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뜨면 오래 못 간다…‘핫플의 저주’

노승욱 매경이코노미 기자(inyeon@mk.co.kr) 2026. 1. 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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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먹던 그 집이 없어졌네
빠른 트렌드 변화와 가성비 중심 소비가 확산되며 SNS 마케팅에 특화된 ‘핫플’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MZ세대 성지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모습. (이승환 기자)
“글로우 성수는 2025년 마지막 날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서울 성수동의 ‘핫플’로 유명했던 ‘글로우 성수’ 폐업이 업계에서 화제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지 불과 6개월 만인 데다, TV 프로그램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으로 잘 알려진 글로우서울이 운영하던 매장이어서다. 갈수록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고 불황에 따른 가성비 중심 소비가 확산되며 SNS 마케팅에 특화된 ‘핫플’의 잔혹사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한때 지역 핫플로 유명세를 누리다 급하게 문을 닫게 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미쉐린 1스타 ‘일판’ ‘암소서울’ ‘도쿄등심’ 등 프리미엄 다이닝을 운영하던 외식 기업 ‘오픈’은 무리한 사세 확장과 고정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 체불 논란과 함께 주요 매장들이 줄줄이 영업을 중단했다. 카페노티드로 잘 알려진 ‘GFFG’도 ‘애니오케이션’ ‘키마스시’ ‘베이커리 블레어’ 등 수많은 브랜드를 정리했다. 한때 기업가치 3000억원을 인정받은 1등 공신 브랜드인 ‘카페노티드’도 최근 매장 앞 행렬이 사라지고 매년 수십억 적자를 기록하는 등 하락세다. 인기 연예인이 창업한 매장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강남 압구정로데오 맛집 거리에서 6년간 꼬치집을 운영해온 방송인 정준하 씨도 “영욕의 시간을 이제 마무리한다”며 폐업했다. 단, 정 씨는 같은 자리에서 업종을 바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핫플이 오래 못 가는 이유 5가지

공간 효율 낮고 ‘도장 깨기’ 고객만

문을 열자마자 줄 서던 핫플 매장들이 오래 못 가 폐업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핫플 매장이 태생적으로 지닌 ‘낮은 공간 효율성’이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SNS 마케팅에 필수적인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에 힘을 주다 보니, 정작 테이블, 매대 등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영업 공간’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임대료 대비 매출 효율을 떨어뜨려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급 자재와 소재를 쓰다 보니 초기 인테리어 비용과 유지비도 많이 들기 마련이다.

핫플이 타기팅하는 고객층의 ‘도장 깨기 방문 성향’도 양날의 칼이다. 핫플을 즐겨 찾는 MZ세대의 경우, 매장을 방문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화제가 되는 매장에 가봤다는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 거리나 비싼 가격에 구애치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오지만,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굳이 재방문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핫플 매장 오픈 소식에 빨리 반응하지만 그만큼 빨리 떠나가는 ‘일회성’ 고객에 가까운 셈이다.

가맹점을 200개 이상 운영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A대표는 “핫플을 찾아다니는 고객은 새로운 자극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들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애초에 충성도가 낮은 고객층으로 여기고 타깃 마케팅을 하지 않는 브랜드도 있다”고 말했다.

핫플일수록 더 빨리 모방되는 ‘카피캣’도 리스크다. 경쟁이 치열한 F&B 업계는 이른바 ‘벤치마킹 투어’가 일상화돼 있다. “어디가 새로 문을 열었는데 줄 선다더라” 하는 입소문이 나면 손님을 가장한 ‘선수’들이 찾아와 성공 비결을 연구하는 것이다. A대표는 “서울에서 유행하면 부산 남천동에까지 순식간에 카피캣이 생긴다. 가까운 곳에 유사한 콘셉트의 매장이 있으면 굳이 멀리까지 원조를 찾아갈 이유가 없어진다. 유명세를 탈수록 더 빨리 더 많은 경쟁자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기획’과 ‘운영’의 조화도 숙제다. 어떤 매장이 핫플로 뜨게 된 배경에는 기존에 없던 새롭고 기발한 콘셉트가 주효한 경우가 많다. 이는 창업자(또는 기획자)의 예술가적 기질이나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매장이 지속될 수 있게 유지, 관리하는 운영 역량은 별개다. 매출, 이익과 같은 재무제표를 보는 능력, 일상적으로 직원을 관리하고 마케팅을 하는 성실함 등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기획과 운영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창업자는 많지 않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핫플에는 창업자에게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는 동업자나 오른팔 직원이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외식업이 상향평준화되며 전반적인 경쟁 강도가 높아지고,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는 것도 위기 요인이다.

매일경제가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의뢰한 서울 시내 주요 상권별 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홍대·강남·종로 등 ‘핫플 상권’은 매출이 급감하거나 겨우 현상 유지를 하는 수준이었다. 2019년 월평균 매출액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홍대 상권 매출은 39에 그쳤다. 매출이 61% 감소했다는 얘기다. 강남역(94), 종로3가(95), 광화문(97) 등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매출이 줄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관계자는 “고금리, 고물가로 인한 소비 변화와 함께 새로운 공간을 찾는 젊은 층의 선호도에 따라 서울 주요 상권의 소비 지형도 빠르게 달라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상권이 너무 잘나가도 문제다. 같은 기간 성수, 용리단길, 신용산 상권은 매출이 각각 114%, 343%, 128% 증가했다. 문제는 장사가 잘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높여 임차인의 수익성을 뺏아간다는 것. 일례로 성수동 핫플로 불리는 연무장길에는 66㎡의 가게에 권리금만 20억원에 달하는 곳도 등장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성수2가3동(연무장길 일대)의 평당 임대료는 14만9777원으로 5년 전인 2020년 10만887원 대비 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의 평당 임대료 상승률 16%의 3배가량 높다. 이렇게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고매출을 계속 유지해야 하지만, 핫플은 앞의 이유들로 인해 지속이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선 ‘화려한 핫플’보다 ‘꾸준한 노포’가 지속가능한 매장 콘셉트로 선호되는 분위기다.

“핫플 잔혹사는 ‘트렌드라는 마약’에 취해 수익 구조와 지속가능성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유행을 쫓는 사냥꾼보다는 고객 곁에서 묵묵히 신뢰를 심는 농부의 마음으로, 화려함보다는 단단한 내실을 갖춘 브랜드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관광지’ 같은 매장이 아니라, 거품 낀 인테리어와 콘셉트에 치우치지 않고, 고객 만족과 맛의 기본을 매일 꾸준히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위한 숫자 계산이 필수다.”

외식 매장을 40여개 운영 중인 스페이스콘텐츠푸드(SCF)의 양성욱 이사(CMO)의 조언이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5호 (2026.01.28~0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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