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전쟁...왜 '재래식 언론'이란 말이 나왔을까

조명호 2026. 1. 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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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유튜브를 통해 시작된 '저널리즘 전쟁'...결국 누가 시민의 신뢰를 획득할지가 관건

[조명호 기자]

 1월 27일 유튜브 <팟빵-최욱의 매불쇼> 방송화면 갈무리
ⓒ 매불쇼
언제부터였을까. 저녁 8시가 되어도 TV를 켜지 않게 된 게. MBC <뉴스데스크> 시간이 되면 당연히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던 습관이 사라졌다. 솔직히 <뉴스데스크>의 방송시간이 8시인지, 9시인지 모른다(MBC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주중 7시 40분, 주말 7시 55분이다).

요즘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전날 오후 방송된 유튜브 채널 <팟빵-최욱의 매불쇼>(아래 <매불쇼>)를 듣는다. 저녁에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그날 오전 방송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아래 <뉴스공장>)에 나온 정치인들을 다시보기를 통해 본다. MBC 시사 프로그램 <100분 토론>? 이제는 생방송으로 보지 않는다. 다음 날 유튜브에 올라온 5분짜리 '핵심'만 편집한 영상으로 확인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게 더 낫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더 이상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뉴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TV 뉴스 본 방송 시청? 그건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이미 잊어버린 습관이 되었다(여기서 MBC 뉴스데스크와 100분 토론을 예로 든 건 두 프로그램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상파의 대표 상품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MBC 뉴스데스크는 시사인에서 조사한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 1위다).

비상계엄 그날 밤, 나는 유튜브를 켰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속보가 터졌을 때, 나는 거실 TV와 함께 스마트폰 유튜브를 동시에 켰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 KBS의 TV채널 뉴스는 이미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었다. 분명 KBS 뉴스속보는 아니었다. 그냥 아무 채널의 뉴스속보를 TV로 켜 놓았지만 시선은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그날 밤 오마이TV 라이브에는 동시접속자 64만 명이 몰렸고, MBC 뉴스 유튜브 채널에는 53만 명, <뉴스공장>도 33만 명을 기록했다. 12월 한 달로 범위를 넓히면 <매불쇼>는 동시접속 100만 명을 찍었다(12월 4일 "윤석열, 김용현을 당장 내란죄로 체포하라!" 라이브 영상, 103만 5654명).

100만은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위기의 순간, 시민들이 속보와 해설과 맥락을 한 번에 얻기 위해 선택한 창구는 TV가 아니라 유튜브 라이브였다. 국가 비상사태에 시민들은 공중파 뉴스가 아니라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이게 현실이다.

또한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 뉴스 정치 분야 유튜브 채널 구독자 상위 200개 채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들은 계엄의 밤과 윤석열 체포, 윤석열 탄핵 국회 표결이 있었던 당시 MBCNEWS(채널명), 뉴스공장, 오마이TV 등의 라이브 방송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유튜브와 저널리즘: 계엄부터 21대 대선까지, 2025년 6월).

'재래식 언론'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와닿을까

유시민 작가는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 <토요토론> 특집방송에 출연해 '재래식 언론'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가치 판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기계적 중립 뒤에 숨는 기성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며, 뉴미디어가 기존 언론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 독점해 온 저널리즘의 권위가 깨졌다고 평가했다. 그 권위는 여전히 시민을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20세기 언론 규범에 갇힌 낡은 권위였다.

재래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뭔가 쿰쿰한 냄새가 날 것 같고, 기름때 묻은 기계가 연상되고, 오래 써서 삐걱거리지만 바꿀 생각은 없는 시스템. '레거시'나 '올드미디어'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역시 '유시민'이란 감탄을 했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다.

너무나 정확해서 깊이 공감이 된다. 시민들이 기성 언론을 등진 이유는 '편향'을 숨긴 기계적 중립이었다.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도 양쪽을 같은 무게로 올려놓는 것은 양반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한쪽을 실컷 물어뜯고 난 뒤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며 뒤로 물러선다. 비겁하며 교활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미 다 안다. 알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의 첫 번째 결과가 바로 "재래식 언론은 이제 잘 안 본다"는 것이다.

<100분 토론>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다

한때 <100분 토론>은 시청률 15%를 넘기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2003년 '노무현 대통령 초청토론:참여정부 두 달을 말한다' 편). 하지만 지난 20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9%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평소에는 1% 내외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다가 이슈가 터질 때만 잠시 반짝하는 패턴이다. 그마저도 다음 날 유튜브 편집본 '숏폼' 영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더 많다.

토론이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같이 양극단으로 달리는 정치판에서 토론이 사라질 수 없다. 그것에 토론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지는 별론으로 하자. 토론은 플랫폼을 옮겼다. 이제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유튜브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관점의 토론을 찾아본다. 나 역시 그렇다. 새벽 2시에 보고 싶으면 보고, 출근길에 보고 싶으면 보고, 점심시간에 보고 싶으면 본다.

<매불쇼>나 <뉴스공장>과 같은 프로그램은 정해진 결론보다 논쟁의 과정을 앞세운다. 정제된 문장보다 날 것의 언어를, 객관성의 형식보다 책임지는 얼굴을 앞세운다. 양복 입고 토론의 규칙에 맞게 주거니 받거니 말하는 것은 선거토론 때나 보면 된다. 적어도 유튜브에 나와서 말하는 사회자나 패널들은 자기 말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지금은 '어느 언론사냐'보다 '누구의 말이냐'다

지난 2025년 9월 <시사IN>이 한국갤럽에 의뢰한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 결과는 이를 더욱 정확하게 보여준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는 손석희(18.1%), 2위는 김어준(5.1%), 3위는 유시민(2.5%), 4위는 최욱(1.3%)이었다.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 조사에서도 <뉴스데스크>가 8.9%로 1위를 차지했지만, <뉴스공장>(5.1%)과 <매불쇼>(4.2%)도 오차범위 안에서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건 단순한 인기 경쟁이 아니다. 신뢰의 기준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했다는 신호다. 이제 사람들은 신문사 이름이나 방송사 로고만 보고 뉴스를 믿지 않는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그 말에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본다.

시사 유튜브가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확증편향, 팬덤 정치, 과잉 해석. 문제는 분명히 있다.

알고리즘은 균형보다 체류시간을 선택하고, 속도가 빠른 만큼 검증의 빈틈도 크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난무하기도 하고, '보는 것'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며 과열되기도 한다. 댓글창은 종종 광장이 아니라 전쟁터가 된다. 팩트보다 감정이, 검증보다 속도가 우선시되는 순간들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게 된다는 점이다. 편향성에 계속 노출되며, 그 편향성은 확증으로 굳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정보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거품 속에 갇힌다. 반대 의견은 점점 멀어지고, 내 생각만 옳다는 확신은 점점 강해진다.

또한 일부 시사 유튜브는 팩트보다 분노를, 검증보다 추측을 앞세운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고, 맥락은 생략한 채 감정만 증폭시킨다. 이건 저널리즘이라기보다 '클릭질 장사'에 더 가까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유튜브가 문제다"라고만 말하는 순간, 본질을 놓치게 된다. 유튜브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기성 언론이 설명하지 못한 자리, 판단을 미뤄버린 자리, 책임지지 않은 자리를 유튜브가 채웠을 뿐이다.

유튜브에 확증편향이 있다고? 재래식 언론에는 없었나. 기계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선에 세워놓고 "양비론"을 남발하며 심판자처럼 행세한 것은 재래식 언론이었다. 유튜브가 검증 없이 속보를 남발한다고? 재래식 언론은 오보를 내고도 독자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난 후 구석에 작게 정정 기사 한 줄 올리는 걸로 책임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유튜브가 팬덤 정치를 조장한다고? 솔직해지자. 일부 재래식 언론도 특정 정파의 홍보지처럼 보이면서도 "공정 보도"와 "최다 발행부수"라는 간판을 내걸었던 적이 없었나. 본질은 유튜브 자체가 아니라, 기성 언론이 스스로 신뢰를 잃어왔다는 데 있다.

결국 시민이 선택한 것이다
 1월 27일 자 유튜브 <겸손은 힘들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화면
ⓒ 뉴스공장
재래식 언론이라 놀림받는 레거시 미디어가 흔들린 것도, 시사 유튜브가 뜬 것도 시민의 선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민은 자신이 처한 정보 환경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기성 언론이 다시 선택받고 싶다면 이미 잃어버린 권위를 찾고 시민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언론의 본질을 찾으면 된다. 시사 유튜브에서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

유튜브를 규제하자고 주장하거나, 탓하지는 말자. "유튜브 때문에 우리가 망한다"고 징징대는 건 "전화기 때문에 전보국이 망한다"고 하소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신 기성 언론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왜 느리고, 왜 어렵고, 왜 멀게 느껴지는지. 왜 의제가 시민의 삶과 어긋나는지. 오보와 편파 논란에 대한 사후 책임은 왜 늘 부족한지, 기자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기사는 왜 점점 줄어드는지 말이다.

정정과 검증을 부차적인 절차가 아니라 핵심 콘텐츠로 만들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조가 아닌 주력으로 삼아야 한다. 익명 시스템 뒤에 숨지 말고, 책임지는 실명 저널리즘을 강화해야 한다. 플랫폼과 싸울 게 아니라, 플랫폼에서 통하는 검증의 방식을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기대는 크지 않다. 재래식 언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에 기대고, 권력과 광고주의 눈치를 보다 조용히 영향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제 시민은 훈육받을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언론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이미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뉴스데스크냐, 매불쇼냐'가 아니라, '시민이 어떤 뉴스를 믿고 고를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그 싸움은 플랫폼의 전쟁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저널리즘의 전쟁이다. 그리고 지금, 재래식 언론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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