 교육감의 항소 포기 결정은 분명 의미 있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결정이 책임의 종결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야 진보 교육이 자기 성찰의 문 앞에 선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반드시 짚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교육감에게 현장의 목소리가 직접 닿을 수 있는 독립적인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학교 안 부조리를 드러낸 교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공익신고자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징계와 인사로 갈등을 덮는 방식이 아니라, 다친 사람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거리에서 교육의 정의를 외쳐온 지혜복 교사에게 깊은 위로와 존경을 보낸다. 그의 복직은 끝이 아니라, 서울 교육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진보였는가?"

이번 결정이 단순한 재판의 마침표가 아니라, 현장의 신뢰를 되살리는 진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진보 교육은 이제, 자기 안의 비판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옥성 님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