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쌈꾼 백기완, 노투사의 무릎이 그립습니다

명진 2026. 1. 3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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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 5주기, 추모 편지①] 명진(전 봉은사 주지)

오는 2월 7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백기완 선생님 5주기(2월 15일) 추도식이 열립니다. 추도식을 앞두고 생전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했던 이들이 추모글을 보내와 여덟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명진 기자]

 2017년 명진스님 단식장을 찾아 무릎을 베개 삼아, 조계사
ⓒ 채원희
백기완 선생님,
날이 춥습니다. 대한(大寒) 지난 이 겨울의 날씨는 참으로 맵습니다.
동안거를 위해 들어앉은 이곳 강원도 산골 마을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동설한입니다.

그러나 정말 추운 건 바깥의 날씨만이 아닐 것입니다.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내쫓고 정권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노동조합 조끼를 입었다고 쫓겨나는 세상은 그 자체로 냉동설한입니다. 자본귀족과 노동노예로 나눠진 세상,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차가운 차별과 혐오가 있는 세상은 그 자체로 칼날 같은 한빙지옥(寒氷地獄)입니다.

백기완 선생님께서는 노동에 대한 존중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며, 역사에 대한 존중이자 인간 미래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백기완 선생께서 90 평생 아스팔트에서, 파업 현장에서 목청껏 노동해방을 외친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달라, 돈을 올려달라는 청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는 몸부림이었고, 당당한 인간존엄의 선언이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은 백기완 하면 불호령을 떠올리지만, 저는 물러섬 없는 불쌈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눈물과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선생께서는 불의와 탄압에는 무쇠처럼 결코 물러섬이 없는 분이지만, 힘 없고 고통 받는 민중들 앞에선 참으로 눈물이 많으셨던 분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과 밤이나 낮이나 함께 싸우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울어주는 마음 즉 동체대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입니다.

제가 삶의 의미를 찾아 출가해 깨달음을 구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제게 더 큰 깨달음을 준 스승은 백기완 선생님이셨고, 제게 살아 있는 부처는 백기완 선생님이셨습니다. 절집에서도 수많은 스승을 만나왔지만 백 선생님처럼 온몸으로, 온 생애로 자신을 밀고 나가신 스승이 어디 그리 많았겠습니까.
 2018년 한가위만 되면 북녘 고향 생각하며 울쩍해 계신다는 소릴 듣고 명진스님이 북쪽에서 캔 송이버섯을 구해서 갖고 오셨다, 통일문제연구소
ⓒ 채원희
백기완 선생님,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참 야속하게도 흐릅니다. 2017년 제가 조계사 앞마당에서 천막을 치고 스무날 동안 단식을 하면서 불교개혁을 외치고 있을 때, 백 선생님께서는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 천막에서 단식에 지칠 때면 저는 백 선생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곤한 몸을 쉬곤 했습니다. 불쌈꾼 백기완, 노투사의 무릎은 얼마나 의지가 되던지요. 이제는 그처럼 무릎을 베고 누울 스승이 사라진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우리의 영원한 불쌈꾼 백기완 선생님, 당신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텅 빈 겨울산처럼 그 허허로움을 감당키 어렵습니다. 그보다 걱정인 것은 이 동요하는 인간의 세상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장군죽비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하시던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더욱 그립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곧 입춘(立春)입니다. 온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대한 날씨를 지나면 입춘이 옵니다. 입춘, 봄의 시작은 겨울의 한복판입니다. 동장군이 아무리 기세를 펼치고 있다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설중매도 한자락 피어 있는 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역사의 설중매셨습니다. 외세와 싸우고, 군부독재와 맞서고, 자본독재와도 타협하지 않으셨던 붉은 설중매셨습니다. 북풍한설에도 그 향기와 지조를 잃지 않는 설중매셨습니다.

설중매가 겨울의 한복판을 찢으며 봄을 준비하기에, 춘삼월이 되면 세상천지에 봄꽃이 그득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눈 덮인 강원도 산골 땅에도 입춘 지나면 용솟음을 준비하는 새순들이 곳곳처처에 있을 겁니다. 바깥은 아직 차가운 엄동설한이지만 백기완을 가슴에 품은 뜨거운 설중매들이 있는 한, 우리의 내딛는 걸음걸음은 모조리 인간의 봄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백기완의 불호령으로 봄을 부르고 있는 겁니다.
 2017년 명진스님 단식이 길어지자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채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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