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가 필요한 당신에게 '이사통'을 권합니다
[김동근 기자]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가지고 산다. 우리는 흔히 MBTI같은 형식을 빌려, 사람을 감정적인 사람과 이성적인 사람으로 나누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다. 불안은 감정의 형태를 타고 들어와 각기 다른 반응으로 모습을 바꾼다. 누군가는 말이 많아지고, 누군가는 침묵 속으로 숨고, 또 누군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먼저 걱정하며 도망친다. 아직 오지도 않은 결과가 무서워서,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불안은 그렇게 사람의 진심을 숨긴다.
그래서 불안형 사람들은 연애의 시작에서 설렘보다 경계를 먼저 느낀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행복보다 두려움이 앞서고, 기대는 곧 상처가 될까 봐 미리 거리를 둔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 앞에서 가장 먼저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이 시리즈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사실은 '불안의 언어'를 해석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처음엔 두 주인공이 발랄하게 만나 관계를 시작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의 불안이 극의 긴장을 만들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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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 장면 |
| ⓒ 넷플릭스 |
과거의 상처들이 그 불안과 섞여, 무희에게 사랑의 기쁨이 리스크와 함께 다가온다. 상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여러 해석이 덧붙여지고, 그 해석들은 다시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그녀는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서 먼저 몸을 움츠린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더 단단히 자신을 잠그는 역설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그래서 호진(김선호)는 무희가 던지는 사랑의 언어를 전혀 해석하지 못한다.
차무희의 언어가 어려운건 조심스러움이 너무 많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감정을 확 드러내기보다, 아무말 대잔치를 하면서 자신을 지킨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쉽게 오해받고, 종종 변덕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깊은 감정이 있다. 다만, 그 감정은 아직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무희는 좋아하는 사람이 늘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또 그사람이 떠날까 두려워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바로 제2의 인격인 도라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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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 장면 |
| ⓒ 넷플릭스 |
도라미는 망설이기보다 부딪히고, 오해가 생기면 풀고, 마음이 남아 있으면 인정한다. 그래서 그녀는 상처를 빨리 경험하지만, 회복도 빠르다. 도라미에게 사랑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솔직하게 드러내야하는 것이다. 흘러가다 아프면 멈추고, 다시 괜찮아지면 또 나아간다. 약간은 미친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렇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상처를 덜 받는다.
도라미는 자신의 감정을 번역하지 않는다.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한다. 그래서 때로는 가볍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솔직함은 관계를 정체시키지 않는다. 도라미는 감정을 안에 쌓아두지 않기에, 관계를 앞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차무희에게 도라미라는 존재가 발현되지 않았다면, 주호진은 무희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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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 장면 |
| ⓒ 넷플릭스 |
그러다 도라미를 만나면서, 호진은 조금 다른 방식의 해석을 배우게 된다.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 뒤에 남아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의 상처, 설명되지 않은 트라우마, 오래 눌러둔 슬픔, 그걸 이해해야만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사랑은 감정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이 만들어진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호진은 도라미를 통해 배운다. 그때부터 무희의 언어도, 조금씩 문장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호진이 이해와 공부로 만들어낸 사랑은 보호에 가깝다.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불안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 그는 통역사답게 상대의 언어를 정확히 듣고, 그 언어가 무너질 때를 미리 알아챈다. 호진이 발견한 사랑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다. 다만 분명하다. 상대의 마음을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끝내 도달한 사랑의 해석이다.
사랑은 통역이 필요하다
결국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세 가지 감정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는 이야기다. 차무희의 불안은 사랑 앞에서 움츠러든 마음을 보여주고, 도라미의 후련함은 그 불안을 견디는 또 다른 방식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주호진의 사랑은 그 두 감정을 이어 붙이는 통역의 역할을 한다. 이 셋의 감정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설명해준다. 불안이 있어서 솔직함이 필요했고, 솔직함이 있었기에 이해가 가능해졌으며, 이해가 쌓여서 비로소 사랑이 된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사랑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감정의 합이 아니라 감정의 이해로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연출 역시 이 감정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면은 과하게 흔들리지 않고, 인물의 얼굴과 거리, 침묵의 시간을 충분히 믿는다. 수채화 같은 해외로케로 담은 영상미는 차분하고 단정하다. 인물들이 불안해질수록 화면은 더 조용해지고,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빛과 색감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배경음악 또한 감정을 앞서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 말하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을 때 조용히 곁에 머문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장면들은 오래 기억에 남기보다,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주연 배우들의 시너지도 이 이야기를 단단하게 만든다. 고윤정은 차무희의 불안을 과장 없이 표현해낸다. 불안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묘한 눈빛과 말의 속도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도라미로 전환될 때의 전혀 다른 분위기도 분명하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자유롭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김선호는 주호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좋은 사람의 전형을 연기하지 않는다. 대신, 서툴지만 끝까지 배우려는 사람, 사랑을 쉽게 정의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세 인물의 감정은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시리즈를 보면서 공감이 가는 이유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우리가 늘 안고 살던 불안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보고 나면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숨은 조금 편해진다. 불안을 없애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 누군가 내 언어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는 감각. 그래서 이 드라마는 연애물이라기보다, 심리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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